다시 걸린 전두환·노태우 사진, 갈 길 먼 과거 청산

이형숙 2024. 10. 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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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진화위 ④] 지연되는 진실규명: 권위주의 시기 인권침해 사건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 민간인 학살 분야 군법회의 판결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하고 ▲ 농성 유족을 검찰에 송치하는 등 피해자를 탄압하며 ▲ 상층부 간부들이 망언을 일삼고 부적절하게 처신하는 등 과거 청산 역행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비판하고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점검하는 글을 과거사 연구자, 활동가, 작가 등이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기자말>

[이형숙]

 1988년 1월 5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 차기 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새해 인사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국군방첩사령부(구 보안사, 기무사)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다시 걸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의 범죄를 밝히고자 만들어졌다가 얼마 전 문 닫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이다. 더욱이 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서 벌어진 의문사를 비롯한 반인권 범죄에 대한 진상규명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를 통해 조사 중인 상황이다.
책임자 처벌을 포기한 채 출범한 과거사 진상규명의 한계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승만을 미화하고, 5·18의 북한 개입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김광동 진화위 위원장이 과거사 조사를 주도하는 서글픈 상황이 이승만을 비롯한 전두환 등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최종 책임자들을 용인하는 사태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현 국군방첩사령부 홈페이지 '부대 연혁'에 소개되어 있는 특무대, 방첩대, 보안사, 기무사의 부대 마크. 일관되게 사용되던 호랑이 상징이 2018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때 사라졌다가 현재 다시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 국군방첩사령부
국가 주도의 과거사 진상규명이 갖는 한계
한국의 과거 청산 과정에서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들 스스로 일찍이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법 제·개정 과정에서 정치적 역관계로 인해 피해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실 규명 대상이 되는 과거 반인권 사건들은 정권 유지를 위한 국가기관들에 의해 발생하였다. 이러한 국가기구와 그에 부역한 사람들의 잘못을 가려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국가 주도로 조사가 추진될 수밖에 없다. 국가는 과거 잘못을 발생시킨 책임 주체이면서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할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사 진상규명은 이러한 모순적 한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 진화위법 개정 촉구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 (2024.01.25.)
ⓒ 추모연대
현재 2기 진화위 조사를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국가 주도의 과거사 진상규명의 반복되는 한계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한시적 조사 기간으로 인해 조사 내용이 부실해지고, 조사 권한의 한계로 조사의 진전이 없으며, 진실 규명 주체인 국가기구들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협조하는 시늉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사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인 정권이 등장하여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실감을 주고 있다. 국가에 의해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이 '재외상화'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위 법은 제2조에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진화위는 제2조에 부합되는 사건들을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2국을 통해 조사하고 있다.

현재 진화위의 인권침해 사건 조사는 내·외부적으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김광동 위원장 체제에서 '부실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법적으로 보장된 조사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피해자 진술에 근거하여 가해자, 가해 기관 조사, 자료를 통해 비로소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이러한 조사를 위해 진화위 법 제23조는 진술서 제출 요구, 출석요구 및 진술 청취, 자료 제출 요구 및 자료 영치, 사실 또는 정보 조회, 감정 의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련 자료나 물건 또는 기관에 대하여 실지 조사를 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 등 가해 국가기관 조사에 난색 표하는 김광동 진화위

하지만 2024년 1월 23일 신정일씨에 대한 불법 구금 및 가혹행위 사건 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자료제출 명령 외에 이 조사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한겨레 2024. 1. 25. '지옥에서 보낸 7일'…진실화해위, 국정원에 첫 자료제출 명령). 제24조의 동행명령 또한 발부율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24조의2에서 7까지 세분화하여 규정한 '청문회 조사'는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실지 조사, 동행명령, 청문회 조사를 위해서는 위원회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 기관과 그 기관 출신들을 직접 조사하는 것에 위원회 과반을 구성하고 있는 김광동 위원장 및 여당 추천 위원들은 난색을 표한다. 이들은 진화위 설립 목적을 왜곡하며 내부 갈등을 일으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조사를 가로막고 있다. 과거 국가범죄를 진상규명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의기투합해야 할 진화위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조사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둘째, 효율성과 성과 위주의 진상규명 조사 방식으로 실체적 접근이 필요한 사건들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긴 조사 기간이 필요한 사건, '장기 미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의문사 등은 성과가 나지 않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전락했다. 국정원, 보안사, 경찰 등 국가 공안기구와 연계된 의문사는 해당 기관의 중요자료 조사 접근과 관련자들 소환조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인력이 배치되지 못하고 조사관들이 수시로 바뀌며, 국가기관들의 자발적 자료 협조에만 의존하면서 조사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 김광동 위원장은 의문사는 조사할 만큼 했으니 각하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실 규명을 요구한 의문사 유가족들을 지탱한 것은 내 가족의 문제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식들이 국가기관 공안기구인 방첩사(보안사, 기무사), 국정원(중정, 안기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기구들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데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활동 과정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셋째, 과거 청산에 부정적인 대통령 등 행정기관으로 인해 국가기관들의 조사 비협조와 가해자들의 침묵으로 인해 진상규명이 지연되고 있다. 현재 진화위는 사전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진실 규명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야 조사 개시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조사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있는데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군부 독재 시절에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 통치로 인해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한국양심수동우회는 이들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현재 2기 진화위에 한국양심수동우회가 신청한 36건 중 보안사에서 조작한 7건은 조사 개시되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중앙정보부, 안기부)에 의한 조작간첩 사건은 자료 비협조로 조사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비협조는 현재 진화위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 특별보고관 보고서
ⓒ 민족문제연구소
2023년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가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의 과거청산에 대한 문제들이 지적되어 있다. '진실에 대한 권리에서 공공 기록물에 관한 피해자 또는 대리인이 가지는 자신의 인권 침해와 관련된 기록물에 대한 접근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피해자 등에게 정보를 공개하도록 할 의무 규정도 법률도 부재하며, 상당수의 공공기록물이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비안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 비공개되고 있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관한 기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추모연대 및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주최 ‘방첩사령부 의문사 자료 공개 촉구 기자회견’(2024.03.19.)
ⓒ 추모연대
소수 신청자 중심의 조사 '빙산의 일각'

넷째, 신청사건 위주의 진화위 조사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다.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피해자, 삼청교육대 사건 피해자, 해외입양, 각 시설 관련 사건은 집단적이고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음에도 신청한 소수만 피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강제징집의 경우 대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교를 갓 졸업한 사람 등 대상자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위에 신청한 사람들만 조사하면 고작 5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망한 사람들의 진상규명은 조사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위원회 직권조사를 활용하는 방식도 있으나 이마저도 현 진화위 구조에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화위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건들의 피해 규모를 피해자 수로 추정해 보면 대략 강제징집 및 녹화 선도 3천여 명, 삼청교육대 4만~ 6만여 명이고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영화숙·재생원 등의 수용시설 관련 피해자들은 집계조차 할 수 없다. 해외 입양은 20만 명이지만 이는 합법적인 경우이고 비합법적 해외 입양은 수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

강제징집 및 프락치공작(녹화·선도공작) 사건은 박정희 및 전두환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는데 그 과정에 경찰, 안기부, 문교부, 국방부 등이 총체적으로 개입했다. 녹화공작의 경우는 보안사 요원들과 이에 가담한 심사장교 등 160여 명의 가해자들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녹화공작은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이어지며, 선도공작, 마파람 공작, 921공작, 청명 계획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학생운동 출신 징집 대상자, 군 복무자와 민간인까지 감시·사찰했다. 이에 대한 실체적 조사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삼청교육피해자유족회 진화위 기자회견 (2024.06,25)
ⓒ 이형숙
삼청교육대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은 수용된 전체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망이 국가 공식 발표로는 54명, 후유증 사망자가 367명"이다. 사망자의 숫자도 믿을 수 없고, 54명 사망자 전부가 병사(病死)라고 했으나 폭사(暴死)한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화위 조사에서 진상 규명된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는 강제수용 과정에서 당시 경찰·공무원들이 행한 불법 행위 관련 실태, 형제복지원 수용 당시 사망 사건 및 사망자 실태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사망자들은 1975년~1988년 기간에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존에 알려진 552명 사망자보다 105명이 더 많은 것이 밝혀졌으나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수 사망이 은폐되었을 것으로 진화위는 추측하고 있다.

영화숙·재생원 사건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은 조속한 진화위 조사 완료 및 권고 조치와 함께 추가적인 생존자 발굴 조치 및 추가 시설 직권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숙·재생원 터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해 진술을 확보하고, 시굴 작업 또한 필요하다. 유해 발굴과 함께 이들의 사망 원인과 이유도 밝혀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진화위의 신청인 위주의 조사는 종합보고서를 통해 국가의 인권 침해 실체를 밝힐 수 없게 만든다. 개별 신청자들의 사건 보고서일 수밖에 없다.

해외 입양

해외 입양은 1954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돼 고아입양특례법(1961), 입양특례법(1976) 등에 따라 보건사회부 장관이 허가·감독한 입양알선기관이 해왔다. 1966년 고아입양특례법 개정 이래 입양알선기관만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해외 입양 알선 업무를 전담해 왔다. 1970~1980년대 해외 입양이 정점을 달했던 시기에 국가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인권침해를 조장하는 해외 입양을 적극 추진했다. 개별 신청자들의 조사와 함께 이러한 제도 시행 과정에 대한 실체적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2004년 포괄적인 과거사 진상규명 과정을 거쳐오며 국가 폭력 각 사건 피해자들은 시대 변화와 사건의 사회적 명예회복에 힘입어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안정적인 조사 기간과 조사 권한이 확보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각 국가 폭력 사건 특성에 맞게 사건 조사 방식을 채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화위의 우경화와 진상규명 조사의 한계는 계속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인권적 국가범죄 행위 대상자로서 조사를 당하고 있는 인물들의 기념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광화문 이승만 기념관 건립, 대구 박정희 동상 건립 등 기념 사업 조례 제정,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방첩사령부 사진 게시 등은 한국 사회가 아직도 과거청산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 '윤석열 대통령 과거사 진상규명 정책 기조 변화 촉구 기자회견’(2024.04.30.)
ⓒ 추모연대
오는 12월 김광동 임기 종료...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과거청산은 계속된다

돌아오는 12월 9일 김광동 진화위 위원장의 임기가 종료된다. 진화위 위원장 임명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을 각 역사 관련 단체장에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부정적인 대통령이 있는 한 김광동 위원장이 연임하게 될지, 그보다 더 한 과거사 왜곡 인사가 진화위 위원장에 임명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과거 청산을 위해 가지 않았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참고문헌>
남찬섭.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지정 토론문. 2013년 10월 18일. 진실화해위원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주최.

* 글쓴이 이형숙
국가폭력을 부인하는 국가기구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 <한국 군(軍)의 의문사 진실 부인(denialism)에 관한 연구 : '고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을 중심으로>(2020, 성공회대학교)를 쓰고,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조사 활동을 했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및 추모연대 의문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저 <사회적 재난의 인문학적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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