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걸린 전두환·노태우 사진, 갈 길 먼 과거 청산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 민간인 학살 분야 군법회의 판결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하고 ▲ 농성 유족을 검찰에 송치하는 등 피해자를 탄압하며 ▲ 상층부 간부들이 망언을 일삼고 부적절하게 처신하는 등 과거 청산 역행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비판하고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점검하는 글을 과거사 연구자, 활동가, 작가 등이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기자말>
[이형숙]
▲ 1988년 1월 5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 차기 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새해 인사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 현 국군방첩사령부 홈페이지 '부대 연혁'에 소개되어 있는 특무대, 방첩대, 보안사, 기무사의 부대 마크. 일관되게 사용되던 호랑이 상징이 2018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때 사라졌다가 현재 다시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
ⓒ 국군방첩사령부 |
▲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 진화위법 개정 촉구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 (2024.01.25.) |
ⓒ 추모연대 |
진화위 법은 제2조에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진화위는 제2조에 부합되는 사건들을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2국을 통해 조사하고 있다.
현재 진화위의 인권침해 사건 조사는 내·외부적으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김광동 위원장 체제에서 '부실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법적으로 보장된 조사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피해자 진술에 근거하여 가해자, 가해 기관 조사, 자료를 통해 비로소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이러한 조사를 위해 진화위 법 제23조는 진술서 제출 요구, 출석요구 및 진술 청취, 자료 제출 요구 및 자료 영치, 사실 또는 정보 조회, 감정 의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련 자료나 물건 또는 기관에 대하여 실지 조사를 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 등 가해 국가기관 조사에 난색 표하는 김광동 진화위
하지만 2024년 1월 23일 신정일씨에 대한 불법 구금 및 가혹행위 사건 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자료제출 명령 외에 이 조사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한겨레 2024. 1. 25. '지옥에서 보낸 7일'…진실화해위, 국정원에 첫 자료제출 명령). 제24조의 동행명령 또한 발부율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24조의2에서 7까지 세분화하여 규정한 '청문회 조사'는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실지 조사, 동행명령, 청문회 조사를 위해서는 위원회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 기관과 그 기관 출신들을 직접 조사하는 것에 위원회 과반을 구성하고 있는 김광동 위원장 및 여당 추천 위원들은 난색을 표한다. 이들은 진화위 설립 목적을 왜곡하며 내부 갈등을 일으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조사를 가로막고 있다. 과거 국가범죄를 진상규명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의기투합해야 할 진화위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조사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둘째, 효율성과 성과 위주의 진상규명 조사 방식으로 실체적 접근이 필요한 사건들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긴 조사 기간이 필요한 사건, '장기 미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의문사 등은 성과가 나지 않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전락했다. 국정원, 보안사, 경찰 등 국가 공안기구와 연계된 의문사는 해당 기관의 중요자료 조사 접근과 관련자들 소환조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인력이 배치되지 못하고 조사관들이 수시로 바뀌며, 국가기관들의 자발적 자료 협조에만 의존하면서 조사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 김광동 위원장은 의문사는 조사할 만큼 했으니 각하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실 규명을 요구한 의문사 유가족들을 지탱한 것은 내 가족의 문제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식들이 국가기관 공안기구인 방첩사(보안사, 기무사), 국정원(중정, 안기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기구들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데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활동 과정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 특별보고관 보고서 |
ⓒ 민족문제연구소 |
▲ 추모연대 및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주최 ‘방첩사령부 의문사 자료 공개 촉구 기자회견’(2024.03.19.) |
ⓒ 추모연대 |
넷째, 신청사건 위주의 진화위 조사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다.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피해자, 삼청교육대 사건 피해자, 해외입양, 각 시설 관련 사건은 집단적이고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음에도 신청한 소수만 피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강제징집의 경우 대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교를 갓 졸업한 사람 등 대상자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위에 신청한 사람들만 조사하면 고작 5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망한 사람들의 진상규명은 조사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위원회 직권조사를 활용하는 방식도 있으나 이마저도 현 진화위 구조에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화위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건들의 피해 규모를 피해자 수로 추정해 보면 대략 강제징집 및 녹화 선도 3천여 명, 삼청교육대 4만~ 6만여 명이고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영화숙·재생원 등의 수용시설 관련 피해자들은 집계조차 할 수 없다. 해외 입양은 20만 명이지만 이는 합법적인 경우이고 비합법적 해외 입양은 수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
▲ 삼청교육피해자유족회 진화위 기자회견 (2024.06,25) |
ⓒ 이형숙 |
삼청교육대 사건은 수용된 전체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망이 국가 공식 발표로는 54명, 후유증 사망자가 367명"이다. 사망자의 숫자도 믿을 수 없고, 54명 사망자 전부가 병사(病死)라고 했으나 폭사(暴死)한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화위 조사에서 진상 규명된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는 강제수용 과정에서 당시 경찰·공무원들이 행한 불법 행위 관련 실태, 형제복지원 수용 당시 사망 사건 및 사망자 실태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사망자들은 1975년~1988년 기간에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존에 알려진 552명 사망자보다 105명이 더 많은 것이 밝혀졌으나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수 사망이 은폐되었을 것으로 진화위는 추측하고 있다.
영화숙·재생원 사건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은 조속한 진화위 조사 완료 및 권고 조치와 함께 추가적인 생존자 발굴 조치 및 추가 시설 직권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숙·재생원 터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해 진술을 확보하고, 시굴 작업 또한 필요하다. 유해 발굴과 함께 이들의 사망 원인과 이유도 밝혀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진화위의 신청인 위주의 조사는 종합보고서를 통해 국가의 인권 침해 실체를 밝힐 수 없게 만든다. 개별 신청자들의 사건 보고서일 수밖에 없다.
해외 입양
해외 입양은 1954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돼 고아입양특례법(1961), 입양특례법(1976) 등에 따라 보건사회부 장관이 허가·감독한 입양알선기관이 해왔다. 1966년 고아입양특례법 개정 이래 입양알선기관만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해외 입양 알선 업무를 전담해 왔다. 1970~1980년대 해외 입양이 정점을 달했던 시기에 국가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인권침해를 조장하는 해외 입양을 적극 추진했다. 개별 신청자들의 조사와 함께 이러한 제도 시행 과정에 대한 실체적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 '윤석열 대통령 과거사 진상규명 정책 기조 변화 촉구 기자회견’(2024.04.30.) |
ⓒ 추모연대 |
돌아오는 12월 9일 김광동 진화위 위원장의 임기가 종료된다. 진화위 위원장 임명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을 각 역사 관련 단체장에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부정적인 대통령이 있는 한 김광동 위원장이 연임하게 될지, 그보다 더 한 과거사 왜곡 인사가 진화위 위원장에 임명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과거 청산을 위해 가지 않았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참고문헌>
남찬섭.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지정 토론문. 2013년 10월 18일. 진실화해위원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주최.
* 글쓴이 이형숙은
국가폭력을 부인하는 국가기구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 <한국 군(軍)의 의문사 진실 부인(denialism)에 관한 연구 : '고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을 중심으로>(2020, 성공회대학교)를 쓰고,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조사 활동을 했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및 추모연대 의문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저 <사회적 재난의 인문학적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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