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기자말>
[이혁진 기자]
▲ 심씨(가운데)가 목공(왼쪽)이 하는 몰딩작업을 돕고 있다. 심씨는 다양한 직종의 조공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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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리모델링 천장 작업을 돕던 심씨가, 요즘 건설 경기가 어떤지 묻는 내 말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자리가 드물어 사정사정해 구하는 실정입니다. 인맥을 총동원해 꾸준한 일거리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60대 중반의 심씨는 집 수리와 건물 리모델링 등 건설현장에서, 작업반장 격인 김씨를 따라 돕는 조공(현장에서는 흔히 일본말 '데모도'라 부른다) 인력이다.
본래 전기공인 그는 "그것만으로는 불러주는 사람이 적어 목공, 철거, 미장, 방수, 조적 등 여러 직종을 보조하고 때에 따라선 내가 직접 나서서 작업도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조공인 심씨는 반장인 김씨가 하는 천장 작업 내내 척척 맞춰 그의 손발이 됐다. 작업 순서를 이미 꿰뚫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심씨가 먼저 합판과 각목 등 필요한 자재를 크기에 맞춰 자르고 건네면, 이를 받아 김씨가 천장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는 식이다.
이에 앞서 심씨는 김씨를 도와 방과 화장실 등 주택 내부 철거작업도 했다. 그는 철거하면서 생기는 폐기물을 운반하고 자재와 공구를 정리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았다.
작업반장도 인정하는 목공의 기술 실력
현장에 조공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심씨를 지켜보며 비로소 알았다. 조공의 숙련도에 따라 공사와 작업 속도가 크게 좌우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조공들은 다양한 건설 현장에서 그 필요를 인정받고 있다.
설비 업자인 김씨는 철거와 함께 천장에 각목을 대는 기초작업을 진행했지만, 이후 합판과 석고보드를 붙이고 여기에 몰딩(면과 면이 접하는 곳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마감재로 천장몰딩과 바닥몰딩이 있다) 등 마무리 작업은 목공기술자를 따로 불러 공사를 맡겼다.
▲ 심씨(오른쪽)가 목공 기술자가 하는 벽면 합판 작업을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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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허리띠를 차고 온 목공은 조공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능숙하게 망치와 타카(목재나 합판을 고정시키는 기계)핀을 박는 모습이었다. 마치 서부극 총잡이가 총을 다루는 장면처럼 멋있게 보였다(현장에선 '타카총을 쏜다'고 말한다).
기술도 기술 나름이랄까. 나중에 투입된 목공은 전보다 좀 더 노련해 보였다. 충분히 검증된 목공은 어디든 자기가 골라서 현장을 간다고 한다. 높은 기술력은 언제 어디서든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방증이다.
▲ 목공 기술자가 거실 벽면 합판공사를 하고 있다. 목공은 보통 조공을 두고 작업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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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목공 작업 일부를 보통인부가 담당하고 전문목공이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관례라고 하는데, 작업을 맡긴 나로선 불만이었다.
이런 방식이, 공사내역서에는 전문목공의 노임을 적용하고 실제로는 인건비를 아끼려는 술수가 아닌가 의심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인 내 친구에 묻자, 친구는 "내역대로 전문 목공을 불러 시공하는 것이 맞지만 현장에선 다른 작업과 맞물려 변수가 많아 어느 정도 대체인력을 사용하는 불가피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를 보고 그냥 묵인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친구에 따르면 하자가 발생하면, 그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계약서 조항에 따라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단다. 그러나 이 또한 서로 원만한 사전협의가 더 긴요하다고 조언했다.
▲ 전기 기술자인 심씨가 화장실 수도 설비작업을 하고 있다. 심씨는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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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집수리를 맡고 있는 설비업자 김씨도 내 나이와 비슷한 70대 초반이다. 그는 공고를 졸업하고 삼촌의 인테리어 공사를 돕다 설비와 건축업에 뛰어들었단다. 업력도 벌써 40년 가까이 된다.
▲ 철거 인부가 미장공사를 돕기도 한다. 여러 기능을 갖춘 조공들이 현장에서 인기가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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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도 젊은이를 포함해 중장년층도 현장기술자를 폄하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건설인력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단다. 보수도 적지 않다. 비계공의 일평균 노임은 28만 2352원, 미장공은 27만 4502원이다(올해 하반기 대한건설협회 노임단가자료 참고).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기술 전문성을 갖춘 숙련공은 어딜 가나 대우받는 세상이다. 건강하고 체력이 따르면 나이 불문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이런 기술 직군 직업이야말로 최고의 직장이 아닐까.
여기서 내 고등학교 후배가 문득 떠오른다. 그는 다니던 대기업을 10년 전 그만두면서, 자기 취미이자 특기를 살려 복싱체육관을 차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직함을 또 하나 만들었다고 했다. 체육관 운영과 겸해서 할 수 있는 '상하수 배관공사 전문업체'를 창업한 것이다.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배관 관련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의 나이는 이제 50대 초반이다. 그는 '기술과 신용을 잘 쌓으면 앞으로 20년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포부를 밝혔다.
초고령 사회를 맞아 노후에도 일할 수 있는 일을 새롭게 시작한 후배가 자랑스럽다. 지혜로운 후배를 보면서, 나 또한 건강이 괜찮아지면 당장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마저 생겼다.
어렵게 진행되던 집수리가 얼추 끝나가던 며칠 전 9월 중순, 조공으로 일했던 심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취업 중이던 그가 취업에 성공했단 이야기였다.
"안녕하세요. 응원해주신 덕분에 얼마 전 전기회사에 직원으로 취업했습니다. "
기쁜 소식이었다. 나는 바로 화답하는 문자를 날렸다.
"정말요? 정말 축하합니다. 역시 능력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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