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의 승부수? 손해팻감은 쓰지 말길… [데스크 칼럼]
최윤범 측, 2.7조 자사주 '빚투'…공개매수 자금 80%는 부채
사상 초유 머니게임에 승자의 저주 우려도…냉정함 되찾길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간 '쩐(錢)의 전쟁'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장형진 고문 측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다시 올리면서 또 한 번 패싸움이 불가피해졌다.
공개매수 수량은 14.61%를 유지하되 기존에 제시한 최소 매수 수량 조건(6.98%)을 없앤 강수. 본격적으로 패싸움을 펼쳐 보자는 선전포고다. 장 고문 측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애초에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66만원으로 잡았지만 지난달 26일 75만원으로 한 차례 올렸고 지난 2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당 83만원을 제시하자 4일 83만원으로 맞불을 놓았다.
간단하고 짧게 끝나는 패싸움도 많지만, 이 분쟁의 패싸움은 유난히 길고 복잡하다. 일단 형태상으로는 고려아연이란 대마의 목숨이 걸린 최 회장 측의 불리한 싸움이다. 특히 서로 팻감을 쓰는 과정에서 최 회장 측이 큰 실수를 했다. 초기 명분 싸움에서 자금력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아야 했다.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M&A"라는 명분으로 주주들의 마음을 따내야 했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험악했다. 뒤에서 구경만 하며 이래라저래라하는 훈수꾼 취급을 받다 보니 각성이 됐다고 할까. 이번 공개매수가 저평가된 주주의 다양한 권리를 환기시켰다.
실제 최 회장 측의 값싼 동정론은 이렇게 각성한 주주들에게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히려 경영권 분쟁 이외에 고려아연의 주가가 오를만한 재료가 없다는 쪽에 베팅하며 양쪽의 확전을 불렀다. 따지고 보면 장 고문 측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내세운 명분도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였다. 최 회장 취임 뒤 본업과 무관한 투자가 지속되며 손실이 지속되는데, 여기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이사회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최 회장 측이 주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년 동안 주가가 제자리였고 재무 건전성과 수익률이 낮아졌지만, 최 회장 보수만큼은 △2019년 7억4600만원 △2020년 9억2500만원 △2021년 10억원 △2022년 19억5900만원 △2023년 30억원으로 해마다 수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경영에 책임이 없는 최씨가의 최창걸·최창근·최창연 명예회장도 매년 수십억원의 보수를 챙겨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미래 투자를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는 건 주주들에게만 해당할 뿐 최씨 일가에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주주 게시판의 말을 빌자면 지금의 모든 상황은 최 회장의 자업자득·인과응보·사필귀정이다.
패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팻감의 수다. 그렇다면 최 회장 측 무기고엔 각각 얼마만큼의 실탄이 준비돼 있을까.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에 쓰일 돈은 3조1000억원이다. 고려아연 2조7000억원, 베인케피탈 4000억원 등이다. 이 중 고려아연은 단기 회사채 1조원, 금융 기관 한도 대출 1조7000억원 등 빚으로 '실탄'을 끌어오고 있어. 이는 자기자본의 28%에 달한다. 예상 이자율은 최대 7%로, 연간 이자 비용은 약 1890억원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 해 고려아연의 이자비용(424억원)의 4배가 넘는 수준. 이 싸움이 끝난 후에도 고려아연의 재무 상태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막대한 회사 자금을 현 경영진의 지배력 방어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최 회장 측의 오기(傲氣)로 비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바둑은 져도 패는 이겨야 한다'는 하수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패싸움에서나마 이겨 분을 풀라는 건데, 경제 현실에선 오기가 앞서면 백전백패다. 패싸움에서 이겨도 실익보다 내상이 크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최 회장 측이 딱 그 상황이다.
고수라면 당연히 패는 져도 바둑은 이겨야 한다. 지금 수로는 바둑과 패를 모두 질 수도 있다. 최 회장 측이 냉정을 되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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