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마약 사용법, 이렇게 달랐다
[이준목 기자]
알고 보면 마약은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만병통치약'에서 '악마의 저주'도 될 수 있는 두 얼굴의 마약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17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신의 선물, 마약은 어떻게 인류를 파괴했나'편이 그려졌다.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아편은 양귀비의 덜 익은 열매에서 채취되는 마약으로 '인류 최초의 진통제'로도 꼽힌다. 기원전 4천 년경,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는 아편을 달인 물을 상비약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수메르인들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로 인식했다고 하며, 이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약물 활용 사례다.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문명, 1400년견 크레타 문명 등에서도 아편을 의학적으로 활용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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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은 세계사> 중 한 장면 |
| ⓒ TVN |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아편을 이용한 의약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편을 알코올에 녹여만든 '로다넘'은 수면유도와 해열, 진통에 효과를 발휘하는 약품이었다. 이전까지 민간요법의 일종으로만 여겨지던 마약이 근대의학의 치료제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18-19세기 산업혁명의 확산으로 도시 위생이 악화되며 전염병이 창궐하자, 술보다 싸고 진통효과가 뛰어난 아편류 약품들은 '신이 내린 약(God's own medicine)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으로 주목 받는다.
또한 아편의 뒤를 이어 10배나 더 강력한 효과를 지닌 '모르핀'이 등장한다. 1805년 독일의 약제사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담 제르튀르너는, 아편에서 진통 작용 성분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그리스 신화에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 모르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편보다 더 효능이 뛰어난 모르핀의 수요가 높아지면 전세계에 팔려 나갈만큼 큰 인기를 모았다.
미국에서 '남북전쟁' 시대 당시 모르핀은 '전장의 필수 의약품'으로 널리 활용됐다. 시대적으로 개틀링 건(기관총) 등 대량살상무기의 등장으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부상병의 숫자와 피해가 급증하면서 마취제이자 진통제로서 모르핀의 수요도 덩달아 높아지게 된다. 당시 종군했던 한 군의관은 "외과의에게 모르핀은 전장에서 화약만큼 중요하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남북전쟁 이후 모르핀 중독자가 된 군인들이 대거 증가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당시만 해도 마약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던 시대적 한계상, 아편과 모르핀 중독으로 인한 증상을 가벼운 습관(Habit) 정도로 인식하기도 했다.
인류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의 선물이었던 마약을 점차 악용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는 전쟁이었다. 19세기 중반 제국주의 영국은 마약을 악용하여 가장 부도덕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아편전쟁'을 일으킨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아편 무역을 장려했고, 이로 인하여 중국에서는 마약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다. 이를 저지하려던 청나라는 영국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1860년 베이징조약을 맺고 아편 무역이 합법화된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중국 전역에는 최소 수천 개의 아편굴이 존재했을 만큼 마약 소굴로 전락하고 만다. 당시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중국은 오늘날에도 마약 범죄에 있어서 철저한 엄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은 군인들의 피로회복과 전투능력 극대화를 위하여 마약을 각성제로 활용했다. 일본은 각성효과가 뛰어난 메스암페타민을 상품화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필로폰(히로뽕)이다.
필로폰 배급된 이유
자살특공대로 악명높은 가미카제 부대에게는 특별히 대량으로 필로폰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당시 300여 명의 대원에게 필로폰을 투여했다는 당시 군의관은 "필로폰을 맞고 죽은 사람에게 정말 미안하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정말 불쌍하다"며 사죄했다.
필로폰은 마약 중에서도 강렬한 환각과 망각 증세라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1945년 일본의 2차대전 패망 이후, 군용으로 대량생산 되어 남아있던 필로폰이 암시장을 통하여 유출되며 일본 사회에 심각한 마약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골치를 앓던 일본 정부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년 각성제 단속법까지 제정해야 했다.
또한 일본의 필로폰 문제는 이웃나라인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일본에서 도피한 필로폰 제조업자가 밀수업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와 국내 범죄조직과 결탁하면서 마약을 제조하여 동남아와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1960-70년대 한국은 '필로폰 코리안루트'로 불리며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필로폰 제조국이라는 오명을 안아야 했다.
미국의 흑역사로 꼽히는 베트남 전쟁에서는, 군인들을 통하여 마리화나(대마초)와 헤로인 등의 마약이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많은 미군은 전쟁의 공포와 불안감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하여 마약에 의존했다. 또한 마약에 중독되어 전역한 군인들이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마약에 손을 대는 것을 멈추지 못하면서 미국 사회의 골칫거리가 된다.
미국 정부는 1971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공공의 적 1호로 규정했다. 그만큼 마약 문제가 더이상 범죄를 넘어서 국가적 위기이자 사회의 적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아진 계기다.
또한 마약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주요한 수입원이자 사업수단으로 하는 강력한 '범죄조직'들이 잇달아 등장하게 된다. 콜롬비아, 멕시코 등 중남미의 강력한 범죄 카르텔들은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삼아 마약을 밀수출하여 막대한 수입을 누렸다. '코카인'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초반에는 한 달에만 무려 80톤 이상의 코카인이 미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고.
특히 중남미 마약 카르텔의 주요 수출원이자 효과 지속시간이 짧은 코카인은, 사회지도층인 백인 상류층과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부유층과 사교파티용 약물'로 인식되며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코카인보다 저렴하고 중독성이 더 강한 크랙 코카인은 '빈민의 마약'으로 불리우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미국 흑인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결국 1981년에는 미국레이건 행정부에서 두 번째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규제에 나섰지만 실제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020년대까지도 중남미 범죄 카르텔들의 마약 수출 문제는 미국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초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기존 마약보다 더욱 중독성이 강한 '펜타닐'이 등장하면서, 현재 미국 대도시 곳곳에서 펜타닐 중독자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에서 2022년까지 미국에서 약 21만명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했고, 2022년 한 해에만 11만명이 사망하여 18-49세 미국인의 사망원인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역시 마약과의 전쟁을 강조하며 외국인 불법 이민자 추방을 강행하는 명분으로 마약을 꼽기도 했다.
한편, 대한민국도 이제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2023년 식약처가 시행한 '마약류 폐해 인식 실태조사' 결과, 성인의 3.1%, 청소년의 2.6%가 한 가지 이상의 마약을 접해본 것으로 응답하여 충격을 줬다.
마약 문제가 오늘날 더 심각해진 원인은,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데 있다. 일반인도 온라인과 SNS를 통하여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비대면 마약거래'가 가능해진 시대다. 메신저를 통하여 외국에서 마약을 '직구'하거나, 심지어 마약 제조법까지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마약 중독을 극복하고 헐리우드 톱스타로 재기에 성공한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마약 중독은 감옥, 병원, 죽음 셋 중 하나로 끝난다"라고 고백했다. 마약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범죄의 일종을 넘어서, 인류가 당면한 가장 치명적인 위기 중 하나가 됐다. 마약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깨달아야 마약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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