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간 도시 카페, 분위기가 참 다르네요

김은아 2024. 9. 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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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복 차림으로, 경운기 타고...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 공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은아 기자]

▲ 가을하늘 달력이 가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늘이 높아졌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보다 더 멋지다. 온 하늘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 김은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계절은 달력이 말한다. 올 한가위는 특히 그랬다. 가마솥처럼 은근히 삶아대면서 칼칼하게 쏘아대는 따가운 햇살이 그 증거다. 그리운 가족을 찾아 부모 날개 밑으로 모여들었지만 바깥 마실을 가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뜨거워서!
이른 아침이나 밤이 되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코끝에 살짝 스쳐 가고, 들판의 노릇노릇 익어가는 벼가 '나 가을이에요!'라고 하니 가을이다. 더울까 추울까 이러한들 저러한들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하루 중 짬짬이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하늘은 청명하니 그래도 행복한 계절이다.
▲ 제법 익어가는 곡식 제법 노릇노릇 익어간다. 아무리 삶아대도 시계는 가을을 향해 거침없이 간다.
ⓒ 김은아
도시에서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가 상당수 있다. 급한 대로 업무자료를 만들고 화장과 아침 식사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좋고, 집중해서 '쌈박하게' 일하기에도 '딱'이다. 적당한 카페인, 약간의 생동감, 햇살 가득한 아침,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에서 오는 충만함은 아침 7시라서 가능하다. 큰 도시에서는 일상이지만, 작은 도시에서는 편의점 말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충청남도 금산에도 드디어 대형 카페가 몇 들어섰다. 오가며 눈으로만 익혔던 곳을 들어가 보니 '참 좋다!'. '좋다'는 정말 좋은 단어다. 모든 게 다 들어있는 우주와 같은 단어다. 정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인테리어도 커피 맛도 모두 같다. 랩탑을 작업할 수 있게 콘센트도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늘 다니던 카페처럼 생각 없이 들어왔는데 다르다.

드나드는 사람이 다르다
▲ 햇고춧가루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낭만 어르신 고급진 카페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참 통화를 하시더니만 고춧가루가 배송되었다. 테이블 위에 포도도 한 상자 같이 말이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그냥 귀에 쏙쏙 들린다. 아는 사람이면 얼마에 어디서 샀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다.
ⓒ 김은아
도시에서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곳은 어르신들과 밭에서 일하다 잠깐 커피 한 잔 하러 오신 분들도 보인다. 대도시와 소도시를 차림새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비교적 편안한 옷차림과 작업복이다.

어르신들은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목소리가 참으로 크시다. 가만히 있어도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린다. 명절에 햇고추를 빻아서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좋아서 애들한테 몇 근씩 나눠줬단다가 시작이었다. 어르신은 휴대전화를 들더니 통화를 상당히 오래 걸쭉하게 하신다.

"고추 한 근에 월매지? 올해 많이 수확했다면서"
"응 추석에 먹을 것만 조금 빻았는데 이제 빻아야지. 얼마나 필요햐?"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고추 수확과 빻은 고춧가루 이야기로 한참 동안 통화를 하신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전화를 하는 사람이나 휴대전화 너머 어르신 목소리까지 아주 또이또이 들린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 고춧가루라면서 검정 비닐봉지를 한 어르신이 가져다주고 사라지신다. 두 어르신이 양 많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예상치 못한 광경이다.

한편에선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를 주문하시고 오니,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펴진다.

"내가 해장국 한 턱 쏠게."

다른 편에서 들리는 소리다.

"워찌, 이제 왔어? 배추 모종 심었어?"
"아이고 뭔 모종이여. 농사 그만해야지."

그렇다.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그 도시에 맞는 장소성과 아우라가 우러나는 법이다. 같은 인테리어, 같은 공간, 같은 음료다. 그런데 느낌이 이리도 다르다. 도시의 공간은 그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호텔에 입점해 있는 카페라면 왠지 밭에서 입던 작업복 차림으로 가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있는 대로 볼륨을 높여 통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관점에 따라 매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누구도 인상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많지도 않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프로토콜이자 문화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귀는 어두워지고 목청은 커진다. 젊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른다. 시끄럽다고.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의 대화일 뿐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 람보르기니 부럽지 않은 경운기 밭이 아닌 도시 공간에 주차된 경운기가 마치 람보르기니 보고 놀란 가슴마냥 신기하다.
ⓒ 김은아
한 시간 남짓 카페에 앉아 예상치 않은 이 푸근한 광경을 관찰 중이다. 웬 호사인가. 푸근하다. 농촌답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포도 상자, 의자 옆에 놓은 고춧가루를 담은 검정 비닐봉지, 어디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포도', '고춧가루', '배추 모종', 그리고 '해장국'. 내가 이 고급진 카페에서 주워 담은 키워드다.

어르신들의 큰 목청이 곁들어진 금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명 '금카치노'다. 경운기를 타고 커피를 마시러 올 수도 있다. 강남에서는 경운기를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특별한 서비스를 누릴 수도 없다.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사용자의 특성을 녹여내는 공간
▲ 세족대 세족대라는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씼는 곳이 세면대이니 세족대라 해서 틀릴 것 같지는 않다. 볼품은 없지만, 주인장 마음이 일품이다.
ⓒ 김은아
어느 동네 앞에 들어선 대형 카페 앞에서 본 것이다. '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싶었다. 분명 생긴 것은 세면대인데 손을 씻으려면 쪼그려 앉아야 한다. 왜 그런고 보니, 여름철 슬리퍼 차림으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을 위한 일명 '세족대'이다. 볼품은 없지만, 사용자를 배려한 마음만큼은 일품이다. 그곳에 잘 어울리는 시설이다.

낭만이라는 것이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삶의 일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곳만의 낭만이 있다. 아무리 닮으려 해도 본질이 다르니 서울의 대형 카페를 갖다 놓아도 느낌은 영판 다르다.

우리의 도시도 그렇다. 브랜딩이나 도시재생이니 도시디자인 사업을 하며 타 지자체, 더 나아가서는 해외 주요 도시를 벤치마킹하지만, 도시의 사용자가 다르기에 사용법도 아우라도 다르다. 분명 같은 옷인데 어찌나 느낌이 다른지. 그래서 낭만도시라는 것은 인프라보다도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은 사용자를 차별한다. 사용자의 특성을 녹여내는 공간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에 우리가 찾는 낭만이 있다. 낭만도시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도시민의 삶을 잘 녹여 섬세하게 배려한 공간에 있는 것이다. 인프라가 아니다. 삶이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의 도시가 아닌, 우리의 도시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남의 떡은 언제나 커 보이고, 화면 너머로 보이는 저세상은 참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그 떡이 그 떡이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며 ‘우리 집이 최고다’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하며, 사용하기 좋아야 좋은 도시, 낭만도시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이 가장 멋진 곳이라는 거죠. 밭에서는 몸빼바지에 장화나 작업화가 딱입니다. 하이힐 말구요. 때 빼고 광을 내보니 전에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멋이 있는지를요. 덤으로 마음 한구석이 가득 차는 것만 같습니다. 왜요? 남의 집이 아니고, 내 집 같아서요. 삶이 숙성되어 만들어진 문화는 신축건물에 설치된 붙박이장이 아니랍니다. 천지삐깔 널려있는 익숙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마시며, 오늘 하루가 낭만적인 날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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