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간 도시 카페, 분위기가 참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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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기자]
▲ 가을하늘 달력이 가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늘이 높아졌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보다 더 멋지다. 온 하늘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
ⓒ 김은아 |
▲ 제법 익어가는 곡식 제법 노릇노릇 익어간다. 아무리 삶아대도 시계는 가을을 향해 거침없이 간다. |
ⓒ 김은아 |
충청남도 금산에도 드디어 대형 카페가 몇 들어섰다. 오가며 눈으로만 익혔던 곳을 들어가 보니 '참 좋다!'. '좋다'는 정말 좋은 단어다. 모든 게 다 들어있는 우주와 같은 단어다. 정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인테리어도 커피 맛도 모두 같다. 랩탑을 작업할 수 있게 콘센트도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늘 다니던 카페처럼 생각 없이 들어왔는데 다르다.
▲ 햇고춧가루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낭만 어르신 고급진 카페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참 통화를 하시더니만 고춧가루가 배송되었다. 테이블 위에 포도도 한 상자 같이 말이다. 목소리가 하도 커서 그냥 귀에 쏙쏙 들린다. 아는 사람이면 얼마에 어디서 샀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다. |
ⓒ 김은아 |
어르신들은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목소리가 참으로 크시다. 가만히 있어도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린다. 명절에 햇고추를 빻아서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좋아서 애들한테 몇 근씩 나눠줬단다가 시작이었다. 어르신은 휴대전화를 들더니 통화를 상당히 오래 걸쭉하게 하신다.
"고추 한 근에 월매지? 올해 많이 수확했다면서"
"응 추석에 먹을 것만 조금 빻았는데 이제 빻아야지. 얼마나 필요햐?"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고추 수확과 빻은 고춧가루 이야기로 한참 동안 통화를 하신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전화를 하는 사람이나 휴대전화 너머 어르신 목소리까지 아주 또이또이 들린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 고춧가루라면서 검정 비닐봉지를 한 어르신이 가져다주고 사라지신다. 두 어르신이 양 많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예상치 못한 광경이다.
한편에선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를 주문하시고 오니,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펴진다.
"내가 해장국 한 턱 쏠게."
다른 편에서 들리는 소리다.
"워찌, 이제 왔어? 배추 모종 심었어?"
"아이고 뭔 모종이여. 농사 그만해야지."
그렇다.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그 도시에 맞는 장소성과 아우라가 우러나는 법이다. 같은 인테리어, 같은 공간, 같은 음료다. 그런데 느낌이 이리도 다르다. 도시의 공간은 그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호텔에 입점해 있는 카페라면 왠지 밭에서 입던 작업복 차림으로 가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있는 대로 볼륨을 높여 통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관점에 따라 매너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누구도 인상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많지도 않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프로토콜이자 문화인지도 모른다.
▲ 람보르기니 부럽지 않은 경운기 밭이 아닌 도시 공간에 주차된 경운기가 마치 람보르기니 보고 놀란 가슴마냥 신기하다. |
ⓒ 김은아 |
어르신들의 큰 목청이 곁들어진 금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명 '금카치노'다. 경운기를 타고 커피를 마시러 올 수도 있다. 강남에서는 경운기를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특별한 서비스를 누릴 수도 없다.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 세족대 세족대라는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씼는 곳이 세면대이니 세족대라 해서 틀릴 것 같지는 않다. 볼품은 없지만, 주인장 마음이 일품이다. |
ⓒ 김은아 |
낭만이라는 것이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삶의 일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곳만의 낭만이 있다. 아무리 닮으려 해도 본질이 다르니 서울의 대형 카페를 갖다 놓아도 느낌은 영판 다르다.
우리의 도시도 그렇다. 브랜딩이나 도시재생이니 도시디자인 사업을 하며 타 지자체, 더 나아가서는 해외 주요 도시를 벤치마킹하지만, 도시의 사용자가 다르기에 사용법도 아우라도 다르다. 분명 같은 옷인데 어찌나 느낌이 다른지. 그래서 낭만도시라는 것은 인프라보다도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은 사용자를 차별한다. 사용자의 특성을 녹여내는 공간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에 우리가 찾는 낭만이 있다. 낭만도시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도시민의 삶을 잘 녹여 섬세하게 배려한 공간에 있는 것이다. 인프라가 아니다. 삶이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의 도시가 아닌, 우리의 도시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남의 떡은 언제나 커 보이고, 화면 너머로 보이는 저세상은 참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그 떡이 그 떡이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며 ‘우리 집이 최고다’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하며, 사용하기 좋아야 좋은 도시, 낭만도시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이 가장 멋진 곳이라는 거죠. 밭에서는 몸빼바지에 장화나 작업화가 딱입니다. 하이힐 말구요. 때 빼고 광을 내보니 전에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멋이 있는지를요. 덤으로 마음 한구석이 가득 차는 것만 같습니다. 왜요? 남의 집이 아니고, 내 집 같아서요. 삶이 숙성되어 만들어진 문화는 신축건물에 설치된 붙박이장이 아니랍니다. 천지삐깔 널려있는 익숙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마시며, 오늘 하루가 낭만적인 날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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