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다르게 살려고 여길 선택했습니다

강민수 2024. 10. 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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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공동육아①] 돈 주고 못 사는 육아공동체... 둘째도 계획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여기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서로 돌봄하는 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참나무 어린이집입니다.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살이와 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참나무어린이집의 부모 조합원, 배코가 쓴 글입니다. 배코(강민수)는 7세방 아빠입니다. <기자말>

[강민수]

저는 제가 본 아버지의 삶을 따라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정보다 일터를 오래 지켜왔던 아버지였어요. 지방 출장이 많아 타지에서 일하고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그 시대 아버지들에겐 일이 더 중요했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아버지는 자연스레 엄마, 누나, 아들 즉 가족과 멀어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내 아버지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세대의 길에서 벗어나 저의 길을 가 보고 싶었습니다. 첫째가 태어나자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6개월 동안 일 생각 없이, 오로지 아기 돌보기에 전념했습니다. 밤에는 서너시간 마다 일어나 분유를 먹이고 낮에는 유아차에 아이를 태워 한강변을 걸었습니다.

그날 아이가 먹은 것, 변 상태, 새로 일어난 변화 등등을 나누다보니 아내와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하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처럼 아이와 밀착된 생활은 사라졌습니다.

아내와 하는 농담 '우린 육아종신형이야'
▲ 2024년 어린이집 모꼬지 1박 2일 전체 모꼬지, 이른바 MT도 갑니다.
ⓒ 참나무어린이집
복직한 뒤로 점점 두려움이 넘실거립니다. 가족보다 일이 먼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노는 시간에도 일 처리 프로세스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뭐하고, 이걸 저렇게 처리하고 그 다음에 이렇게 하면 되겠지… 그런데 그러다보면 불안감이 차오릅니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나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까. 가정 안에서 홀로 외로운 섬이 되지는 않을까.

정말 피할 수 없는 저녁 약속이 생기면,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합니다. 약속 시간 내내 집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지, 아내는 힘들지 않을지 어떨지 생각합니다. 일과 가족 사이 균형이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요. 일과 돌봄 사이의 고민에 어떤 때는 호흡조차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우스개소리로 '우리는 육아종신형에 처해졌다'고 말합니다. 과장해 말하면, 죽을 때까지 자식을 돌봐야 하는 운명입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죠.

이 운명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척하기 위해 조금 다른 걸 해보기로 합니다. 집 근처에 있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서울 마포구 새터산길 35). 2020년 코로나 시작하던 시기, 아이 24개월부터 시작했으니 현재 5년 째 다니는 곳입니다.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집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살던 모습도 떠오르실 겁니다. 아파트가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서 과연 가능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메가시티 서울 한복판에서요.

협동조합 가운데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고, 이를 운영하는 부모들로 이뤄진 운영위원회와 선생님들로 이뤄진 교사들로 구성이 됩니다. 아이들 25명 정도로 엄마, 아빠, 선생님들까지 하면 60명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노느라 신난 아빠들이 많은 어린이집
▲ 놋다리밟기 아빠들이 어깨를 대고 엎드리면 그 위를 아이들이 엄마들의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왕이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네요.
ⓒ 참나무어린이집
느슨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만났다 흩어지는 스타일입니다. 같은 동네가 아니어도 차로 오갈 수 있는 거리면 가능합니다. 동 단위를 넘어, 구를 넘어서도 왔다갔다 합니다. 한강을 건너서 오는 가정도 있어요. 당연히 어린이집 등하원을 차로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함께 어울려 다같이 노는 재미가 여기서는 가능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망구, 딱지치기, 곤충 잡기 등을 합니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하다보면, 저도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나서 잘 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옛날 기억이 떠 오릅니다. 결국에는 신이 나서 날 뛰다보면 그런 제 모습에 저도 또 놀랍니다.

그래 나도 이런 놀이를 할 줄 알았지, 먹고 사느라 이런 것들을 까먹고 살았나 싶어요. '노는 게 제일 좋아'란 뽀로로의 말처럼, 정말 노는 게 제일 좋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빠들이 숨겨져 왔던 놀이 본능을 발휘합니다. 어디에 가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어디 계곡이 재밌다더라, 이번주는 자전거를 타러가자. 서로 일정을 맞춰가면서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육아를 해결하러 갑니다.

지난 8월에는 '아빠+아이들'로 이뤄진 일곱 가정이 2박 3일 여행도 갔다왔습니다. 밥 해먹이고 놀고, 재우고 여럿이 다같이 하다보니 육아의 고단함은 잊었습니다. 기록 차원에서 남긴 '아빠 여행' 영상이 인스타에서 20만의 조회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희 어린이집은 단체 MT도 갑니다. 1년에 한번, 어린이집 부모와 아이들, 선생님들까지 1박2일 일정입니다. 부모들이 단체 줄넘기도 하고, 아이들은 신발을 멀리 차봅니다. 아빠들이 서로 어깨를 겯어서 놋다리를 만듭니다.

그 위를 아이들이 엄마들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건너갑니다. 아이들이 제 등을 밟을 때 마다 쿵쿵 고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세상 다 가진 기분처럼 웃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왕이 된 것처럼요. 허리가 아파도, 하고 나면 정말 뿌듯합니다.
▲ 엄마없이 아빠들과의 2박 3일 엄마 없이도 가능한 2박3일. 아빠들과 아이들은 엄마 눈치보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 참나무어린이집
요즘엔 저출생 문제를 돈으로 풀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에서 '1억 원을 주면 애를 낳을 수 있겠냐'라는 설문조사까지 했습니다.

'돈 줄 테니 한번 해 볼래?'라는 식의 사고가 더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정말 손쉬운 방법입니다. 아이 먹이고 재우고,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 돈으로 되면 얼마나 편할까요. 세금 들여 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많은 문제들이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되었겠지요.

아빠 육아가 버거운 노동 구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양육자 한 사람이 회사에 남아 있는 시간이 늘수록 그 육아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69시간 노동시장 확대한다고 했다가 난리가 나서 철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출생 문제를 이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던지고 있는 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입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육아입니다. 그 돌봄의 어려움을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가족에게 전적으로, 일방적으로 맡겨 놨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20년 전 선배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어린이집을 저희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13년 전 지금의 어린이집 시설 터전을 짓기까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일들, 관계의 힘으로 부모들이 머리를 맞대서 그 시간을 이어왔습니다. 아빠 육아를 이 공동체 안에서 해보니 회사 일로 머리를 싸매던, 그 두려움도 어느정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저출생 문제가 나아질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함께 돌보는 사회, 서로를 챙기는 공동체 복원은 누군가 주도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지금, 여기, 주변에서부터 부모들의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또 그래서 가정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면, 공동체의 복원도 조금이나마 시작되지 않을까요.

나이 마흔에도 둘째를 계획하는 이유
 엄마 없이도 즐거운 시간 가능합니다.
ⓒ 참나무어린이집
지난 봄, 저의 둘째가 사라졌습니다. 아기 심장 소리를 듣겠다며 찾아갔던 산부인과. 첫째도 이 병원에서 낳았으니, 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산'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 한번은 겪는 일이다'라고만 합니다.

병원을 나오는데, 봄 햇살이 우리 부부를 무심하게 반겼습니다. 하지만 두 다리는 풀렸습니다. 임신 7주 만에 둘째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한국 나이로 벌써 마흔 살인 저는, 오래 노력해왔습니다. 아내는 난임 병원 예약까지 잡아 놓은 상태였죠. 그런데 임신 소식이 찾아왔고, 많은 분들에게 축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둘째까지 키워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멀리 계시는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정말 쉽지 않은 길인 걸 압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하나 더 있어도 감당할 수 있겠다, 이 사회 안에서 한 시민으로 키워낼 용기가 싹 터 올랐습니다. 저희가 둘째를 생각한 건, 어두컴컴한 새벽에도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는 고단함,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야 하는 육아의 그 어려움을 다 까먹어서는 아닙니다.

둘째가 다시 찾아오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할 예정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배경에는, 저희가 함께 해온 육아 공동체, 이 곳 참나무어린이집(홈페이지 바로가기)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는 10월 19일엔 '2025년 등원설명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학부모들의 문의 또한 언제든 환영합니다.
 홈페이지 첫화면 모습(화면갈무리)
ⓒ 참나무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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