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호구였습니다” [편집장 레터]
아니나 다를까. 역시 호구였습니다. ‘귀차니즘’의 대명사답게 하나하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깨알같이 찾아내서 누리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냐고요? 그래도 좀 많이 억울하기는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부자 회사 몇 개 꼽으라면 몇 순위 안에 들 것 같은 SK텔레콤에 저 같은 소시민이 매년 17만원 가까운 돈을 퍼주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SK텔레콤은 물론 일언반구도 없었죠. “너 같은 호구가 있어 내가 땅 짚고 돈 번다”면서 흥얼거리지 않았을까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선택약정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무약정자 현황이 알려지면서 시끌시끌합니다. 무려 1229만명. 혼자만 손해 본 게 아니라 1229만명이나 되니 맘을 달래라고요? 달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큽니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의원실이 파악한 결과로는 올해 8월 말 기준 1230만명이 무약정 상태다. 이들이 선택약정에 가입했다면 약 1조4000억원 정도 통신비 할인 효과를 봤을 것”이라며 “그 돈이 모두 통신사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약정이 뭐냐고요? 선택약정은 휴대폰을 구매할 때 기기값을 할인해주는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았거나, 공시지원금을 받았더라도 가입 후 약정 기간이 지나면 요금의 25%를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보통 24개월 약정을 하니 24개월이 지나면 누구든 선택약정제도 대상이 된다는 얘기죠. 이후 12개월, 24개월 선택약정을 하면 됩니다. 바로 휴대폰을 바꿀 거면 모르지만 보통 휴대폰을 3년은 쓰니 12개월 선택약정을 하면 되겠죠.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무약정자가 그리 많다는 것은 가입한 지 24개월이 넘었어도 내가 선택약정 가입이 가능해졌는지 아닌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이가 많지 않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럼 선택약정 가입 대상이 됐을 때 통신사가 가입자에게 알려주면 되지 않냐고요? 딩동댕!!! 그런데 말입니다~ 그 쉬워 보이는 일을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왜 절대 하지 않는 걸까요? 노종면 의원이 “1년 동안 무약정 상태를 유지한 것은 이용자 의도가 없다고 판단되기에 1년이 지나면 (요금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 금액을) 환급해주는 방안도 고민해달라”고 했는데 두 손 모아 짝짝짝~ 박수 쳐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통신 요금 따박따박 받아 챙겨 매년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는 통신 3사가 이처럼 꼼수 요금제로 질타를 받은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죠(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합산 영업이익이 4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굳이 옛날 일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도 출고가 221만원 삼성 ‘갤럭시Z6폴드’를 구매해 SK텔레콤에 가입하면서 공시지원금을 최고로 받으려면 12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선택해야 하는 등, 통신사들의 ‘소비자 등골 빼먹기 신공’은 나날이 발전 중입니다.
그나저나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하루빨리 선택약정에 가입하라고요? 휴대폰을 무려 4년 넘게 써서 이제 막 신형 휴대폰을 구입하려 하던 차인데,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통신사 바꾸는 걸로 호구된 울화를 달래봐야겠습니다(p.14~15 참조).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게 명문 골프장 잔디 맞아? [정현권의 감성골프] - 매일경제
- 모두가 등 돌렸다…배민, 어쩌다 여기까지 [카드뉴스] - 매일경제
- “오빠, 우리집 3억도 안돼?”...집주인들 ‘패닉’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일경제
- “北 얼마나 힘들기에”…한 달 새 3명 연이은 귀순 - 매일경제
- 편의점도 ‘흑백 대전’...흑백요리사로 맞붙은 CU vs GS25 - 매일경제
- 2030이 혈당관리 돌입한 까닭은? - 매일경제
- 결국 ‘5만전자’···눈물의 손절이냐 물타기냐 - 매일경제
- 연세대 ‘논술 유출’ 논란에...수험생들 ‘발칵’ - 매일경제
- 10대 소녀들인데...뉴진스 ‘성상품화’ 논란 예측 못했나요 - 매일경제
- 몸값 높아지자 IPO·매각 속도…조 단위 뷰티 ‘대어’ 평가받기도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