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전설 이승훈 "9년만에 메달이라니…그렇게 못 땄나 싶네요"
은퇴엔 선 그어…"올림픽 목표는 메달, 이후로도 계속 스케이트 탈 것"
(영종도=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202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년 만에 시상대에 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 이승훈(37·알펜시아)이 "9년이나 됐는지 몰랐다. 그렇게 메달을 오래 못 따고 있었나 싶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이승훈은 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승훈은 지난 16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2025 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7분59초52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2월 세계선수권대회 이 종목 금메달을 땄던 이승훈은 9년 1개월 만에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다시 올랐다.
이승훈은 "그냥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메달을 따게 돼 대단히 기쁘다"면서도 "사실 성적엔 크게 연연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9년 만에 메달을 다시 땄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알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예전처럼 항상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높은 목표는 없어졌지만, 나름대로 작은 목표들은 계속 있다. 그게 동기부여가 된다"며 "이젠 내게 스케이트는 겨울에 즐기는 스포츠가 된 것 같다"고 달관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선수권 메달을 예상한 건 아니라는 이승훈은 "매스스타트는 막판에 선두권에만 있으면 충분히 (앞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항상 한다"며 "이번엔 생각한 대로 다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1988년생으로 노장 중의 노장인 이승훈은 올 시즌 회춘한 듯한 경기력으로 굵직한 대회에서 성과를 냈다.
지난달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팀 추월 은메달을 목에 걸어 역대 한국 선수 동계 아시안게임 최다 메달리스트(금메달 7개·은메달 2개)로 우뚝 섰다.
2월 말 폴란드에서 열린 ISU 월드컵 5차 대회 남자 매스스타트에선 7년 만에 우승하더니,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승훈은 "아시안게임 은메달은 아홉번 째 메달이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고 영광스럽다. 매스스타트에서 다시 1등을 하면서 더 큰 자신감을 얻었고, 세계선수권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좋게 마무리해서 기쁘다"고 각 메달에 담긴 의미를 짚었다.
이승훈은 경기력이 향상된 건 전혀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당연히 기량은 쇠퇴하고 있다"는 이승훈은 "어렸을 때 너무 많은 훈련을 했는지, 이젠 경험이 워낙 많이 쌓인 건지,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 같다"며 국제 대회에서도 여전히 시상대에 오르는 비결을 설명했다.
이승훈은 자신에게 따라붙는 '노익장'이라는 표현이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느꼈다.
그는 "당연히 잘해야 할 나이엔 조금만 못해도, 나는 잘했다고 생각해도 부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지금은 조금만 잘해도 더 칭찬받는 느낌이라서 훨씬 좋다"고 활짝 웃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까지는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승훈은 "올림픽은 늘 기대하게 된다. 메달을 따고 싶다"며 "오랜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도 따면서 큰 자신감을 갖고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름엔 스케이트 대신 사이클, 웨이트 트레이닝, 골프 등 취미 운동을 하다가 전지훈련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은퇴'엔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올림픽 끝나고 은퇴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이승훈은 "건강 삼아서라도 스케이트를 계속 탈 계획이다. 앞으로도 계속 빙판 위에 있을 것"이라고 굳게 말했다.
이승훈은 한국 빙속 장거리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도 짚었다.
이승훈은 "선수 풀이 많아야 그 안에서 좋은 선수가 나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태릉 빙상장 빙질이 더 나아져야 한다"며 "경기장 환경이 좋아지면 경기력이 당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빙질에 따라 스케이팅 기술과 감이 아예 다르다. 외국에서 탈 때와 태릉에서 탈 때의 스케이팅 방법도 다르다"고 설명하며 "어린 선수들이 태릉에만 익숙하다 보니 국제대회 경쟁력이 좀 떨어지고 성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면서 스피드 스케이팅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모두 개선되길 바랐다.
soru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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