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국민 할아버지가 됐을까?

최다혜 2026. 3. 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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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강원도 역사 여행 16] 동안 이승휴 선생의 제왕운기

[최다혜 기자]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민 할아버지가 있다. 그 사랑과 애틋함은 핀란드의 산타 할아버지 못지 않을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부터 이 분을 국조(國祖)로 불렀으니까 말이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를 잡은 그 분, 바로 단군 할아버지다.

단군 할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다. 우리의 성씨가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정씨 등으로 제각각이라 서로 다른 조상님을 두었음에도, 단군 할아버지만큼은 누구나 우리 할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근함과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쉽게 단군 할아버지를 우리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누군가가 당신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인간 자명종에게 고마워합시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중, 레베카 솔닛 지음

우리가 단군 할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어렵사리 애쓴 사람이 있다.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그는 인간 자명종인 셈이다. 그는 사람 사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노동하고 있었다. 고려 시대 3대 역사서 중 한 권인 <제왕운기>를 쓴 동안(動安) 이승휴다.
몽골의 침략전쟁에 휘청인 삶
 삼척 두타산 천은사 내 동안 이승휴 선생 사당(동안사)
ⓒ 최다혜
인간 자명종의 삶은 어땠을까. 여느 고려 사람처럼 이승휴도 몽골의 침략 전쟁 속에서 아주 많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승휴 선생님이 너희(초등학생) 만할 때,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어."
"이승휴 선생님도 같이 싸웠어?"
"응. 어릴 때 말고, 어른이 된 다음에는 같이 싸워야 했어."

아이들은 몽골이란 이야기를 듣자 바짝 긴장했다. 춘천 봉의산성에 다녀온 뒤, 아이들에게 몽골은 무시무시한 침략자였다. 소와 말의 피를 마시며 버텨도 이길 수 없는 압도적인 적으로 각인됐다.

[관련기사] 근육으로 읽는 고려 시대 몽골 침략기 https://omn.kr/2gnty

"그럼 이승휴 선생님도 소와 말의 피를 마셨어? 그리고 졌어?"
"이승휴 선생님은 어땠을 것 같아?"
"졌을 것 같아. 군인도 아닌데."
"결말은 엄마, 아빠 따라오면 알 수 있어. 가자!"
 고성산에서 요전산성을 향해 오르는 길. 산을 오르다보면 삼척 오십천을 볼 수 있다.
ⓒ 최다혜
 고성산에서 요전산성을 향해 오르는 길. 나무 사이로 틈틈이 동해바다가 보인다.
ⓒ 최다혜
우리는 삼척으로 향했다. 오분항 옆 고성산에 있는 요전산성을 찾아갔다. 요전산성은 이승휴가 몽골과 전투를 치른 곳이다.

강릉에 사는 우리 가족 입장으로는 <제왕운기>를 쓴 위인이 몽골과 전투를 치른 장소가 우리집에서 가까워 좋지만, 당시 이승휴에게는 굉장히 얄궂은 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전투였기 때문이다.

이승휴는 어렵게 살았다. 1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친정인 삼척으로 돌아갔다. 한창 학업에 전념하던 중인 이승휴는 공부를 멈출 수 없었다. 당시 고려 수도인 강화도에 남았고 친척 어른이 그를 돌봐주게 됐다. 어른들의 돌봄 속에 훌륭한 스승도 만났다. 덕분에 그가 29살이 되던 해, 마침내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기쁜 소식을 안고 한달음에 삼척에 계신 어머니께 달려갔다. 한참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꿈 같은 휴식 후 이제 일을 하러 수도인 강화도로 올라가려던 참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여간해서는 험한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 동해안까지 온 적 없던 몽골군이 삼척까지 쳐들어오고 만 것이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험
▲ 요전산성으로 가는 길 요전산성을 찾는 이가 드물어서인지, 등산로 위로 수풀이 우거져서 길을 겨우 더듬어 찾아나갔다.
ⓒ 최다혜
'괜히 왔다.'

요전산성을 찾아 산을 오르는 길이 험했다. 아이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가파른 경사는 둘째치고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전산성을 찾는 이가 드물어서인지 등산로는 아주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을 뿐, 수풀이 우거졌다. 보통 풀도 아니었다. 죄다 가시밭길이었다. 가시가 굵고 억센 산초 나무와 잔가시가 많은 찔레 덩굴과 줄땅기 덩굴이 수북했다. 앞으로 몇 걸음 채 나아가기 힘들었다. 아이들도 질색팔색을 했다. 계속 가도 되는거 맞냐며 질겁하며 물었다.

힘들어 할 만 했다. 확실히 오르기 어려운 길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드물고 귀한 기회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다. 용기를 내어 모험하고 마주한 문제를 인내심을 가지고 극복할 일도 드물다. 그래서 어른인 부모가 곁에 있을 때 어렵더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바닥에서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가시덤불을 나뭇가지로 거둬내고 발로 씩씩하게 밟아가며 길을 만들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도 켰다.

"여기 파란 점이 우리 위치야. 등산로 위에 잘 있지?"

GPS로 우리가 등산로 위에 잘 서있는지 계속 확인하며 더듬더듬 천천히 나아갔다. 누군가가 먼저 걸어갔던 흔적도 큰 도움이 됐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천천히 요전산성으로 나아가는데, 이 시간은 마치 이승휴의 삶을 닮은 것 같았다. 그의 삶은 온통 가시밭길이었지만 심지 굳게 묵묵히 살아냈다. 우리 아이들도 이 산을 오르며 위대한 인물의 삶의 태도를 조금은 닮을 수 있지 않을까? 다 엄마 욕심이지만 말이다.
 요전산성 표지석에 가는 길에 만난 벽처럼 쌓인 돌무더기. 혹시 요전산성의 흔적일까?
ⓒ 최다혜
 요전산성 표지석에 가는 길에 만난 벽처럼 쌓인 돌무더기. 혹시 요전산성의 흔적일까?
ⓒ 최다혜
 요전산성 표지석
ⓒ 최다혜
마침내 요전산성 표지석에 도착했다. 이제야 좀 식은땀이 식고 마음도 편해졌다. 표지석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멀리 바다도 보였다. 배낭에서 물과 과자를 꺼내 아이들을 먹였다. 달콤하고 시원한 것이 목을 타고 넘어가니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랑 찬찬히 표지석을 읽었다.

"신라 이사부 장군도 여기서 울릉도랑 독도를 정벌하러 출발했대."
"여기가 그렇게 좋은 곳이야? 이사부 장군님, 이승휴 선생님 다 여기 계셨다니."
"올라오면서 강(오십천)도 보고 바다도 봤지? 우리 군대가 머무르면서 물도 마시고, 필요한 물자를 나르기도 좋았을거야."
"그럼 춘천 사람들처럼 소와 말의 피를 안 마셔도 됐겠다."
"그치"
"이승휴 선생님은 졌어? 몽골군 너무 세던데."
"바로바로~ 살아남으셨단 사실. 이 전투 이후로도 오래오래 77세까지 사셨답니다."

물론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이승휴는 요전산성 전투 이후 전쟁의 실상을 직접 경험했다. 몽골과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백성들은 죽거나 고통 받았다. 그래서 그는 남은 삶을 전쟁을 끝내고 백성들의 삶을 회복하는 데 힘썼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려 조정은 몽골의 부마국이 되더라도 긴 전쟁을 끝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특수부대 삼별초는 달랐다. 몽골군과 끝까지 싸우고자 했다. 삼별초는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들고 강화도를 봉쇄했다. 봉쇄는 너무 삼엄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여간해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승휴도 봉쇄된 강화도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강화도에서 삼별초로부터 탈출했다.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곧장 고려 조정으로 향해 삼별초에게 봉쇄된 강화도의 상황을 알렸다.

이 일을 계기로 이승휴는 왕의 신임을 사 중앙 관리가 됐다. 오랜 시련 끝에 꽃길을 걷나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니었다. 그는 충렬왕에게 '국왕이 고쳐야 할 폐단 10개 조'를 올렸다. 그리고 파직됐다.

13세기 문인이 기록한 역사적 진실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용안당이 있던 자리. 삼척 두타산 천은사 경내에 있다.
ⓒ 최다혜
다시 외가인 삼척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그리고 천은사 위치에 집을 지었다.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인용해 용안당이라 불렀다. 얼마나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살았냐면, 집 뿐만 아니라 청자를 굽는 가마터, 마실 물을 기를 우물도 파고, 풍류를 즐길 연못과 정자까지 풀세트로 다 갖췄다.

옆동네 삼화사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불경을 빌려와 읽기도 했다. 10년 정도 빌려 읽기를 반복했고, 읽은 불경을 모두 합하면 1000권 즈음 된다고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제왕운기>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책을 왕에게 바친다. 고려인이 비록 원나라(몽골)의 부당한 간섭을 받고 있지만 단군조선에서 비롯되는 민족적 DNA를 믿어보자고 말이다.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갖고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고려를 사랑하던 이승휴의 마음은 가닿지 않는 듯 했으나, 이제 <제왕운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더불어 고려의 3대 역사서로 불린다.

고단했던 그 삶으로부터 우리 후손들은 큰 선물을 받았다. 단군 할아버지와 발해 역사의 정통성.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13세기 문인이 기록한 역사적 진실 말이다. 이 진실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정통성을 지켜나가는데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삼척 두타산 천은사로 가는 동안 명상길
ⓒ 최다혜
 이승휴 제왕운기 퀴즈 대회 참여
ⓒ 최다혜
역사 여행에 다녀온 후 얼마 뒤, 아이들은 삼척에서 열린 '이승휴의 제왕운기' 퀴즈대회에 참여했다. 두 녀석 모두 작은 상을 타냈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온몸으로 누벼 알게된 역사라 그런지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맺은 열매가 얼마나 값진지, 아이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겠지? 이 맛에 역사 여행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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