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으로 러시아 무역 통화도 '조정 모드'
지정학적 충돌 등 국제질서 변화
"글로벌 입지 굳건토록 대응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가 양대 블록으로 나뉘면서 러시아의 대외 교역에서 미국 달러화 등의 결제 비중은 떨어진 반면, 루블화와 위안화의 결제 비중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한 루블화 결제 확대와 중국의 무역을 통한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 확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변화가 지정학적 충돌에 따른 국제질서의 변화에 기인한 것인 만큼 우리나라도 이에 대응해 글로벌 입지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5일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러시아의 상품·서비스 수출에서 루블화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40.4%로, 전쟁 시작 전인 2021년 14.3% 대비 크게 높아졌다. 수입에서 루블화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8.1%에서 35.9%로 올랐다.
반면 러시아의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비우호국 통화 결제 비중은 전쟁 전 수출 80%대, 수입 60%대에서 급락해 각각 21.3%와 26.7%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금융제재에 대응해 다른 우호국들과의 교역을 확대한 결과, 무의미한 수준이었던 루블화 이외의 기타 통화 결제 비중은 수출 38.3%, 수입 37.4%까지 급등했다.
러시아의 기타 통화 결제 비중 확대는 전쟁 발발 직전부터 외교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면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높아진 영향이다. 양국 간 교역규모는 ▲2021년 1468억 달러 ▲2022년 1903억 달러 ▲2023년 2401억 달러로 확대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러시아의 제1부총리는 지난해 11월 양국 간 교역에서 루블화와 위안화의 거래가 95%를 차지한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장은 러시아의 수출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2년 전 0.4%에서 34.5%로, 수입에서는 2년 전 4.3%에서 36.4%로 높아졌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시작된 전쟁으로 세계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블록과 러시아·중국 등의 블록으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EU 등은 국제금융결제망인 SWIFT에서 러시아 은행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러시아 개인·기업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는 공시에, 러시아산 원유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경제 제재를 가했다.
반대로 전쟁 전부터 외교적 우호 관계를 보이기 시작한 러시아와 중국은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대(對)중 원유 수출 확대, 중국의 반도체와 전자제품 등 이중 용도 제품의 대러 수출 확대 등을 통해 경제연대를 강화하며 서방 경제 블록에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대외 교역에 나타난 루블화, 위안화의 결제 비중 확대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인 브릭스가 지향하는 탈달러화를 통한 국제질서 변화의 한 단면이란 해석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브릭스는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5개 회원국의 신규 가입과 회원국·파트너 국가 간 무역·금융 거래에서 자국 통화의 사용 확대 등을 포함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처럼 최근의 여러 지정학적 충돌로 냉전 이후 30여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질서가 깨지기 시작하고, 몇몇 대형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제질서의 구축에 힘을 쏟는 시기이므로 우리나라도 세계 경제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의 교역 결제 통화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지난 6월 초에 개최된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그동안 미진했던 양측 간의 교류와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상호 이해 및 지원의 환경을 조성하고 상호 간에 이익이 되는 공급망 구축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러 대형 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국제질서의 우위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지만, 미지의 지역일수록 우리 위주의 접근 보다는 상호 존중의 동반자 관계에 기초해 신뢰를 쌓아가며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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