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는 사람의 몸도 조각"…'뚱뚱한 차' 조각한 이 남자의 발상
세계 인기 오스트리아 조각가
소비지상주의, 인간의 탐욕 유머로
"세상을 확 바꿀 순 없지만
현대사회 문제 일깨우고 싶어"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거대한 옷 조각 '사순절 천'. 갈수록 커지는 인간의 욕망을 빗대어 표현했다. [사진 수원시립미술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2/14/joongang/20221214162752667bgeo.jpg)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분홍색 '살찐' 자동차가 관람객을 맞는다. 풍선처럼 푸둥푸둥 부풀고 부드럽게 접힌 모양이 사람의 지방 덩어리를 연상케 한다. 차 이름은 '팻 카(Fat Car·뚱뚱한 차)',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68)의 대표작이다.
길이 11m, 폭 7.5m에 달하는 스웨터는 또 어떤가. 높이가 8m인 전시장 천장 옷걸이에 걸린 이 옷은 길이가 남아 3m가량은 카펫처럼 바닥에 걸렸다. '사순절 천'(2020)이라는 제목의 '조각'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조각은 여기에 없다. '조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40년을 바쳐온 조각가의 작품들이다. "사람이 살이 찌거나 빠지는 과정도 우리가 살면서 겪는 조각적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바로 부름 작가다.
부름의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6일 개막했다.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조각’의 범주를 확장한 그의 작품 6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2017년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국가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부름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 조각가 중 한 명이다. 내년 해외 곳곳에서 열리는 미술관 전시만 10여 개에 달한다. 친근하고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조각으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꼬집어온 작업으로 인기와 명성을 굳혀가는 모양새다.
사람의 몸도 조각이다
![[사진 수원시립미술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2/14/joongang/20221214162755183qbfl.jpg)
![수퍼카를 녹여서 만든 작품 'UFO'.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사진 수원시립미술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2/14/joongang/20221214162756456nkln.jpg)
![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개인전 전시장 전경. '뚱뚱한 조각'시리즈를 밀대로 민 형태의 추상화가 눈길을 끈다. [사진 수원시립미술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2/14/joongang/20221214162757811rsaa.jpg)
흔히 조각이라면 돌을 깎거나 금속으로 만든 형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부름은 1980년대 말, 옷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형태가 변화하거나 부피가 커지거나 줄어드는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사람의 몸이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로 커지는 과정도 조각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8일 만에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 되는 법'(1993)을 하드커버 책으로 만든 작품으로 선보였다. 책엔 작가가 살찌우기 위해 먹고 자고 한 행동들이 자세히 담겼다.
부름은 200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와 집을 뚱뚱한 모습으로 의인화해 ‘팻 조각’ 시리즈를 내놨고, 관람객의 행위를 조각의 범주로 끌어들인 '1분 조각'을 선보였다. '1분 조각'은 부름을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게 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근데 그게 형체가 없다. 작가의 지시를 그린 작은 드로잉과 의자나 인형, 탁상 램프, 냉장고 같은 기구들이 전부다. 전시장에 붙어 있는 드로잉대로 관람객이 의자를 들거나, 헝겊 인형을 머리 위에 올려놓거나, 냉장고에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행위 자체가 조각되는 작품이다.
"지시 드로잉대로 따라 하면 관람객 누구나 조각이 되어볼 수 있다"는 그는 "조각이라는 게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면 사진도, 그림도 '조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작품 속에 항상 녹아 있는 것은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다. 그는 "내가 작업을 하며 항상 묻는 것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인류가 변화를 위해 정말 강력하게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이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영원한 성장은 위험하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작가는 요즘 환경단체 운동가들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미술품에 테러를 가하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의 질문에 부름은 "기후 위기는 특정 사람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그들이 지금 중요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있다는 데엔 공감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10점의 회화 연작도 선보인다. 언뜻 아름다운 색상의 추상화 같지만, 알파벳으로 쓰여진 '뚱뚱한' 단어를 납작하게 표현한 '조각적 회화'다. 어떻게 조각가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회화과에서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조각을 전공했다.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며 "결국 내가 지금 그림 조각도 하고 있지 않느냐"며 웃었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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