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눈빛, 정갈한 말투, 전통적인 한국 미인의 얼굴. 박순애는 등장부터 남달랐다.

1986년 MBC 공채 탤런트 18기로 데뷔한 그녀는 사극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에서 단아한 인현왕후를 맡아 단숨에 안방극장의 중심에 섰다.

그 모습 그대로, 수많은 남성들의 이상형이자 어르신들이 꼽는 ‘최고의 며느리감’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전통미인이라는 이미지가 그녀에게는 오히려 족쇄였다.
박순애는 사극 속 인자한 왕후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도시의 흉년》이었다.
언니의 결혼 상대를 유혹하는 처제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단정하고 고운 박순애'를 원했고, 결국 드라마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녀의 인생이 급격히 바뀌게 된 건 《한지붕 세가족》 출연 중 터진 열애설 때문이었다.
상대는 함께 부부 역할을 연기하던 유부남 배우 이효정.

당시 박순애는 미혼이었고, 이효정은 아내와 자녀가 있는 상태였다.
박순애는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드라마에서 두 사람 모두 하차했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내가 결혼을 안 하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라는 속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스캔들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박순애는 이듬해, 한 남성과 약혼을 발표한다.
당시 언론에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됐지만, 알고보니 풍국주정의 차남 이한용이었다.
이후 박순애는 1994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고, 회사의 2대 주주가 되며 경영에 일부 참여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방송 출연 없이 조용히 살아오던 박순애는 2010년대 들어 ‘연예인 주식부자 5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풍국주정은 수소차 테마주로 주가가 급등했고, 그녀의 지분 가치도 100억 원을 훌쩍 넘겼다.
2019년엔 무려 340억 원을 기록하며 연예계 은퇴자 중 가장 높은 자산가로 등극했다.

박순애는 지금도 남편 이한용 대표와 함께 한남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공식 석상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길용우 아들 결혼식이나 미술 클래스를 통해 가끔 얼굴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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