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이순신 '자필 수결' 임명첩, 여기서 볼 수 있다

이돈삼 2026. 3.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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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병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전시한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개관

[이돈삼 기자]

 이순신 장군이 자필 서명한 신군안 의병장 임명첩 앞에 선 전은진 남도의병 전시해설사(왼쪽). 의병장 임명첩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수결(手決)해 발급한 유일한 것이다.
ⓒ 이돈삼
"이순신 장군이 자필 서명한 신군안 의병장 임명첩입니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12월 14일, 고하도에 머물던 이순신 장군이 신군안의 보고서를 칭찬하면서 준 임명장입니다. '더 분발해 싸우고, 군율을 엄격히 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수결(手決)해 발급한 유일한 임명장입니다. 흥양(고흥)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군안(1544~1598) 의병장은 1598년 진중에서 순절했습니다."
전은진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전시해설사의 말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원복’ 태극기. 고광순 의병장이 태극 문양 위에 붉은 글씨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不遠復’을 수놓았다.
ⓒ 이돈삼
박물관에선 의병장 임명첩 외에도 '불원복(不遠復)' 태극기도 만날 수 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원복' 태극기는 고광순 의병장이 항일 투쟁할 때 만들었다. 태극 문양 위에 붉은 글씨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不遠復'을 수놓았다. 고광순 의병장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경명 의병장의 후손으로, 1907년 지리산 연곡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했다.

"독립기념관에서 옮겨온 겁니다. 전라남도가 후손을 계속 설득한 결과라고 들었어요. 제107주년 3·1절과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개관에 맞춰 돌아오는 유물인데, 우리 박물관의 상징이 될 의병유산 같습니다."

전 해설사의 얘기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는 당시 의병들이 쓴 투구와 무기 등 갖가지 유물도 전시돼 있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의병의 활약상을 정리한 고정현의 〈호남절의록〉과 고경명 의병장의 문집 등 다양한 서책도 만날 수 있다.

3월 2일까지 사전관람 거쳐 3월 5일 공식 개관
 하늘에서 본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전경. 박물관이 영산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에 자리하고 있다. 영산강변 연면적 7321㎡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들어섰다. 3월 2일까지 사전관람 기간을 거쳐 3월 5일 공식 개관한다. 관람료는 없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제1, 제2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추모전시실, 어린이박물관, 교육체험실, 수장고 등으로 꾸며졌다. 전시실은 이름이 밝혀진 남도의병을 부르는 '남도의병 이름의 길'을 지나 만난다. 제1 전시실은 1555년 을묘왜변에서부터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의 남도의병 기록물을 보여준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제1 상설전시실. 1555년 을묘왜변에서부터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의 남도의병 활동상을 보여준다.
ⓒ 이돈삼
전시공간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의병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시작된다. 일본의 침략 과정을 지도와 연표로 보여주며, 이에 맞선 의병의 활약상을 비교해 놓았다. 을묘왜변 때 일떠선 전 무장현감 이남과 양달사·양달수 의병장 이야기는 조선의 첫 의병으로 기록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부대를 결성한 김천일, 고경명, 김덕령 의병장은 남도의병에 대한 자긍심이다. 정유재란 때 의병과 승병의 활약상도 빛난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은 자기 지역을 지키려는 향보의병 성격이 강했다. 반면 호남의병은 임금과 나라를 지키는 근왕의병을 자처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동학농민혁명 때의 활동상도 보여준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제1 상설전시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부대를 결성한 고경명 의병장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대한제국 시기 의병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시작된 을미의병, 을사늑약을 계기로 일어난 을사의병, 고종의 강제 퇴위에서 비롯된 정미의병으로 이어진다. 을미의병과 을사의병은 기우만과 최익현이 대표한다. 정미의병은 고광순, 양회일과 쌍산의소,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 전해산의 호남동의단 등 연합의병이 특징이다.

부자 의병장 임창모·임학규, 양진여·양상기, 김용구·김기봉도 있다. 형제 의병장 김태원·김율, 김원국·김원범과 부부 의병장 강무경·양방매도 있었다. 머슴 의병장 안규홍, 시각장애인 의병장 백낙구도 빼놓을 수 없다. 황병학과 조카 황순모도 있다. 백운산과 섬진강 일대에서 활동한 황병학은 5·18희생자 황호걸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한국독립운동사'에 따르면 1909년 전국의병 전투 횟수의 47.2%, 교전 의병 수의 60%가 호남의병이었다. '남한폭도 대토벌 기념사진'과 '전남폭도사' 등 일제가 남긴 기록은 호남의병의 활약상과 희생을 함께 증거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낸 역사에 초점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제2 상설전시실. 의병의 이름과 행적, 일본의 만행을 기록한 매천 황현의 유물을 보여준다.
ⓒ 이돈삼
제2 전시실에선 의병의 이름과 행적, 일본의 만행을 기록해 후대에 전한 매천 황현의 유물을 보여준다. 황현은 대한제국의 주권 상실을 통탄하며 음독 순국했다.
"동으로는 진주와 하동, 남으로는 목포에 이르기까지 사방을 그물 치듯이 포위하였다. 촌락마다 샅샅이 수색하기를 마치 참빗으로 빗질하듯 했다. 집집마다 뒤지다가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즉시 죽였다. 의병들은 삼삼오오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몸을 감출 수 없었다. 강한 자들은 돌진하며 싸우다 죽고, 약한 자들은 도망가다 칼을 맞았다." - 황현의 〈매천야록〉 중

호남의병과 대한제국 시기 항일의병, 일제강점기 광주학생독립운동과 독립군의 항일투쟁을 거쳐 쟁취한 광복, 그리고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 빛의혁명으로 이어지는 남도의 의(義) 정신도 짧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추모전시실.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 의병을 기리는 공간이다. 작은 추모 조형물은 전남도내 각 지역의 돌로 만들었다.
ⓒ 이돈삼
추모전시실은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 의병을 기리는 공간이다. 작은 추모 조형물은 전남도내 각 지역의 돌로 만들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은 이름없이 쓰러져간 무명 의병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의병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벽면 전시 그림. 대한제국 시기의 의병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이름난 영웅의 기록과 유물 전시에 머물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낸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수많은 남도의병의 숭고한 희생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며 현대적 계승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된다.

다만 단어 하나, 표현 하나까지 섬세하지 못한 건 아쉽다. 〇〇〇체포, 〇〇산성 함락 등의 표현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상에서 쓰는 단어이지만 의병 관점이 아닌, 일본군 입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〇〇〇 붙잡힘, 〇〇산성 무너짐 등으로 쓰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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