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2년... '넌 누구 편?'이란 잘못된 질문
[뭉치]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시작된 2년 전, 정말 바빴다. 평화운동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전쟁이 났으니 바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대체가 꾸려졌고,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매주 촛불집회를 열고, 글을 쓰고,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제 평화운동이 더 잘 되겠구나.' 사람들이 뉴스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매일 매일 보고 있으니까, 당연히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질 줄 알았다.
너무 커서 실감도 잘 나지 않는 사상자들의 숫자와, 파괴된 집과 병원, 대지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굉장한 두려움을 심었고, 전쟁이 두렵다면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라는 선택지를 택할 줄 알았던 거다.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전쟁 중단을 촉구하며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반전 운동의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
ⓒ 전쟁없는세상 |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넌 누구 편이니?' 전쟁의 잔혹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뉴스 속 장면들 앞에서 이 질문에 답하지 않기란 너무나도 곤란한 일이다. 공습과 전쟁범죄로 사람들이 죽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가해를 마주하면, 나쁜 놈, 나쁜 나라가 누군지 너무도 뻔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은 더 많은 군사지원, 더 많은 군사비, 더 많은 무기거래로 이어진다. 지난 8년 동안 전 세계의 군사비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2022년에는 전 세계가 한 해 동안 약 2조24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했다. 한화로는 약 2980조 원. 너무 커서 감도 안 오는 이 숫자를 평화활동가들이 현실감을 더해 '번역'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1분에 56억 원.' 1분마다 56억 원이란 돈이 전쟁과 전쟁 준비에 쓰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유럽에서 군사비가 많이 늘었다. 이미 군사비 지출이 큰 서부 및 중부 유럽 국가들이 전쟁 발발 이후 군사장비와 병력을 늘리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하며 군사비가 이 지역에서만 13% 증가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2023). 분쟁을 완화하거나 관리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원이나 기회는 영토 방어에 집중된 군사활동에만 쓰였다.
1970년대 유럽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 설립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역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평화학 연구자 베티 리어든(2020)은 "전쟁은 근원적으로 서로에게 폭력을 쓰도록 연루된 집단들의 준비 태세에 따라 그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p.99)"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려 위의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은 시민사회 안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침공에 명확한 비판을 펼치면서도, 군사적 지원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평화단체들은 때때로 크고 작은 반발을 마주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시작되자,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연대체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을 꾸려 집회와 행진, 기자회견 등을 조직했다. 이 활동의 초반에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발언이나 집회 기획 과정에 참여했지만, 군사적인 지원에 대한 입장 차이로 연대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평화운동단체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왔는데, 때때로 이런 반응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들도 침략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인데 왜 침략국의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냐는 것이다. 피침략국 병역거부자를 지원하는 활동의 경우, 그런 배신자를 지원하냐는 비난 역시 익숙하다.
군사주의의 언어는 철저한 이분법으로 구성되고 발화된다. 아군 아니면 적군. 전쟁은 그 이분법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 이분법의 언어는 앞의 예시에서 보여주듯 시민들 사이의 연대 역시 어렵게 만든다. 전쟁이 나서 평화운동이 더 잘될 거라고 순진한 기대를 했던 2년 전을 떠올려보면, 평화운동은 이런 이분법에 유의미한 균열을 내는 데 실패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 2023년 5월 28일,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바흐무트 인근 최전선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박격포를 발사하고 있다. |
ⓒ AP=연합뉴스 |
'누구 편이냐'는 질문이 나쁜 이유는 또 있다. 니 편, 내 편으로 나뉘어진 세계관 속에서 군사행위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은 안보에 대한 접근과 결정에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누구 편이냐는 질문은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행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들이 전쟁을 만들고 지속시키는 결정을 지속할 때, '우리 편' 군대가 지지 않기를 응원할 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군사적 해법 이외의 갈등해결 방법을 떠올리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은 상호적이며 복합적이다. 몇몇 의사결정권자들의 특정한 결정, 행위, 발언만으로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행위자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상호적인 도발과 긴장고조행위가 반복되며 발생한다(김가연 외, 2023). 갈등은 대개 몇몇 의사결정권자들의 정치적 결정이나 행보로서 가시화되지만, 수면 아래에는 구조적인 갈등이 있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착취, 민주주의의 훼손,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인권침해, 차별 등이 그 갈등의 재료가 된다.
이러한 갈등의 상호작용은 '누구 편이냐'는 질문, 즉 군사주의의 이분법 앞에서 철저히 무시된다. 그 질문에서 벗어나면 폭력과 갈등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발견할 수 있고, 무한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무기산업, 지난 2년 동안 전쟁의 가장 큰 승자
전쟁은 무기산업의 위상을 크게 바꿔놨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이 줄을 이으며 무기산업은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되찾았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방위산업 투자를 제한하던 ESG 프레임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그간 방위산업의 비윤리성을 사회적으로 설득해왔던 시민사회의 노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편' 논리에 갇힌 담론은 평화운동에 더 많은 숙제를 가져다 줬다.
지난 2년 동안 무기산업을 관찰하면서 이 전쟁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돈이 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두 달 만에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무려 21%나 치솟았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약 10개월 뒤인 2022년 12월 1일 주요 무기 생산 기업의 연간 주가 상승률 |
ⓒ 전쟁없는세상 |
한국 역시 전쟁의 돈맛을 쏠쏠히 보는 중이다. 한국은 2023년 기준 무기 수출 9위 국가다. 전쟁은 소위 'K-방산'의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으며, 언론은 연일 오르는 방산주를 두고 '자녀에게 물려줄 주식' 타령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방위산업을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스스로를 대한민국 1위 영업사원으로 호명했다.
전쟁이 계속해서 돈을 만들고 특권을 생산한다면, 그것이 돈과 특권이 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바로 전쟁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을 용인하고 승인하는 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전쟁이 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폭력과 자본의 연결은 전쟁을 만든다. 그 연결을 끊어내려는 노력은 누구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 아닌, 그 시스템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으로 시작될 수 있다.
전쟁이 평화운동에 주는 숙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진 직후에 누군가의 소셜미디어에서 이런 코멘트를 본 적이 있다. "전쟁도 못 막는데, 기후위기는 막을 수 있을까." 전 세계가 힘을 합쳐 뛰어난 팀플을 해도 막기 힘든 거대한 위기를 두고, 전쟁이라니. 무력감이 온 몸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페미니스트 평화학자 신시아 인로(2015)는 국제정치에 '페미니스트 호기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복잡한 글로벌 현상을 해석하는 데 젠더화된 공적·사적 관계들을 연결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페미니스트 호기심은 사람들의 삶에서 국제 분쟁의 '연루성'을 밝혀내고, 그 연루성을 토대로 다양한 책무와 행동방안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의 삶에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것, 전쟁으로부터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 모두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질문하는 것, 방위를 핵심삼는 군비증강과 무기생산의 논리가 어떤 신체와 성별에 특권을 부여하는지 의심하는 것. 내 편, 내 편으로 갈려버린 이 세계에 평화운동이 치열하게 던져야 할 질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들이 더 많아져야만, 전쟁을 멈추고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김사무엘 외. (2022. 9. 30.). K방산 장기 호황 시작된다…"자녀에게 물려줄 주식".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92916273451350
-베티 리어든, (2020)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황미요조 옮김). 나무연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2023). 2023년 SIPRI 연감 요약본 (피스모모 옮김)
-신시아 인로, (2015).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김엘리, 오미영 옮김), 바다출판사
-세계군축행동의날 캠페인 (2023). 1분에 56억, 평화와 지구를 위협하는 군사비 이제 그만!. https://peacemomo.org/blogPost/untitled-107
-김가연 외 (2023). 동북아 무장갈등 위험에 대한 조기경보. 피스모모. https://www.peacemomo.org/boardPost/101733/39
-Kimberly leonard . (2022, 5. 20.). 20 Members of Congress Personally Invest in Top Weapons Contractors That'll Profit from the Just-Passed $40 Billion Ukraine Aid Package. Business Insider. https://www.businessinsider.com/congress-war-profiteers-stock-lockheed-martin-raytheon-investment-2022-3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뭉치는 피스모모 리서치랩 액션리서치팀장입니다. 이 글은 지난 2월 3일 열린 2024 체제전환운동 포럼, '도래하는 전쟁위기에 맞서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세션에서 필자가 발표한 원고 중 일부를 수정한 글로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21292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복궁 옆에 이승만 기념관? 시민들은 "시대착오적"
-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말한 바로 그날, 장모가 한 일
- '오세훈 보도 문제 없었다'...KBS에 정정보도 청구한 KBS 기자
- 인천 전세사기 현장 간 민주당 "원희룡 무슨 낯으로 출마했나"
- 1년 간 조롱 받던 연예인... 결말이 더 씁쓸하다
- 시부는 중국, 남편은 북한... 죽어서도 가족 못 보는 비운의 독립운동가
- 국힘 서산·당진시장은 초대, 민주당 태안군수는 뺀 충남 민생토론회
- 민주당 공천 '뇌관' 서울 중성동갑, 안규백 "내일 결론"
- "어학원 개원 관심 바란다"는 초등학교... '사교육 카르텔' 논란
- '잘린' 조성경 전 과기부 차관 "미션클리어!" 이임사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