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 인상률 낮추고 캡 씌워… 트럼프 재집권은 변수

박민지,박준상 2024. 10. 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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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전 속전 타결… 트럼프 재집권 때 협상할 부담 덜어
국민일보DB


한·미는 제12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협상에서 2026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2025년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으로 최종 타결했다. 직전 협정의 첫해였던 2021년 총액 인상률은 13.9%였다. 이때보다 5.6%포인트나 인상률을 낮췄다. 전문가들은 선방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국회에서 줄곧 지적받은 연간 증가율 지수를 ‘국방비 증가율’(11차 협정 기간 중 평균 4.3%)에서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2%대 전망)로 대체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연간 증가율 상한선도 재도입했다. 협정 유효기간은 5년(2026~2030년)이다.

이번 협상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시작부터 타결까지 5개월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직전 협상은 1년 6개월이나 필요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우리 측이 속도를 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트럼프 후보가 다음 달에 있을 대선에서 승리하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건 큰 변수로 꼽힌다.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양측 협상대표인 린다 스펙트 국무부 선임보좌관과 이태우 외교부 방위비분담 협상대표가 협상을 타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4일 “상호 수용 가능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지난 2일 협정 본문 및 이행약정 문안에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미는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8회에 걸쳐 협의를 진행했다. 최초 년도인 2026년 총액을 2025년 총액(1조4028억원) 대비 8.3% 증액한 1조5192억원으로 합의했다.

외교부는 “한·미는 특별협정을 통한 지원항목(인건비·군사건설·군수지원) 틀 안에서 미국이 제기한 소요에 기반해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협의했다”며 “2026년 총액은 최근 5년간 연평균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6.2%)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증원 소요, 군사건설 분야에서 한국 국방부가 사용하는 건설관리비용 증액에 따른 상승분 등을 종합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간 증가율과 상한선을 우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했다. 한·미는 현행 11차 협정에 적용 중인 국방비 증가율 대신 8~9차 협정에 쓰였던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직전 협정 당시 국회의 주요 지적사항은 연간 증가율을 국방비 증가율로 적용했다는 것”이라며 “우리 측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있어서 이보다 합리적인 물가상승률을 적용하고 하한선을 설정해 달라고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제시했고 합의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비 증가율로 한번 바뀐 것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다시 돌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연간 증가율이 5%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도 설정했다. 예상치 못한 경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급격한 분담금 증가를 방지하는 장치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큰 틀에서 매우 선방한 협상”이라며 “첫해 인상분이 직전 협상과 달리 두 자릿수를 넘어가지 않았고, 매년 인상률 역시 우리 측이 기대했던 최소한도”라고 분석했다.

한·미는 미군 역외자산의 정비지원을 폐지하는 등 다양한 제도개선 조치에도 합의했다. 정부는 국내 절차를 끝내는 대로 제12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서명하고,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국민일보 DB


외교전문가들은 “선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직전 협상 때 첫해 총액 인상분이 13.9%였으니까 이번에 8.3%로 책정된 건 상당히 많이 낮춘 것이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잘한 협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연간 증가율 및 상한선 재설정에 초점을 맞췄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트럼프정부 때 압박에 못 이겨 연간 증가율 지수를 국방비 증가율로 설정해 지급해왔는데, 이에 따른 한국 내부의 비판 여론이 매우 컸다”면서 “다시 물가상승률로 하향 조정했으니 이상적 변화”라고 했다.

박 교수도 “초기 금액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연간 인상률”이라며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로 정하고 상한선(캡)까지 씌워 5% 이상은 올릴 수 없도록 했다는 건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는 경우 이번 협상을 부정할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최근 트럼프 후보 측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규모를 3%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현재는 2.5% 수준이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는 최대치를 얻어내기 위해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며 “그가 재집권에 실패해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트럼프 후보가 정권을 잡더라도 이번 협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박 교수는 “누가 미국 대통령이 돼도 협상을 번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양국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윤석열정부가 미국 대선 전에 끝내려고 했던 것”이라며 “지금도 공화당에는 트럼프 지지자들로 꽉 차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8.3%로 줄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지금의 협상은 그대로 두되, 새로운 협상의 틀을 제시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가 간 협약이 발효하면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약의 지위를 갖게 된다”며 “법적 효력을 지니는 것이라 법적 안정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방위비 분담금을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바꾸는 등 투명성 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총액형이 아니라 개별 항목을 논의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협상했어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회에서도 지적하는 사안이라 미국 측에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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