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아버지 그늘에 가려져서.. 반지하 15년 무명생활 버틴 아들의 최후

"나는 낙하산 타기 싫었다"

박준규는 어릴 적부터 '박노식 아들'로 불렸다.

1960~80년대 한국 액션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배우 박노식.

영화 용팔이 시리즈를 시작으로 3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던 전설적인 배우였다.

박준규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1971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감독·제작·주연을 맡은 인간 사표를 써라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오랜 시간, '박노식의 아들'이라는 이름표는 칭찬보다 부담이었다.

“무명인데 다 나를 알아봤어요.

누구 아들인지 다 아니까.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욕먹는 거죠.

동료와 비교되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비교됐어요.”

그렇게 100편이 넘는 영화에 단역에 머무른다.

스스로 말했듯, 아버지의 인맥이나 추천으로 출연한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임권택 감독님과 아버지가 그렇게 친했는데도, 난 그분 영화에 한 번도 못 나갔어요.”

낙하산을 타지 않겠다는 고집은 어쩌면,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뿐만아니라 아버지 박노식은 전재산을 투자해 무리하게 사업을 시도했는데 망해서 박준규에게 금전적으로 한푼도 지원해줄 수 없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다보니 반지하에 살았고, 긍정적이었던 두 부부는 홍수가 나서 침수됐을 때도 웃어 넘겼다.

'야인시대'는 내 인생의 전환점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박준규는 쌍칼 역을 맡아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렸다.

15년의 무명 끝에 찾아온 전환점이었다. 쌍칼은 단순한 조연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동안 했던 두목, 회장, 대장 역할 중 멋있던 것만 쏙쏙 뽑아서 만든 캐릭터예요. 제 인생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존재였죠.”

이미 드라마 <왕초>에서 똑같은 쌍칼로 출연한적있어서 야인시대 쌍칼을 안하려고했지만, 안했으면 지금의 박준규는 없었다.


'야인시대' 이후 박준규는 예능에서도 활약하며 ‘쌍칼’ 아닌 ‘박준규’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억지 웃음을 짓지 않겠다는 태도로, 솔직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며 사랑받았다.

예쁜 여자는 예쁜 여자 욕 안해!

예쁜 여자는 예쁜 여자 욕 안한다는 올타임 명언을 남긴 박준규.

해명하고 싶다는 마음 일절 없다는 상남자 면모를 선보이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박노식이라는 큰 이름 앞에서 긴 무명과 비교를 견디며 버텨야 했지만, 박준규는 끝내 누군가의 덕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제 자리를 만들었다.

아버지 없이도, 아버지의 이름 없이도. 결국 배우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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