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보증금 받았지만... 이 사람이 계속 활동하는 이유

서동규 2026. 5. 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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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⑩] 전세피해 대응활동을 이어가는 세입자, 이다빈의 목소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연재 기사 시리즈는 제9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기자말>

[서동규]

 다빈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다빈씨는 평생 세입자로 살았다. 인천에서 성남으로, 성남에서 서울로 직장을 따라 이사를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구한 첫 집에서 전세사기를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증금을 모두 되찾았지만, 그는 여전히 전세피해 대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료 피해자들에게 '훌륭한 캠페이너'라고 불리는 다빈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 반갑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관악구에 살고 있는 이다빈이라고 합니다. 개발자로 일하고 있고, 나이는 삼십대 중반입니다. 관악구 남현동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옆 동네 청룡동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어요.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반지하 한번 벗어나 보자 해서 전세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나요? 거기서 보증금 피해를 입으시긴 했지만요.

"회사가 원래 판교에 있었는데 양재로 이사를 왔거든요. 회사 따라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원래는 회사가 판교에 있으니 가까운 성남에서 자취생활을 했어요. 회사가 양재로 가니까, 성남에서 양재까지 출퇴근 하는 게 힘들어서 서울로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양재 주변은 전월세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나마 저렴하면서 교통이 가까운 곳이 관악구였고, 그 중에 조금이라도 양재에 가까운 쪽으로 해서 남현동을 찾은 거죠."

- 그렇군요. 성남에서도 전세로 사셨어요?

"아니요. 그때가 첫 자취였는데, 반지하 월세집이었어요. 서울로 이사 갈 집을 찾다가, 이제 나이도 30대가 되었고 하니 반지하 한번 벗어나 보자 해서 전세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5평 쯤 되는 좁은 집에 전세 보증금이 1억 7천만 원이긴 했지만, 반지하가 아니니까 담배 냄새도 덜 나고 벌레도 없어져서 만족했습니다. 은행에서 전세 대출도 문제 없이 나왔습니다.

집 위치가 사당역 번화가랑 가깝고, 관악산 가는 길목이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언덕 위에 있어서 언덕을 올라오면 왁자지껄 하는 분위기가 조용해지곤 했습니다. 한강을 보러 산책을 자주 나갔던 것 같아요. 사당역이랑 이수역을 지나서 30분 정도 걸으면 한강공원이 나왔거든요. 그 집에서 4년 정도 살았어요."

- 지금 동네는 어때요? 오래 사실 계획이세요?

"지금 사는 집은 여기 봉천역 근처에요. 작년 10월에 이사를 왔으니 반년 조금 넘게 살았네요. 오래 살지는 모르겠어요. 서울에 사는 1인가구들 특징이, 사는 동네가 직장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오래 살 거냐는 질문이 '이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냐'는 질문 같이 느껴져요. 성남에서 서울로 이사온 것처럼, 직장이 이동하면 동네를 옮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혼자 살고 있기도 하니까요."
 다빈씨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막상 모이려고 하니 모일 곳이 없는 거예요"

- 피해를 당했다는 상황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뉴스에서 미추홀구랑 강서구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한참 많이 나왔을 때가 있잖아요. 그 때 저도 불안해지니까 이것저것 조사를 해봤죠. 그러다가 무슨 앱을 알게 되었는데, 월마다 몇 천 원을 내면 집이 위험해질 때 알림을 준다고 하더군요. 불안하니까 가입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임차권 등기, 가압류 설정 이런 경고가 막 울리기 시작했어요. 상황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 상담도 알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했습니다.

경매까지 잡히고 나서 피해자 단톡방에 초대가 되었어요.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제가 살던 건물 뿐 아니라 같은 임대인에게 피해를 입은 건물이 더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피해 사실을 안 시점에서 1년 전부터 세입자들끼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월마다 앱에 돈도 내고 했지만, 사실 소용이 없었던 거죠. 분석 내용이 별 게 없기도 했습니다."

- 다빈님은 임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세입자를 대표해서 전국대책위 활동을 하고 계시기도 하잖아요. 피해자 분들과는 어떻게 모이게 되셨어요?

"지금은 LH가 피해주택을 매입해서 피해회복을 돕잖아요. 최근에는 더 나은 구제책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제가 피해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전세사기특별법에 둘 다 없었어요. 피해를 당한 집은 다가구주택에다가 위반건축물이기도 해서 피해구제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전세사기특별법과 각종 구제책을 알아봤는데, 제가 지원받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일단은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절박함이 생겼어요. 같은 임대인에게 피해를 입은 건물이 여러 채이니까,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같이 모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모이려고 하니 모일 곳이 없는 거예요. 결국 강남역에 있는 파티룸을 빌려서 세입자 20명 정도가 모였어요. 그 자리에서 '우리가 뭉쳐서 의견을 내지 않으면 기회는 그냥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뭉치자'라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쩌다가 첫 모임 사회를 맡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전국대책위와 소통하면서 활동을 이어가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 피해자 모임이 생기고 나서 주요한 활동은 아무래도 특별법 개정 촉구 활동이었겠습니다.

"맞아요. 저희 피해 사례가 대표적인 사각지대인 위반건축물, 다가구주택입니다. 그래서 특별법 개정이 절실했어요. 기자회견도 처음 해봤어요. 계속 떨렸던 기억이 나요. 기자회견 장소가 국회 앞이었는데, 사실 그날 국회를 처음 가봤습니다.

당시에 정부가 피해주택을 매입해서 피해구제를 하겠다는 방안은 발표했는데, 위반건축물이나 다가구주택은 매입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각지대 없이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 결국 2024년 8월 '피해주택 LH 매입'이 담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지요. 분위기는 어땠나요?

"개정은 되었지만, 실망감이 컸던 것 같아요. LH가 매입을 한다고 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피해자들이 많았거든요. 저희 건물도 결국 LH가 매입을 하지 않았어요. LH가 매입하겠다는 조건부승인을 받는 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감정가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비교적 선순위여서 다행히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았지만, 같은 건물 안에서도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았습니다."
 다빈 씨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안전한 제도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하는 편이 낫겠다"

- 100% 피해회복을 하셨지만, 전세사기 대응 활동을 지금도 이어가고 계시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너무 안 좋은 사례들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회복됐으니까, 고생들 하십시오'라고 떠나는 게 쉽지가 않아요. 뭔가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앞으로 이런 일을 또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렇지 않은 거예요. 대책위 활동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피해자 분들도 알게 되면서, 이게 청년 시절에 잠깐 스쳐가는 위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안전한 제도를 만들 수 있게 좀 더 노력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두 번째 피해를 입을 뻔 했어요."

- 또다시 피해를 입을 뻔 했다는 말씀이시죠? 어떤 일이었나요?

"전세사기 때문에 하도 불안한데, 청년안심주택은 괜찮다는 거예요. 청년안심주택은 서울시 사업이니, 안심하고 신청을 하라는 홍보가 많이 보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는 전세사기 문제를 언급하면서, 청년안심주택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에서 회복되면 이제 이런 믿을 만한 데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알아봤죠. 마침 바로 길 건너에 청년안심주택이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사당 코브였어요. 추가 모집 공고 올라오는 거 없나 하고 수시로 봤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 사당 코브 세입자들도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뉴스가 있는 겁니다. 제 피해주택의 LH 매입 검토 절차와 경매가 길어진 것이 천만다행이었지요. 믿을 곳 하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지금 살고 계신 집은 어떤가요?

"새 집을 구하면서 공인중개사에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나 전세 피해를 당했다, 그래서 근저당 아예 없는 집만 찾는다고요. 이전에 피해 당한 집을 소개한 중개사는 저에게 근저당 금액을 속였거든요. 이번에는 근저당이 없는 집이라서 전세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반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다빈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서울 시민 대부분이 '네이티브'가 아니잖아요"

- 보증금 피해 이후에 2년 반 정도가 지났네요. 다른 세입자들이 같은 피해를 겪지 않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집 문제를 민간에 온전히 맡겨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관점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공인중개사도 은행도 전세사기 피해에 큰 책임이 있는데, 과연 민간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가가 의문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주거 영역만이라도 국가가 나서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이 재산을 축적하는 기준이 되어버렸잖아요, 솔직히. 그런데 집이 없다고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런 의미에서 공공임대가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정책적으로 당장 필요한 조치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해서요.

"저는 공인중개사와 은행이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중개사는 어쨌든 나라가 허가를 내줬잖아요. 그러면 그만한 책임이 있어야죠. 자기 자식이었다면 절대 소개하지 않았을 집을, 돈 때문에 중개한 사람이 있는 거죠. 중개사들이 그에 응당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도 하지요. 은행도 마찬가지예요. 전세대출금을 못 받으면 나라가 갚아주는, 은행이 손해 보지 않는 구조에서 이자를 있는 대로 받고 있죠. 심지어 대출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어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요."

-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와 구청장 선거에서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에 투표하고 싶으신가요?

"서울이 메가시티라고 얘기하는데, 서울 시민 대부분이 '네이티브'가 아니잖아요. 다들 일을 하기 위해서 이사온 사람들이죠. 하지만 이 도시에 새롭게 정착하려는 사람을 위한 공약은 잘 안보입니다. 재개발이니 뭐 이런 거는 솔직히 그 건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의 얘기잖아요. 저는 아파트를 짓는다거나 재개발이라거나 하는 얘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차라리 월세 지원을 늘린다거나, 세입자가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쪽이 더 와닿지 않나 싶어요. 세입자 교육도 필요해요. 생활에 필수적인 교육이니 민방위처럼. (웃음) 처음에는 임대인을 뭐라고 불러야하나 걱정도 했거든요, '집주인님'이라고 불러야하나 하고요. 집 구하기에 필수적인 키워드라도 익힐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서울로 이주해 온 사람들에 대해 고민을 했다는 흔적이 보이는 공약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 서동규 :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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