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미의 계절' 엽사도 숨졌다...도심 나타난 공포의 수컷 만나면

신진호, 최모란, 김민주 2022. 11.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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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3시37분쯤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도로에서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대원, 유해야 생동물 기동포획단이 현장으로 출동, 장산 방향으로 이동한 멧돼지를 쫓았지만, 포획에는 실패했다. 당시 해운대구는 등산객과 주민에게 안전에 주의하라는 안전문자를 발송했다.

대전 서구 둔산동 샘머리아파트 인근에 나타난 멧돼지. 연합뉴스

앞서 12일에는 충남 서산에서 멧돼지 포획에 나섰던 엽사가 동료를 총으로 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산시 부석면 마룡리 갈대밭에서 멧돼지를 쫓던 엽사 A씨(63)가 동료가 잘못 쏜 총애 복부 등을 맞아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이들은 갈대밭 구역을 2개로 나눠 멧돼지를 수색 중이었는데, B씨가 약 70m 거리에서 움직이던 A 씨에게 엽총 2발을 발사했다. B씨는 “사람 키만 한 높이의 갈대가 흔들리는 와중에 시커먼 물체가 움직여 멧돼지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교미 시기 맞은 수컷들 도심까지 내려와


산에서 도심으로 내려온 멧돼지가 차량과 충돌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까지 들어가면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유해동물인 멧돼지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엽사가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멧돼지 관련 사망사고는 서산을 비롯해 올해 들어서만 세 번이나 발생했다. 환경부와 자치단체는 짝짓기 계절을 맞아 멧돼지가 민감한 상태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9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성남에서 “분당구 수내동 지하차도에 멧돼지인지 사슴인지 모르겠지만 큰 동물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쓰러져 있던 멧돼지가 갑자기 일어나 도로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자동차와 충돌을 우려한 경찰은 실탄 3발을 발사, 멧돼지를 사살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북한산 인근 도로에서 소변을 보던 택시기사가 멧돼지 포획에 나선 엽사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연합뉴스

성남에서는 지난 10일에도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성남시청이 “분당구 중앙공원 인근에 멧돼지가 출몰해 포획 중이니 시민들은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전문자를 긴급히 발송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자 교통사고 관련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멧돼지 출몰은 서울 도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13일 창덕궁 후원에 멧돼지가 나타나 후원 관람과 달빛 기행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15일에도 멧돼지가 출몰해 엽사가 총을 쏴 사살했다.


관계당국 "개체 수 증가 아닌 일시적 현상"


관계 당국은 최근 멧돼지 도심 출몰이 개체 수 증가가 아닌 교미 시기를 맞아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했다. 10월 들어 교미기에 접어든 수컷 멧돼지 활동성이 증가하면서 서식 반경이 넓어져 도심 출현이 잦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야생동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당 멧돼지 서식 밀도는 2017년 5.6마리, 2018년 5.2마리, 2019년 6.0마리, 2020년 3.3마리, 2021년 3.7마리 등으로 조사됐다. 멧돼지 개체 수는 2019년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는데 당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차단하기 위해 자치단체가 포획단은 확대하는 등 방역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월 16일 오후 3시쯤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도로에 출몰한 멧돼지. [사진 독자]

경기도는 멧돼지 포획 건수가 2018년 3309마리였다가 2019년 1만2523마리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2020년에도 1만2138마리를 포획했다. 이후 개체 수가 줄면서 지난해 5554마리, 올해(9월 기준) 3480마리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소방청 "멧돼지 마주치면 등 보이지 말아야"


환경부와 소방청 등 관계 당국은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멧돼지의 움직임을 똑바로 바라볼 것 ▶가까운 나무 등 은폐물 뒤로 몸을 피하고 멧돼지의 다음 행동을 주시할 것 ▶멧돼지를 위협하거나 무리하게 접근하지 말 것 ▶공격 위험을 느끼면 높은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거나 가방으로 보호할 것 등의 행동 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등산로나 도심에서 멧돼지를 마주쳤을 때 달아나거나 소리를 지르면 흥분해서 달려들 수도 있다”며 “등을 보이는 등 겁먹은 행동을 보이지 말고 침착하게 벗어난 뒤 119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자난 6월 28일 경북 포항 도심에 돌아다니던 새끼 멧돼지 2마리가 출동한 소방관에게 포획됐다. 연합뉴스

멧돼지 포획이 늘면서 인명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충남 서산 엽총 사고를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은평구 구기터널 인근에서 택시기사가 엽사 B씨(73) 총에 맞아 숨졌다. B씨는 지난달 열린 1심 재판에서 금고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포상금 늘리면서 포획 경쟁…올해 들어 3명 숨져


전국 자치단체는 멧돼지가 ASF 확산의 주범으로 판단, 포상금을 내걸고 대대적인 포획에 나섰다. 당국에 따르면 멧돼지 1마리당 포상금은 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30만원과 환경부의 별도 포상금 20만원까지 50만원 정도다. 서산시는 15만 원이던 포상금을 지난해 8월부터 15만 원 올렸다. 자치단체들은 엽사들이 포상금을 노리고 경쟁적으로 포획에 나서면서 사고 위험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총기 면허 보유자 고령화도 사고가 잦아지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올해 사망 사고를 낸 엽사 3명 중 2명이 70대, 1명이 60대였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운전면허를 반납받는 것처럼 총기 면허도 일정 연령 이상일 경우 반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최모란·김민주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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