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장인 리스펙" 번아웃 온 스타디자이너 움직이게 한 조개패
"자연의 소재를 그대로 살려 조개패 하나하나의 빛깔이 저마다 고유하다는 점에서 환경친화적일 뿐 아니라 인공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최근 디자인 트렌드와 꼭 들어 맞는다."
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축제 '밀라노 디자인위크'(17일~23일)에 참가한 네덜란드의 스타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60)는 한국 자개의 상업적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루이비통, KLM 항공, 하얏트 호텔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그는 통영의 장덕군·강계순 자개 장인과 함께 만든 커피 테이블을 올해 디자인위크에 선보였다. 나무 합판을 타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다음 검은색 광택이 나도록 옻칠을 반복하고, 자개로 만든 꽃무늬를 입힌 한국적인 디자인이다. 반더스 외에도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마르코 자누소 주니어, 엘레나 살미스트라로, 차영희 등 유명 디자이너 6명이 각각 자개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통영 자개장인들이 수작업으로 테이블을 만들었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17일 밀라노 트리엔날레 박물관에서 열린 '자개 테이블 전'(Mother of Pearl Tables)에서 만난 반더스는 통영 장인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테이블을 두고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왔다. 한국의 장인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딴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의 운영에서 손을 떼고 업무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35년 동안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하며 에너지가 소진됐다. 소수의 창의적인 프로젝트에만 집중하고 싶다"면서다. 그래서 선택한 '소수의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밀라노의 자개 테이블전. "나는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다"며 "낯설고 아름다운 자개라는 소재와 오랜 세월 기술을 연마한 장인들과의 작업이라는 점에 끌려 참여했다"고 했다.
반더스는 "디자인을 전달한 후 생산 과정 중에 어떤 피드백도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장인들의 기술과 안목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실물 테이블을 보고 나서 "테두리를 붉은색으로 표현해도 아름다울 것 같다"며 "곧장 후속 작업에 착수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세대를 거쳐 기술을 연마하고 전수하는 장인들을 존경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자신이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것도 "과거의 예술 작품이나 역사를 통해서"라고 했다.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전통에서는 늘 배울 점이 있다. 이것을 지키면서 조금씩 변형하고,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창작은 늘 파괴를 동반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소멸이 아닌 부분적 창조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친환경 소재를 디자인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소개했다. 코코넛을 활용한 섬유, 감자 껍질을 건조해 만든 종이 등을 개발하고 있다. "너무 많은 물건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버려진다"며 "앞으로 외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디자인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마르셀 반더스는 1996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 아라미드와 탄소섬유로 만든 끈을 손으로 꼬아 제작한 '매듭 의자'를 선보이며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항공기·방탄조끼·방탄 헬멧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슈퍼섬유' 아라미드를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내열성·내구성이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2001년 디자인 스튜디오 '모오이(Moooi)'를 설립했고, 루이비통·푸마·스와로브스키·KLM·구글·바카라 등 글로벌 브랜드와 작업해 왔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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