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 오르고, 저신용자 내리고”…거꾸로 가는 대출금리

염지현 2026. 1. 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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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최근 은행권 대출금리가 신용점수 체계를 역행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신용점수 600점 이하 최저신용자의 신용대출 금리는 하락하고,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 금리는 고신용자보다 더 싼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의 신규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최고신용자(신용점수 951~1000점) 기준 연 4.36%로, 한 달 전보다 0.23%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대출의 지표금리인 단기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금리 전반에 상승 압력이 작용한 영향이다. 실제 6개월 만기 은행채 금리는 지난해 10월 초 연 2.569%에서 11월 말 연 2.978%까지 뛰었다.

하지만 최저신용자(신용점수 600점 이하)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오히려 한 달 새 0.04%포인트 하락한 연 8.69%를 기록했다. 연 9%선에 다다랐던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하락 흐름이 두드러진다.

차준홍 기자


또 일부 은행에선 최저신용자의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최고신용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최저신용자 마통 금리는 지난해 11월(신규 취급액 기준) 연 3.47%로 최고신용자(연 4.73%)보다 1.26%포인트 낮았다. 뿐만 아니라 950점 이하 구간에선 신용점수가 낮을수록 대출금리가 오히려 낮아지는 역계단 구조가 확인됐다. 우리은행의 신규 마통의 경우엔 지난해 11월 최저신용자 대출금리가 연 4.98%로 901~950점 고신용자(연 5.1%)보다 낮았다.

가장 큰 원인은 새 정부가 금융사의 책임과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강화하는 ‘포용금융’을 강조하면서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여러 차례 저신용자 대출금리가 연 10%를 넘는 점을 두고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며 “왜 가난한 사람들끼리 금융권의 손실을 떠안아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서민ㆍ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금리 혜택을 확대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최저신용자의 마통 금리가 유독 낮은 것도 지난해 경기도와 협약을 맺고 경기도 거주 청년(25~39세)을 대상으로 3% 후반대 금리로 대출(300만원 한도)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들이 서민금융 상품에 우대금리를 적용해 금리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문제는 금리 역차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올해 들어 ‘포용금융’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관련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서다. 우리은행은 올해부터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모든 개인 신용대출 금리를 최고 연 7% 이하로 제한하는 ‘대출금리 상한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말 우리은행의 신용대출 최고금리가 연 12%였던 점을 고려하면 최대 5%포인트가 낮아진 셈이다. 신한은행도 이달 말부터 고금리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저신용자에게 ‘연 6.9% 금리의 갈아타기 상품’을 제공한다.

이 같은 포용금융이 역설적으로 신용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체율이 높은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인위적으로 제공할 경우,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에 리스크 관리 비용이 일부 전가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역차별은 성실히 빚을 갚을 유인을 약화하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점수는 빚 관리를 잘하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고신용자가 자산이 많고, 저신용자가 가난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정책금융은 시장 원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기금을 조성해 취약 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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