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에 돌아온 '오디세이', 무엇을 경고하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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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년간 계속된 전쟁을 기발한 계략으로 끝내고 트로이를 멸망시킨 그리스의 영웅, 이타카섬의 왕 오디세우스는 귀국길에 오른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10년간 전쟁을 치른 후 다시 10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다.
왕이나 영웅의 오만을 넘어 그리스인 전체가 빠진 부도덕과 오만의 대가는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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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년간 계속된 전쟁을 기발한 계략으로 끝내고 트로이를 멸망시킨 그리스의 영웅, 이타카섬의 왕 오디세우스는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신의 분노를 받아서인지 전후 10년이 지났건만 소식이 끊긴다. 고국에선 왕의 부재를 틈타 왕비 페넬로페와 결혼해 왕권을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이 창궐한다. 그들은 왕의 저택을 점거하고 3년째 잔치를 벌인다. 성년이 갓 된 왕자 텔레마코스는 무뢰한을 내쫓기엔 힘이 부족하다. 그는 일단 아버지 행방을 찾으려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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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 스틸 |
| ⓒ UPI 코리아 |
원전이 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3부 구성이다. 우리가 어릴 적 본 축약본에선 대개 오디세우스가 10년간 뭘 하다 귀국하지 못했는지가 1부, 왕비와 왕자가 겪는 애환과 부친 소식을 알고자 나선 여정이 2부, 마침내 귀환한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에 복수하는 과정이 3부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론 이타카섬에 남은 이들 이야기가 1부, 귀국길을 돕는 파이아키아인들의 궁정에서 오디세우스가 풀어내는 모험이 2부로 뒤집힌다.
영화라는 매체 특성을 살려 크리스토퍼 놀런은 방대한 원작의 구조를 단선적 서사가 아닌 1부와 2부 교차로 새롭게 구성한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따라 3시간에 아슬아슬 걸치는 분량 내 소화를 위해 이야기는 적절하게 축약하고 통폐합한다. 하지만 원작의 기본 요소는 거의 빼먹지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핵심은 온전히 보존한 결과물이다.
물론 그저 고전의 충실한 시각화는 감독 이름값을 떠올리면 너무 평범하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감히 건드리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원작의 골격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시대에 맞는 재해석에 도전한다. 공룡의 체형은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최신 학설을 적극 채용해 깃털 북실한 변화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 공개 전 논란은 그런 파격에 당황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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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 스틸 |
| ⓒ UPI 코리아 |
재해석된 존재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주역인 오디세우스다. 아테나를 비롯해 신들의 총애를 받는 존재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지혜와 계책에 능한 캐릭터였지만, 2026년 영화를 통해 보다 실존적인 고뇌에 휩싸인 채 주변에 대한 책임감에 고통을 겪는다. 불의한 전쟁에 반강제로 끌려가면서도 자기 조건에서 국익을 따지며 '악어의 눈물' 격 행위를 합리화하기도, 함께 오랜 전쟁에 시달린 장병들의 희생에 애달파도 한다.
갓 성년이 된 텔레마코스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 역시 현실적인 풍경으로 묘사된다. 유복자 취급받는 풋내기 왕자라면 그저 모친을 계부에 빼앗기고 끝나지 않는다. 목숨 부지하는 게 다행인 신세다. 지고지순 현모양처로만 서술되던 페넬로페 역시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존재로 재구성된다. 남편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과 구혼자들 강압에 대처하는 지혜, 참다못해 터뜨리는 울분과 중압감이 실제 20년간 생이별한 아내라면 어떤 삶일까 실감하게 만든다.
칼든 전사들의 시대에 차별을 당하던 여성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적지 않다. 우선 트로이 전쟁의 원흉으로 매도되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짧지만 비중있게 등장한다. 대면한 적 없어도 페넬로페에게 위로를 전하고 전쟁의 이면에 감춘 탐욕을 폭로하는 역할이다. 그녀의 언니가 저지른 끔찍한 남편 살해 역시 일정하게 변론할 기회가 부여된다.
방문한 남자들을 짐승으로 변신시키는 마녀 키르케 역시 재탄생한다. 전쟁과 약탈을 서슴지 않는 전사들에 적개심을 품은 그녀의 의도는 오디세우스에게 전쟁 당시 저지른 학살과 파괴를 상기시킨다. 신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정작 유일하게 등장하는 신격, 아테나 여신 역시 인간의 형상으로 오디세우스를 돕는 초월적 존재라기보단 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상기시키고 성찰로 이끄는 길잡이에 가깝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올림포스 12신'은 이 영화에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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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 스틸 |
| ⓒ UPI 코리아 |
'신의 뜻'에 거역할 수 없음에도 부하를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시지프스의 도전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의 자긍심 고취에 더해 감독은 새로운 단면을 추가한다. '신의 이름으로' 그가 자행한 학살과 약탈, 침략자의 면죄부에 고뇌하는 회한을 새겨넣은 것. 승리자로서 군대를 이끌고 귀환길에 그들 일행이 일삼는 행태는 '해적'이랑 다를 바 없다. 찬란한 문명인이라 자부하지만, '바르바로이'라 멸시하던 이방인들에 행하는 짓은 제국주의의 원형 자체다.
신의 섭리에 맞서는 존재는 또 있다. 문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창조한 신들의 법을 무시하며 날뛰는 '안티노오스'를 비롯한 구혼자 일당이다. 그들은 왕을 향한 충성 서약을 헌신짝처럼 던진 채 왕비와 왕자를 능멸하며 권력 찬탈을 꾀한다. 게다가 그리스 세계에서 통용되던 '제우스의 법', 접대의 관습을 무시하는 신성모독을 일삼는다. 이 행위는 오디세우스의 '인간 찬가'와 대척점에 서는 타락의 징후다. 찬란한 문명은 쇠퇴하는 중이다.
이타카는 물론 그리스 전역에 흉흉한 소문이 감돈다. 바다에서 거대한 침략자가 곧 들이닥친다고 한다. 숙적 트로이를 멸망시킨 강성한 그리스가 두려움에 떤다. 모든 나라가 외적에 대비해 군대를 정비하고 총력전에 돌입하는 참이다. 구혼자들은 왕좌의 부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 역사에서 당대 그리스는 물론 지중해 세계 전역을 멸망에 이르게 한 '바다 민족'의 도래다. 트로이의 유민들도 이들에 속한다는 연구는 소탐대실의 끝이 어땠는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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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 스틸 |
| ⓒ UPI 코리아 |
연달아 겪는 괴수나 이방인과의 충돌은 낯선 세계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에서 촉발되곤 한다. 타국의 사정을 알지 못하니 늘 하던 약탈을 정당화하며 자기들만의 규칙을 강요하는 것. 그러다 큰 피해를 겪고 나서야 조금씩 반성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왕이나 영웅의 오만을 넘어 그리스인 전체가 빠진 부도덕과 오만의 대가는 참혹하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불찰을 탓하지만, 조언자들은 평범한 병사들 역시 악덕에 물들어 있음을, '악의 평범성'을 피력한다.
신화의 시각화가 선사하는 판타지 장면이 관객을 초현실적 체험으로 이끌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시선으로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조금만 과장해 '썰'을 푼다면 능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후대에 오디세우스의 방랑 경로를 조사한 결과, 흑해와 맞닿은 트로이에서 출발해 에게해를 통과해 북아프리카와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해안선을 횡단한다.
3대륙을 골고루 섭렵했으니 고대 그리스판 마르코폴로나 이븐 바투타가 따로 없다. 그의 눈에 비친 미지의 세계가 어떻게 보였을까 상상해보자. 형언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 소통할 수 없는 존재와 차분히 소통하기보다 칼부림이 '대화수단'이 된 시대의 풍경이다.
물론 관객은 생생하게 재현된 외눈 거인 폴리페무스, 바다의 공포 자체라 할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세이렌에 매료되겠지만, 멸망하는 도시와 침략의 희생자, 정복자의 업보를 곰곰이 떠올리면 바로 지금 여기 21세기 세계가 처한 위기와 놀라울 만큼 닮은 모습임을 깨닫게 될 테다. 개봉 전 찻잔 속 논란을 일으킨 '정치적 올바름' 추구는 끼워팔기가 아니다.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현실을 은유하고 풍자하는 '본체'로 설계된 것. 배경만 교체하면 지금 우리들 이야기다.
원작의 지나가는 조연을 재해석한 '시논'은 겉보기엔 찬란한 번영 이면에 숨은 모순을 현재로 소환한다. 신화의 초월성과 보편성을 극대화해 작가가 세상을 보는 근심을 시청각 체험으로 관객과 공유한다. 아가멤논으로 상징되는 절대 권위가 지배하는 세계가 저지른 독선과 오만, 파괴가 겪을 인과응보와 지금 세계의 패권 질서가 낳은 차별과 원한, 울분이 부를 파국의 대비는 묵시록 예언이다. 2026년 돌아온 <오디세이>는 인간의 신화, 종말의 예언서다.
<작품정보>
오디세이
The Odyssey
2026 미국, 영국 판타지, 시대극
2026.08.05. 개봉 172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크리스토퍼 놀런
주연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루피타 뇽오,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
원작 호메로스 - 《오디세이아》
수입/배급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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