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왕, 발바닥으로 잡아냈다…경찰 비밀병기 ‘신상신발 DB’

곽주영 2026. 5. 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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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베테랑-끝까지 잡는다

「 “전국 베테랑 형사들이 직접 꺼낸 단 하나의 ‘크라임 신’”

중앙일보와 경찰청이 협업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장면을 베테랑 형사들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형사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순도 100% 진짜 사건. 작은 티끌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베테랑들의 집념과 생생한 추적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모준영 형사의 구술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 대구 오토바이 골목 연쇄절도 사건 1화 요약

「 2006년 7월, 대구시 중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에 ‘골목왕’이라 불리는 절도범이 새벽마다 나타나 철물점들을 털고 사라진 지 3개월째였다. 지구대와 불과 300m 거리였음에도 범인은 미로 같은 골목을 파고들며 경찰 추적을 비웃듯 움직였다.

한번 나타나면 최소 세 곳씩, 족히 스물 일곱 곳이 피해를 보았지만 경찰은 번번이 놓쳤다. 당시에는 폐쇄회로(CC)TV도 흔하지 않던 시절. 현장에는 이렇다 할 증거도 없었다. 상인들의 불안과 민원은 쌓여 갔고, 경찰 내부의 압박도 거세졌다.

그러던 중 한 3년 차 순경이 현장에서 우연히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종이 위에는 흐릿하지만 족흔적이 찍혀 있었다. 희미했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심정. 그나마 유일한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족흔적 중 신발 하나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 설령 하나를 골라 내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무작정 범인으로 체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골목왕’ 추적 수사는 미궁 속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2006년 7월 26일 오후 9시, 28번째 범행 시도 4시간 전.

순찰 1팀이 지구대에 모였다. 야간 근무 점호 시간이었다.

“한동안 조용하긴 했다마는, 우리 팀 근무할 때 그놈 나타나면 알제? 놓치면 내한테 먼저 반죽음이다. 정신 똑띠 차리라 이 말이다.”
“넵!”

그때, 지구대 문이 벌컥 열렸다. 모 순경이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모 순경은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이게 뭐꼬. 뭐 좀 건짓나?”
“이겁니다.”
“이게 뭔데.”


「 “신발입니더. 그놈이 신고 댕기는 신발요.” 」

모 순경이 가져온 종이에는 신발 사진이 있었다. 엘카프 안전화, 모델명은 LF-600. 공장 인부들이 현장에서 신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이었다. 스웨이드 재질, 색상은 황토색과 자주색 두 종류가 있는 최신식 모델이었다. 딱 보기에도 요즘 같은 여름에 신기엔 무척 더울 것 같았다.

경찰청에는 족흔적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 매달 새로 나온 신발을 수집해 바닥 패턴을 종류별로 정리한다. 모 순경은 그 사실 자체를 처음 알았다. 뭔가 작은 단서라도 잡은 것 같아 설렜지만, 수사 경험이 많지 않은 그로선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아직 정확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헉헉거리는 모 순경을 잠시 지켜보던 팀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 모 형사. 인자 진짜 형사 다 됐네?”
팀장은 모 순경을 아꼈다. 동네의 작고 사소한 사건들을 스스로 수사하고 해결해 낼 때마다 ‘형사 기질’이 있다며 칭찬했고, 일부러 ‘모 순경’ 대신 ‘모 형사’로 불렀다.

하지만 모 순경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신발을 신었다고 무작정 의심하고 체포할 순 없으니까. 용의자를 추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범인을 잡을 결정적인 증거로 써먹긴 어려웠다. 우선 모 순경은 받아온 종이를 열 장 복사해 팀원들에게 직접 나눠주며 말했다.

“선배님덜, 이거 함 보이소. 뭐 이걸로 당장 잡을 순 없겠지만 일단 증거 아입니까. 글고 그 좀도둑한테 신발이 여러 개 있겠심미꺼? 요즘 같은 날씨에 이 신발 신고 댕기는 놈이 많지도 않을 끼고, 골목 근처에 보이면 일단 물어나 보입시더.”

“그래. 오늘 함 잡아보자.”
팀장이 말했다. 이번에는 분노에 찬 고함이 아니었다.


2006년 7월 27일 0시, 28번째 범행 시도 1시간 전.

“이모님. 잘 묵고 감미다.”
미영이네에서 야식으로 우동 한 그릇. 순찰 전 루틴이었다. 이 의식을 치러야 비로소 밤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꼭 잡으이소.”
사장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분이었다. 석 달 동안 자물쇠를 교체하고, 셔터 잠금장치를 바꾸고, 그래도 또 털리는 가게들을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모 순경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오늘은 느낌 왔습니더.”
반쯤 농담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뭔가 걸릴 것 같기도 했다.

모 순경과 이 경장은 경찰차에 타고,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의 전조등 불빛, 그리고 듬성듬성 서 있는 희미한 가로등만이 어둠을 밝혔다.

길 양쪽으로 셔터가 굳게 닫힌 철물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자물쇠를 하나씩 더 걸었다. 셔터에도 잠금쇠를 추가했다. 그렇지만 골목왕이 마음만 먹으면 결국 열릴 건 열릴 것이란 불안감을 떨칠 순 없었다.

모 순경은 그 놈의 얼굴을, 아니 그 놈의 발을 생각했다. 황토색, 아니면 자주색. 복숭아뼈를 덮는 길이. 스웨이드 안전화.

“오늘은 나오겠나?”
운전대를 잡은 이 경장이 중얼거렸다.
모 순경은 대답 대신 창밖을 봤다. 가로등 하나가 수명을 다한 듯 깜빡이고 있었다. 켜졌다가,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불안정한 빛이 아스팔트 위에 불규칙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어?”
이 경장이 반응했다. 차의 전조등이 가닿은 골목 끝자락에서 실루엣 하나가 어슬렁거렸다. 트럭 뒤편, 가려진 자리. 그곳에서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나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은 태연해 보일 정도로 느렸다.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모 순경은 실눈을 뜬 채 자동차 앞 유리에 바싹 몸을 붙였다.
“선배, 전조등 끄고. 일단 차 쪼메 세워 보이소.”
경찰차가 멈췄다. 모 순경은 곧장 차에서 내려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면서. 남자는 아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모 순경은 하나만 생각했다.

「 ‘신발, 우선 신발이다.’ 」

“저기 아저씨, 잠시만예.”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잠시만예. 뭐 좀만 여쭤볼게요.”
그때,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렸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 빛이 짧은 순간 확 밝아지며 남자의 발 언저리를 비췄다.

모 순경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자주색 신발이었다. 방금까지 순찰차 안에서 보던 종이 속, 바로 그 신발. 심장이 쿵쾅거렸다.

“뭐, 왜요.”
남자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실례지만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인데예. 뭐 문제 있습니꺼?”
“경찰입니다. 순찰 중이라서예. 죄송함미다만 협조 좀 해주셔야겠심더.”
심장은 맞다고 반응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복숭아뼈까지 덮은 신발. 그 엘카프 LF-600이 맞을까.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모 순경은 허리를 숙여 재빨리 남자의 바짓단을 붙잡았고, 위로 확 걷어올렸다. 승부처였다.

“아, 뭐하시는교!”
남자가 피할 틈도 없었다. 긴 바지를 걷어내자, 발목 대신 그곳을 감싼 자주색 스웨이드 신발이 보였다. 엘카프 LF-600이 확실했다.
‘100%다.’ 직감이 왔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서 나온 족흔적과 일치하는 신발을 신었다고 무작정 그를 데려갈 수 있는 ‘법’은 없었다. 잘못 접근하면 아예 놓쳐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은 붙잡아 둬야만 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신분 확인 좀 할게예.”
남자는 쭈뼛쭈뼛 이름과 출생연도를 말했다. 이 경장이 개인정보 단말기로 신원조회를 했다. 잠시, 숨이 멎을 듯 고요해졌다. 조회 화면을 들여다보던 이 경장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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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왕, 발바닥으로 잡아냈다…경찰 비밀병기 ‘신상신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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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영 kwak.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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