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왕, 발바닥으로 잡아냈다…경찰 비밀병기 ‘신상신발 DB’
■ 더 베테랑-끝까지 잡는다
「 “전국 베테랑 형사들이 직접 꺼낸 단 하나의 ‘크라임 신’”
중앙일보와 경찰청이 협업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장면을 베테랑 형사들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형사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순도 100% 진짜 사건. 작은 티끌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베테랑들의 집념과 생생한 추적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모준영 형사의 구술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
■ 대구 오토바이 골목 연쇄절도 사건 1화 요약
「 2006년 7월, 대구시 중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에 ‘골목왕’이라 불리는 절도범이 새벽마다 나타나 철물점들을 털고 사라진 지 3개월째였다. 지구대와 불과 300m 거리였음에도 범인은 미로 같은 골목을 파고들며 경찰 추적을 비웃듯 움직였다.
한번 나타나면 최소 세 곳씩, 족히 스물 일곱 곳이 피해를 보았지만 경찰은 번번이 놓쳤다. 당시에는 폐쇄회로(CC)TV도 흔하지 않던 시절. 현장에는 이렇다 할 증거도 없었다. 상인들의 불안과 민원은 쌓여 갔고, 경찰 내부의 압박도 거세졌다.
그러던 중 한 3년 차 순경이 현장에서 우연히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종이 위에는 흐릿하지만 족흔적이 찍혀 있었다. 희미했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심정. 그나마 유일한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족흔적 중 신발 하나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 설령 하나를 골라 내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무작정 범인으로 체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골목왕’ 추적 수사는 미궁 속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
2006년 7월 26일 오후 9시, 28번째 범행 시도 4시간 전.
순찰 1팀이 지구대에 모였다. 야간 근무 점호 시간이었다.
“한동안 조용하긴 했다마는, 우리 팀 근무할 때 그놈 나타나면 알제? 놓치면 내한테 먼저 반죽음이다. 정신 똑띠 차리라 이 말이다.”
“넵!”
그때, 지구대 문이 벌컥 열렸다. 모 순경이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모 순경은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이게 뭐꼬. 뭐 좀 건짓나?”
“이겁니다.”
“이게 뭔데.”
「 “신발입니더. 그놈이 신고 댕기는 신발요.” 」
모 순경이 가져온 종이에는 신발 사진이 있었다. 엘카프 안전화, 모델명은 LF-600. 공장 인부들이 현장에서 신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이었다. 스웨이드 재질, 색상은 황토색과 자주색 두 종류가 있는 최신식 모델이었다. 딱 보기에도 요즘 같은 여름에 신기엔 무척 더울 것 같았다.
경찰청에는 족흔적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 매달 새로 나온 신발을 수집해 바닥 패턴을 종류별로 정리한다. 모 순경은 그 사실 자체를 처음 알았다. 뭔가 작은 단서라도 잡은 것 같아 설렜지만, 수사 경험이 많지 않은 그로선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아직 정확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헉헉거리는 모 순경을 잠시 지켜보던 팀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 모 형사. 인자 진짜 형사 다 됐네?”
팀장은 모 순경을 아꼈다. 동네의 작고 사소한 사건들을 스스로 수사하고 해결해 낼 때마다 ‘형사 기질’이 있다며 칭찬했고, 일부러 ‘모 순경’ 대신 ‘모 형사’로 불렀다.
하지만 모 순경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신발을 신었다고 무작정 의심하고 체포할 순 없으니까. 용의자를 추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범인을 잡을 결정적인 증거로 써먹긴 어려웠다. 우선 모 순경은 받아온 종이를 열 장 복사해 팀원들에게 직접 나눠주며 말했다.
“선배님덜, 이거 함 보이소. 뭐 이걸로 당장 잡을 순 없겠지만 일단 증거 아입니까. 글고 그 좀도둑한테 신발이 여러 개 있겠심미꺼? 요즘 같은 날씨에 이 신발 신고 댕기는 놈이 많지도 않을 끼고, 골목 근처에 보이면 일단 물어나 보입시더.”
“그래. 오늘 함 잡아보자.”
팀장이 말했다. 이번에는 분노에 찬 고함이 아니었다.
2006년 7월 27일 0시, 28번째 범행 시도 1시간 전.
“이모님. 잘 묵고 감미다.”
미영이네에서 야식으로 우동 한 그릇. 순찰 전 루틴이었다. 이 의식을 치러야 비로소 밤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꼭 잡으이소.”
사장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분이었다. 석 달 동안 자물쇠를 교체하고, 셔터 잠금장치를 바꾸고, 그래도 또 털리는 가게들을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모 순경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오늘은 느낌 왔습니더.”
반쯤 농담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뭔가 걸릴 것 같기도 했다.
모 순경과 이 경장은 경찰차에 타고,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의 전조등 불빛, 그리고 듬성듬성 서 있는 희미한 가로등만이 어둠을 밝혔다.
길 양쪽으로 셔터가 굳게 닫힌 철물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자물쇠를 하나씩 더 걸었다. 셔터에도 잠금쇠를 추가했다. 그렇지만 골목왕이 마음만 먹으면 결국 열릴 건 열릴 것이란 불안감을 떨칠 순 없었다.
모 순경은 그 놈의 얼굴을, 아니 그 놈의 발을 생각했다. 황토색, 아니면 자주색. 복숭아뼈를 덮는 길이. 스웨이드 안전화.
“오늘은 나오겠나?”
운전대를 잡은 이 경장이 중얼거렸다.
모 순경은 대답 대신 창밖을 봤다. 가로등 하나가 수명을 다한 듯 깜빡이고 있었다. 켜졌다가,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불안정한 빛이 아스팔트 위에 불규칙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어?”
이 경장이 반응했다. 차의 전조등이 가닿은 골목 끝자락에서 실루엣 하나가 어슬렁거렸다. 트럭 뒤편, 가려진 자리. 그곳에서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나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은 태연해 보일 정도로 느렸다.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모 순경은 실눈을 뜬 채 자동차 앞 유리에 바싹 몸을 붙였다.
“선배, 전조등 끄고. 일단 차 쪼메 세워 보이소.”
경찰차가 멈췄다. 모 순경은 곧장 차에서 내려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면서. 남자는 아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모 순경은 하나만 생각했다.
「 ‘신발, 우선 신발이다.’ 」
“저기 아저씨, 잠시만예.”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잠시만예. 뭐 좀만 여쭤볼게요.”
그때,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렸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 빛이 짧은 순간 확 밝아지며 남자의 발 언저리를 비췄다.
모 순경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자주색 신발이었다. 방금까지 순찰차 안에서 보던 종이 속, 바로 그 신발. 심장이 쿵쾅거렸다.
“뭐, 왜요.”
남자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실례지만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인데예. 뭐 문제 있습니꺼?”
“경찰입니다. 순찰 중이라서예. 죄송함미다만 협조 좀 해주셔야겠심더.”
심장은 맞다고 반응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복숭아뼈까지 덮은 신발. 그 엘카프 LF-600이 맞을까.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모 순경은 허리를 숙여 재빨리 남자의 바짓단을 붙잡았고, 위로 확 걷어올렸다. 승부처였다.
“아, 뭐하시는교!”
남자가 피할 틈도 없었다. 긴 바지를 걷어내자, 발목 대신 그곳을 감싼 자주색 스웨이드 신발이 보였다. 엘카프 LF-600이 확실했다.
‘100%다.’ 직감이 왔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서 나온 족흔적과 일치하는 신발을 신었다고 무작정 그를 데려갈 수 있는 ‘법’은 없었다. 잘못 접근하면 아예 놓쳐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은 붙잡아 둬야만 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신분 확인 좀 할게예.”
남자는 쭈뼛쭈뼛 이름과 출생연도를 말했다. 이 경장이 개인정보 단말기로 신원조회를 했다. 잠시, 숨이 멎을 듯 고요해졌다. 조회 화면을 들여다보던 이 경장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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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왕, 발바닥으로 잡아냈다…경찰 비밀병기 ‘신상신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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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영 kwak.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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