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와 문학 속 고립
[황융하 기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은 시선을 사로잡지만, 머물렀다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응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공허하고 차가운 고요함에, 소리 없는 외침과 고독이 물씬하다. 사람들은 도시 혹은 자연 속 어디에 있으나 존재감이 사라진 채로 화폭의 공간에 머무른다. 외로움보다 더 깊은 층위의 고립이다. 불이 켜진 도시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1942년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waks)>은 그가 그려낸 고독의 정수를 담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각자의 고립 속에 있다.
▲ Nighthwaks(1942), Edward Hopper |
ⓒ Wikimedia Commons |
프란츠 카프카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체계적 억압과 고립을 묘사하며, 인간의 존재적 불안을 심도 있게 파헤쳤다. 그의 소설 <변신(1915)>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하면서 점점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다. 그레고르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소통을 잃어버린 채 고독 속에 갇혀버린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이 느끼는 고립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공공장소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진정한 소통과 존재감을 부여받지 못한다.
호퍼의 <가스(Gas, 1940)>에서 외딴 주유소의 남성은 기계적으로 행동하며 주변 환경과 단절된 모습으로 서 있다. 그의 존재는 곧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며 유의미한 공간에서 단절을 예고한다. 카프카와 호퍼 모두 물리적 공간이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인간이 겪는 정신적 고립과 단절의 깊이를 전달한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자 가족조차 외면한 채 박멸되는 과정은, 호퍼의 <가스>의 인물과 맞물린다.
헤밍웨이의 절제된 언어와 호퍼의 시각적 정적: 내면의 침묵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작품에서 대화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절제된 언어로 고립과 침묵을 표현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1929)>에서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 역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감당하는 내면적 고독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헨리는 전쟁의 광기 앞에서 혼란을 마주하고, 결국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헤밍웨이의 문체는 호퍼의 작품과 비슷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 Hotel-room(1931), Edward Hopper |
ⓒ Wikimedia Commons |
호퍼의 그림과 문학 속 인물들이 그려내는 고독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기술의 발달과 도시화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피상적이며 내면의 깊은 고독은 더욱 심화한다. 호퍼의 <여름 저녁(Summer Evening, 1947)>에서 한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침묵이 덮여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서로 마주하지 않는 관계가 소통되지 않는 감정으로 멎어있다. 현대인의 표면적인 관계와 익명성(자아 숨김)이 교차하며 진정한 연결을 찾기 어려운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1938)>의 주인공 해리도 비슷한 고립을 경험한다. 그는 자기 죽음을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저 공허할 뿐이다. 진정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채,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끝을 맞이한다. 호퍼의 인물들 역시 공간 속에 있지만, 그들을 품어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장소에서 외딴 배처럼 떠다닌다.
고독을 넘어선 고립의 미학: 현대적 사유로의 확장
에드워드 호퍼와 카프카, 헤밍웨이가 묘사하는 고독은 단순한 감정적 외로움이 아닌,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고립을 들려준다. 물리적 존재자는 정신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상태를 맞닥뜨리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다양한 루트로 연결되도록 만들며 표면을 덮을 뿐, 내면적 고립은 더욱 깊어진다. 호퍼의 작품과 문학 속 고독이 단지 과거의 예술적 주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도시와 카프카, 헤밍웨이의 문학 속 인물들은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호퍼가 시각적으로 구현한 고립된 공간 그리고 문학 속에서 절제된 감정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 고리가 있다. 관계 속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정서적 벽은 고단해지며, 결국 고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독을 넘어선 미학
호퍼가 그린 도시 풍경 속 인물들, 카프카와 헤밍웨이의 내면적 고뇌를 겪는 캐릭터들은 단순히 과거의 초상이 아니다. 그들은 현대인의 심리적 단절을 은유한다. 하지만 단절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기술과 문명이 고도화된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벽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통로마저 차단한다. 인간관계가 얕아질수록 우리는 자신을 잃어가며,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존재자다.
그러나 고독을 비극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우리가 직면해야 할 건, 바로 고독 자체다.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고독은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을 다시 만나고 내면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다. 진정한 성찰은 관계를 넘어 자신에게 향하는 대화로 시작된다. 고립으로부터 시작되더라도, 끝에는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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