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안판석을 추모하며, 그 첫번째 [송원섭의 와칭]

드라마 연출가 안판석의 부음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2026년 8월 12일, 64세로 작고한 연출가 안판석을 드라마 업계 종사자들은 ‘한국 드라마의 품격 그 자체’로 불러왔습니다. 드라마란 본질적으로 작가와 연출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오늘날 스토리텔링의 주도권은 일반적으로 작가에게 있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된 지 오래죠.
그런데도 시청자와 시장, 그리고 업계는 이례적으로 ‘안판석의 드라마’라는 장르를 인정했고, 그 선명한 작가주의에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그 어떤 연출가도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독보적 지위였죠. 이 글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한 인물에 대한 간략한 일대기이면서, 한때 모시고 일했던 선배에 대한 추모의 글 중 첫 번째 부분입니다.
1987년 MBC TV 프로듀서로 입사한 안판석은 1993년 일요 아침드라마 ‘짝’(극본 윤성희 김인영)을 통해 드라마 연출가로 데뷔합니다. 그의 MBC 드라마국 선배인 김지일 전 JTBC 드라마총괄은 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책상에 올려 두고 읽고 있던 조연출 시절의 안판석을 기억합니다.
“항상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 했다. 대본 분석력이 동년배는 물론, 드라마국의 어느 PD보다 탁월했다. 조연출로서 배우들, 촬영이나 조명 스태프, 현장의 누구라도 그의 설명을 들으면 대본에 대한 이해도가 확 높아졌다. 모두 그의 장래를 기대했다.”
후배 연출가 이태곤(JTBC ‘청춘시대’ 연출가)은 1994년 그의 조연출을 맡았던 MBC 베스트극장 ‘녹천에는 그가 산다’ 때부터 “뭐 이런 선배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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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콩나물', 가족극에서도 빛난 연출력
‘짝’과 ‘예스터데이’ 등을 통해 숙련 기간을 거친 안판석은 1999년 가족극 ‘장미와 콩나물’(극본 정성주)을 히트시키며 연출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이 드라마의 1회에는 세종대 영문학과 동기이며 당시 영화 ‘비트’를 통해 신예로 주목받던 김성수 감독이 특별출연하기도 하죠. 안판석과 김성수 감독, 그리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영상 동호회를 만들어 연출가의 꿈을 키우던 친구들입니다.
여담이지만 ‘장미와 콩나물’은 드라마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선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초반, 친구이면서 같은 집안의 아들들과 결혼해 동서 간이 되는 최진실과 임경옥이 탁구를 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이 끝날 때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고 랠리가 이어질 정도로 두 배우의 탁구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신기해서 방법을 물으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아, 그거 공 없이 동작만 찍은 거예요. 탁구공은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넣은 거고.” 당시로서는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나 볼 수 있던 기법을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는 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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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극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특히 ‘아줌마’는 흔히 ‘안판석-정성주 스타일’이라 불리는, 상류층 풍자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블랙 코미디 연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오삼순 역의 원미경은 살림 잘하고 생활력 강한 고졸 주부지만 ‘깨어 있는 지식인’을 자처하는 남편 장진구 역의 강석우에게 항상 무시당하고 사는 처지입니다.
사실은 실력이 없어 교수직을 샀으면서도 늘 아내를 ‘기층민’ 취급하는 강석우는 젊은 시절 동경했던 동료 교수 심혜진에게 구애하고, 불륜 관계가 되자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물론 원미경은 이혼의 충격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찾아 식당 주인으로 성공하지만, 강석우는 대학에서도 쫓겨나 학원 강사가 되죠.
이 드라마는 ‘과거 민주화를 주도했던 자부심으로 사회 갈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중년 지식인’, 오늘날로 치면 586세대 내면에 있는 속물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방송 당시에도 말만 번지르르한 중년 꼰대(오늘날의 표현으로는 ‘개저씨’가 적절합니다)를 가리켜 “이 장진구 같은 놈”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종영 후 이 작품 제작진은 성 평등 의식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평등미디어 으뜸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당시 시청률은 30%대. ‘아줌마’를 공동 연출(야외)했던 후배 이태곤의 이야기는 안판석이 이 드라마를 어떤 생각으로 연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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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안티 히어로 드라마, 하얀 거탑
지식인/상류층 등 소위 ‘사회 지도층’에 대한 서릿발 같은 풍자와 비판 의식은 그 다음 작품인 MBC ‘하얀 거탑’(극본 이기원)으로 이어집니다. 일본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대하소설 ‘하얀 거탑’(1968년 완간)은 일본에서는 5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특히 2003년 후지TV판 ‘하얀 거탑’은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며, 이 2003년 판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2007년 안판석의 ‘하얀 거탑’이 만들어집니다. ‘아줌마’ 성공 이후 영화 ‘국경의 남쪽’을 연출하며 잠시 영화계로 외도했던 안판석의 TV 복귀작입니다.
원작의 제목 ‘하얀 거탑’은 명문 의과대학 부설 병원을 가리킵니다. 사회적 신뢰의 표상인 대학병원이 실제로는 권위주의와 출세지상주의로 병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그려낸 소설이죠.
MBC ‘하얀 거탑’은 한국 드라마에서 안티 히어로(Anti-hero), 즉 고결한 도덕성과 정의감 같은 덕성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 성공한 첫 작품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김명민이 연기한 출세 지상주의자 장준혁이 바로 그 캐릭터죠. ‘김과장’의 남궁민이 등장하기 10년 전의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1994년 ‘종합병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의사들과 환자 군상을 통해 본격적인 메디컬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상에 맞게, 세상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의료인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주력하는 느낌이 있었죠. 여기 비해 ‘하얀 거탑’은 병원도 여느 세상과 마찬가지로 ‘노회한 아저씨들의 음험한 술수’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보여줍니다. 안판석은 이를 “‘하얀 거탑’은 의사들이 정치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독특함은 캐스팅에서도 드러납니다. 배우 이정길은 젊은 날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에서 중년 이후에도 올곧은 미중년인 자애로운 아버지상을 자주 연기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권력의 핵심인 위선자 외과 과장 역을 맡았고, 밴드 산울림의 리더로 역시 친근한 아저씨 역을 주로 맡았던 김창완도 노회한 부원장 역으로 탈바꿈합니다. ‘아줌마’의 강석우에 이어 다시 한번 안판석의 장기인 '이미지 뒤집기’가 펼쳐진 것이죠. 이 캐스팅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어서, 뒷날 김창완으로부터 “그 뒤로 아무리 좋은 역할을 해도 사람들이 ‘부원장 느낌이 난다’고 해서 본의 아니게 악역 전문 배우가 되었다”는 농담 섞인 술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받은 안판석이라는 이름은 대중에게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TV 연출가에도 팬이 있다’는 말이 이 시절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죠. (계속)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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