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소송 나선 동성 부부 11쌍 "동성혼, 당장 시급한 먹고 사는 문제"

유지영 2024. 10. 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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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혼인평등소송 제기... "법이 시민 인식보다 더 늦다"

[유지영 기자]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 유지영
한국에서 대규모의 혼인평등소송이 다시 시작됐다. 2014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따라 법원에 불복 신청을 한 지 10년만이다. 10년 전과 달리 총 22명의 동성 부부들이 소송단으로 나섰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예식장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법률센터와 모두의결혼 공동 주최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원고 22명 중 17명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는 11일 전국 6개의 법원에 11건의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대규모의 혼인평등소송에 나선다.

배우자인 김승환씨와 함께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조광수씨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저희의 혼인평등소송은 동성혼 법제화라는 결실을 맺진 못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이제는 정부가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랑을 인정할 때가 됐다. 법원이 법의 이름으로 평등을 보장해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딸 생각해 참여하게 돼" 소송단 말에 눈물바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 유지영
이날 혼인평등소송에 나선 소송단은 대부분 친구만이 아닌 직장 등 주변에서 이미 자신들의 부부 관계를 인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직장에 연차를 내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라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에 살면서 은행원으로 일하는 김기환(36)씨는 "오늘 연차를 내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은행 동료들에게 (말할 때) 남편을 '집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집사람하고 오늘 혼인신고 소송 기자회견을 하러 간다니까 '드디어 법적인 부부가 되는 거냐'고 많이 응원해주었다. 회사 동료들의 응원에 하루빨리 화답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동성 배우자인 박지아(31)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손문숙(48)씨도 직장에서 '경조사 휴가'를 인정받았다. 손씨는 "공적 공간인 직장에서 경조사 휴가를 받으면서 혼인관계를 인정받는 경험을 했다"라며 "이 과정이 소중했던 이유는 공식적인 내규와 절차에 의해 공동체 구성원의 일부로 간주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손씨도 2년 전에 구청에 혼인신고를 했고 불수리 처리가 됐다.

정규환(34)씨도 손씨처럼 혼인신고를 한 경험이 있다. 정씨는 "거절당할 걸 알면서 글자에 설렘 반과 긴장 반의 마음으로 빈칸을 채우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았다. 차가운 종이를 내밀면서도 직원 분께서 결혼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라면서 "아직 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웃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전했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 유지영
그러나 의사로 일하는 김세연(36)씨는 2023년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아내인 김규진씨와 딸을 출산했지만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지 못했다면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김씨가 눈물을 흘리자 김씨를 지켜보던 다른 부부들 역시 박수를 치면서 김씨를 응원했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이 자리에 저희 딸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어 나오게 됐다. (병원 내) 직원 게시판에는 저희 딸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축하 게시글이 올라오고 따뜻한 축하 인사와 선물을 받았지만,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행정처에서 하루짜리 배우자 출산휴가를 거절당했을 때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됐다"라고 전했다.

이날 소송단 황윤하 부부의 모친인 한은정씨가 참석해 "우리 딸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을 뿐이고, 저는 그저 우리 딸의 행복을 빌 뿐인데 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 이야기가 소송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과정이 돼 유감스럽다"라면서도 "저는 우리 딸이 매우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자녀가 멋진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이 저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라면서 딸의 소송을 응원했다.

대리인단 변호사 "동성혼 법제화는 늦은 감 있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 유지영
이번 혼인평등소송 대리인단 단장인 조숙현 변호사는 지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될 당시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가족법 전문가다. 조 변호사는 이날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 제도가 붕괴될 거라는 분들이 있었지만 20년 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가족 내 평등이 실현됐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동성혼 법제화는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라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혼인평등소송은 성소수자의 혼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 동성동본 금혼제, 호주제, 부성승계 강제주의 등과 같이 우리 가족법에 남아 있는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위헌이 아니라는 이유를 쓰기가 오히려 어려운 소송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사고를 당했을 때 내 배우자에게 권한이 없어서 나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건 실제하는 피해"라며 "이러한 것들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이고 '나중에'라고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호림 모두의결혼 활동가 또한 "성소수자 시민들이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이곳(한국)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드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존엄의 문제이자 당장 시급한 먹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먹고 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다"라고 한 걸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소송은 최근 동성 배우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비롯해 여러 판단이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데서 탄력을 받았다. 백소윤 변호사는 "이와 같은 판단의 연속선상에서 동성혼 인정이 갖는 사회적 필요와 의무도 확인됐다"라면서 "국내만이 아닌 국제적으로도 동성혼을 법제화한 국가는 39개국에 이르러 이미 많은 국가의 사법부가 혼인의 권리에 정의와 평등 원칙을 적용해 동성혼 법적 인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들 대리인단에서는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가족관계등록 비송)과 더불어 민법 제812조(혼인의성립)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동시에 진행한다.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내 예식장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모두의결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성화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혼인평등소송에 나설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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