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없어지자 빈대떡집 쫄딱 망했다…'사우디 사모님'의 눈물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황해도빈대떡 전정숙(77·여)씨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모님’이었다. 결혼 직후인 1975년 남편이 건설회사 통역으로 그 나라에 갔다가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4년 뒤 그도 출국했다. 그는 회사가 내준 집에서 임원 부인으로 우아하게 현지 생활을 즐겼다.
전씨는 호주 청소업계의 ‘큰 손’이기도 했다. 남편이 귀국 후 취업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자 부부는 85년 호주로 향했다. 청소사업에 손 대 크게 성공한 그들은 1200평의 초대형 부지에 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불행은 느닷없이 다른 사업에 빠진 남편이 돌연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현지 사업을 정리하느라 1년 뒤 귀국한 전씨의 앞에는 재산을 탕진해버린 남편이 있었다.
46세 가정주부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던 그의 눈에 손님이 꽉 찬 빈대떡집이 들어왔다.
" 먹어봤는데 ‘아니 이런 걸 빈대떡이라고 부쳐서 파나’ 싶더라고. 우리 시댁이 이북 출신이라 빈대떡은 잘 만들거든. "
1993년 언니와 함께 개업한 가게는 실향민과 고시생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는 오전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17시간을 필사적으로 일했다. 수면 시간은 2~3시간이 고작이었다. 중노동의 고단함은 월 800만원 이상의 순이익이 씻어줬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매출과 수익 곡선은 우하향하기 시작했다. 1차 변곡점은 마지막 사법고시가 끝난 2017년. 주요 고객인 고시생들이 빠져나가면서 그는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비수를 꽂은 건 역시 코로나 사태였다. 장사가 너무 안돼 23년간 함께 일했던 아줌마 직원과도 헤어져야 했다.
" ‘사장님이 먼저 말하긴 어려울 테니까 제가 먼저 그만둘게요’ 하더라고. "
궁여지책으로 배달에도 손댔지만 1년 만에 접었다.
" 아무리 봐도 정산금액이 이상해. 내가 파는 것보다 들어오는 돈이 너무 적어. 그래서 ‘9000원짜리 빈대떡 배달하면 나한테 얼마 들어오느냐’고 물었더니 5800원이래. 딱 끊었지. "
코로나 종식 후에도 매출은 회복될 줄 몰랐다.
" 8월 매출이 역대 최저치였어. 수익이 200만원이 안 돼. "
잠시 주저하던 전씨가 힘들게 말을 이었다.
" 나 사실 가게를 내놨어. 너무 힘들어서… "
지난해 11월부터 임대료를 한, 두 달씩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결심을 굳혔다.
그는 12년 전 손 뗀 언니가 부럽다.
" 그때 나도 같이 그만뒀으면 권리금 엄청 많이 받았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워. "
그에게 남은 건 작은 빌라 한 채와 채 갚지 못한 빚 1억원뿐이다. 이자라도 갚으려면 집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팔순을 앞두고 다시 광야에 선 그의 여름은 몹시 추워 보였다.
■ 녹두거리 자영업자는
「 55.9점.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녹두거리 자영업자 32명(점포 수 28곳)에게 현재 자신의 생활을 점수(100점 만점)로 매겨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의 평균값이다. 반타작을 겨우 면한 점수다. 평균 연령 58.1세인 이들이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은 10.9시간. 대부분 주말과 공휴일을 반납하고 일하는 사정을 고려하면 월간 근로시간(272.5~327.0시간) 기준 임금근로자(지난해 157.6시간)의 약 2배 수준이다.
대다수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상경한 비수도권 출신(23명)이었다. 수도권 출신은 9명(서울 6명, 인천 2명, 경기 파주 1명)에 불과했다. 강원도 속초, 충북 영동, 충남 당진, 경북 영주, 경남 거제, 전남 강진 등 그 지역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10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다른 누군가는 취업·결혼과 함께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학력은 고졸 이하(17명)가 가장 많았지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들(14명)도 적지 않았다.
가게당 월평균 소득은 약 363만원(중위소득 300만원)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4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1000원이다. 같은 업종에서 한 곳은 1000만원대 수익을 올리는 반면, 다른 곳은 100만원대 적자를 보는 등 빈익빈 부익부도 심각했다. 소득을 공개한 점포 26곳 중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 이하인 곳은 11곳(42.3%)이었다.
가계 곤란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수개월 내 폐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6명이었다. 당장은 폐업 의향이 없어도 “2~3년 내 폐업 계획이 있다”거나 “내 의사와 무관하게 폐업으로 내몰릴 불안감을 안고 산다”는 응답도 있었다.
」
■ ‘한국의 아킬레스건’ 자영업…51명의 슬픈 현실을 듣다
「 665만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섰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급증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자영업 문제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인구·복지·빈부격차·지방소멸 등 우리가 직면한 모든 논란거리가 자영업 문제에 결부돼 있다. 지체의 늪에 빠진 한국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털어야 할 난제다.
중앙일보는 창간 59주년을 맞아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 기획 보도를 시작한다. 먼저 두 달간 발품 팔아 만난 자영업자 51명의 목소리를 토대로 5일에 걸쳐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도한다.
후속 보도를 통해서는 숨은 문제들을 발굴하고 국내외 정책들을 점검하면서 해법과 대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각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독자와 국민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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