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로 갈라진 커피 한잔의 자유? 조선일보가 노리는 것
[탁종열 기자]

사라진 질문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조선일보는 <좌우로 갈라진 '커피 한잔의 자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는 텅 빈 광주의 스타벅스 매장과 붐비는 서울의 스타벅스 매장이 대비되어 등장한다. 기사 전체는 스타벅스 불매운동과 일부 극우 세력의 맞불 소비를 '좌우 진영 대결'로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기사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애초 이번 논란은 왜 시작됐는가.
문제의 출발은 단순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었다. 스타벅스의 마케팅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표현과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특히 '탱크'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국가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따라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는 단순한 마케팅 실수로 보기 어렵다. 한국 현대사의 민주주의 상징을 기업 마케팅에 가볍게 소비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까지 왜곡했다는 문제제기였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선 것도, 이번 사안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커피 한잔의 자유'가 갖는 정치적 프레임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문제를 역사 인식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좌우 진영 갈등'으로 재구성한다. 기사 제목부터 그렇다.
'커피 한잔의 자유'라는 표현은 우연히 등장한 문장이 아니다. 이는 최근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이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정치적 메시지다. 일부 정치인들은 직접 스타벅스 매장을 방문해 사진을 올리며 "커피 한잔의 자유"를 이야기했고, 스타벅스 소비 자체를 정치적 저항의 상징처럼 활용했다. 즉, 조선일보는 단순히 갈등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만든 프레임을 다시 기사 형식으로 확산하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사 구성 방식이다. 조선일보는 굳이 '광주의 한산한 스타벅스'와 '서울의 붐비는 스타벅스'를 대비해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가운데에 배치한 '두 장의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이번 논란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5·18을 왜곡하고 상업적으로 소비한 마케팅에 대한 비판은 전국적으로 제기됐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다시 이 문제를 '광주만의 반응'으로 지역화한다.
광주는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간,
서울은 자유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오랫동안 광주를 고립된 공간으로 다뤘다. 5·18을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치적 문제로 축소해 왔다. 이번 조선일보 기사는 '광주의 고립'이란 오래된 프레임을 반복한다. 결국 조선일보는 역사 왜곡 논란의 본질을 지우고, 다시 '광주 대 다른 지역', '정치화된 광주'라는 익숙한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현장 바리스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불매운동 탓에 "매장 손님이 줄어 급여가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는 목소리를 전한다. 이는 기업의 잘못으로 발생한 노동자의 피해을 엉뚱하게 '불매 운동'으로 전가하는 전형적인 언론의 프레임 기법이다. 애초에 현장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긴 원인 제공자는 역사 감수성이 결여된 마케팅을 무리하게 강행한 경영진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불매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들을 '을(乙)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가해자'로 둔갑하며, 정작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은폐한다.
기업의 위기 관리를 '국가 폭력'으로 바꾸는 서사
조선일보가 기업의 사과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교묘하다. 기사는 첫머리에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라고 전한 직후, 곧바로 "하지만 정부·여당과 현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나섰고"라는 문장을 이어 붙인다. 나아가 시위에 나선 한 유튜버의 입을 빌려 "한 기업을 대통령이 지명해서 공격하는 건 국가 폭력에 가깝다"라는 자극적인 인터뷰를 여과 없이 노출한다.
이처럼 언론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서사 속에서 기업의 사과는 자발적 책임 인정이 아니라, 정치적 압박에 굴복한 사건처럼 재구성된다. 하지만 실제 기업의 판단은 훨씬 냉정한 손익 계산 위에서 움직인다. 호남 지역 대형 사업과 글로벌 브랜드 관리 리스크까지 고려하면, 이번 사과는 정치적 굴복이라기보다 기업의 위기관리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이러한 기업의 현실적 계산은 지운 채, 기업을 '진영 싸움의 무고한 피해자'처럼 포장하고 있다.
5·18을 다시 '진영 전쟁'으로 만드는 언론
가장 큰 문제는 이번 보도가 결국 5·18 민주화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다시 논쟁의 대상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이미 국가적·역사적·법률적 평가가 정리된 민주화운동이다. 가해자들은 법적 책임을 인정받아 처벌을 받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과 명예회복 역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포함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또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극우 세력은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허위 주장과 가짜뉴스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언론이라면 이러한 왜곡을 검증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역사 왜곡 문제는 진영 갈등으로 바뀌고, 민주주의의 역사는 지역 감정으로 축소되며, 기업의 책임은 소비자의 정치 논란 속으로 사라진다. 결국 남는 것은 "정치가 커피 한잔도 못 마시게 한다"는 왜곡된 프레임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하려는 세력은 오히려 새로운 정치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특히 조선일보의 이 보도는 지방선거 국면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민의힘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개입", "과도한 정치화", "표현의 자유 침해"와 같은 프레임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해왔다. 이번 '커피 한잔의 자유' 프레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조선일보는 지금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진영 전쟁'을 만들어내며, 결국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 자체를 둘러싼 '역사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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