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없는 시구”라 했지만…‘치맥’ 예찬하고 잠실을 홀린 젠슨 황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가 맞붙은 7일 서울 잠실구장. 주말이면 늘 인파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이날은 평소보다 더 분주하고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전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시구를 위해 방문하는 날이어서다.

두산은 귀빈을 예우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중앙 출입구 위에 ‘웰컴 엔비디아’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을 걸었고, 황 CEO가 움직이는 동선 곳곳을 엔비디아 로고와 환영 문구로 장식했다. 구단 사무실 앞엔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와 우승 반지 6개를 진열했고, 시구와 시타에 쓰일 글러브와 배트 옆엔 엔비디아가 자랑하는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지포스(GeForce)’를 배치하는 성의를 보였다. 김원형 두산 감독은 경기 전 “대단한 분이 야구장에 방문하셔서 내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오후 4시 11분쯤 황 CEO가 탄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중앙 출입구 앞에 멈춰섰다. 수많은 취재진과 야구팬의 플래시 세례가 터져나왔다. 아내와 딸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그는 두산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악수하며 쏟아지는 관심에 화답했다. 다만 ‘두산과 특별한 협력을 계획하고 있느냐’는 한 취재진 질문에는 “오늘 시구에 집중하겠다”며 웃어 보였다.
황 CEO는 2024년 메이저리그에서 두 차례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지만, KBO리그 시구는 이날이 처음이다. 황 CEO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외국인 투수 둘 중 이날 등판하지 않는 잭 로그가 시구 연습을 도왔다. 황 CEO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배트를 잡은 박 회장의 시타 지도는 현역 최고 포수인 두산 주장 양의지가 담당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창립연도(1993년)를 상징하는 등 번호 ‘93’번, 박 회장은 두산의 모태가 된 박승직상점의 창립연도(1896년)를 뜻하는 ‘96’번 유니폼을 각각 입고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황 CEO는 마이크를 잡고 “내가 한국에 온 것은 좋은 파트너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 치킨을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치맥’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인사말을 마친 황 CEO의 시구는 큰 포물선을 그리며 박 회장의 몸쪽으로 날아갔다. 박 회장은 몸을 숙여 공을 피한 뒤 크게 배트를 휘두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황 CEO는 “형편없는 시구(terrible pitch)였다. 하마터면 박 회장을 맞힐 뻔했다”며 “포수를 봐야 했는데 회장님을 보고 던져서 그렇게 됐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구를 마친 황 CEO는 200여명의 엔비디아 임직원과 함께 1루 쪽 내야 테이블 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황 CEO가 자신의 좌석으로 향하자 임직원들과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 인사와 박수로 맞이했다. 그는 팬들의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경기 중 ‘댄스 타임’에 전광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흥겨운 율동으로 화답하는 등 야구장 방문을 적극적으로 즐긴 뒤 오후 6시 30분쯤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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