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발자국'이 죽였다…21년전 파출소 살인사건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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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이승만·이정학 입건
"이정학이 백 경사를 살해했습니다."(이승만)
"아뇨. 이승만이 백 경사를 죽였다니까요."(이정학)
21년 전 전북 전주시 한 파출소에서 50대 경찰관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이하 대전 사건)' 범인 이승만(53)과 이정학(52)이 상대방 단독 범행이라고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진범을 가리기 위해 목격자에게 최면 조사까지 했다.
전북경찰청은 16일 "고 백선기(사망 당시 54세) 경사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대전 사건' 공범 이승만과 이정학을 입건해 각각 4차례씩 조사했다"며 "백 경사 총기 탈취 목적이 밝혀지면 강도살인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전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달 17일 1심에서 이승만이 무기징역, 이정학이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자 두 사람과 검찰 모두 항소했다.
백 경사는 2002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0일 0시50분쯤 전주시 금암2파출소에서 혼자 근무하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백 경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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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죽였다" 서로 떠넘겨
경찰은 이승만과 이정학 중 한 명은 진범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상대방이 백 경사를 살해한 뒤 총기를 가져왔다. 난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최근 울산에서 확보한 백 경사 권총과 함께 사건 당시 파출소에 남아 있던 갈매기 모양 족흔적(발자국) 2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정밀 감식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족흔적은 같은 종류로 한 사람 것이고, 사건 초기엔 누구 발자국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이 발자국 주인이 백 경사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백 경사 신체 훼손 상태로 볼 때 원한·보복보다 목적성 있는 범행으로 판단된다'는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강도살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피살 당시 백 경사는 거의 저항하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과수 부검 결과 범인은 흉기로 백 경사 목·상체·등을 모두 6차례 찔렀지만, 정작 백 경사 몸에선 손바닥에만 상처가 나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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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불법 음반 유통…"전주 지리 밝아"
대구 모 고교 동창인 이승만과 이정학은 백 경사 피살 사건 당시 충남 논산에서 불법 음반·테이프 유통업 사무실을 차리고 전북 전주·익산 등을 오가며 물건을 납품하거나 관련 업자들과 교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백 경사가 살해되고 넉 달 뒤인 2003년 1월 22일 대전 한 쇼핑몰에서 두 사람 소행으로 추정되는 현금 수송차 탈취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사건은 공소 시효가 지난 데다 대전경찰청에서 국민은행 사건과 관련성이 없다고 덮었지만, 전북경찰청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냈다. 현금 수송차 탈취를 위해 이승만과 이정학 중 한 명이 백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빼앗은 게 아니냐는 게 경찰 추측이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을 위해 총기를 확보하는 패턴이 백 경사 피살 사건과 쇼핑몰 사건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쇼핑몰 사건 당시 총기 소지 여부는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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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진범과 권총 위치 안다" 편지 보내
두 사람은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직원(당시 45세)을 38구경 권총으로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들고 달아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됐다. 이들은 범행 두 달 전인 2001년 10월 15일 대전 비래동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을 차로 들이받아 권총을 빼앗았다.
백 경사 피살 사건은 지난달 13일 이승만이 전북경찰청에 "백 경사 총기 위치와 진범을 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지난 3일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 모 여관 천장에서 38구경 권총 한 자루를 발견했다. 백 경사 피살 사건 때 사라진 총기 번호와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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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원수로…"쟤가 총 쐈다" 엇갈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선 "이승만 진술만으론 진범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두 사람이 지난해 8월 경찰에 붙잡힌 뒤 "상대방이 총을 쐈다"고 떠밀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지난 1월 16일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나상훈)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검사님이 총을 쏜 사람이 저라고 확정을 짓고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은 것"이라며 "나는 3 대 1로 붙어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총을 쏠 필요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정학은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런 죄인인 줄 모르고 결혼한 집사람과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용서 구하는 날이 있길 바란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이승만이 총을 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승만이 군 시절 수색대대에서 복무해 사격 솜씨가 뛰어나지만 이정학은 군 면제로 사격 경험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이후신 전북경찰청 형사과장은 "최근 프로파일러가 사건 당시 파출소 상황을 기억하는 목격자로부터 법최면 조사를 통해 구체적 진술을 확보했다"며 "경찰청 광역범죄분석팀 전문 수사 인력 5명이 진술과 증거 분석을 돕고 있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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