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동네책방 ‘로우북스’는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 취향을 묻고 책을 추천하는 ‘책매쟁이’ 책방입니다. 하루 평균 30권이 팔릴 만큼, 추천의 힘으로 동네책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책은 어렵다?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책매쟁이’가 골라드려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동네책방 ‘로우북스’에 오면 책방지기로부터 둘 중 하나의 질문을 받습니다. “책 추천해드릴까요?” 혹은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앞의 질문을 들었다면 이곳에 처음 온 손님, 뒤의 질문을 들었다면 단골손님일 것입니다.
로우북스 배인영 대표는 이처럼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묻고 직접 책을 추천해줍니다. 책과 손님을 연결해준다는 의미에서 그에겐 ‘책매쟁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닙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 몰라 서가만 맴도는 손님, 지나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들른 행인, 새로운 책을 찾아 눈을 반짝이는 이들 모두 책매쟁이의 맞춤형 ‘책 중매’에 어느새 손엔 한두 권의 책을 쥐게 됩니다.
책방지기의 적극적인 ‘영업’ 덕에 열 평(33㎡) 남짓한 작은 동네책방에서 하루 평균 팔려나가는 책은 약 30권에 달합니다. 한 달로 치면 600권 가까운 책이 주인을 찾아가는 셈입니다. 전국에서 동네책방이 가장 많다는 망원동에서도 이는 단연 눈에 띄는 숫자입니다. 배 대표는 “책방을 찾는 손님이 한 명이든 열 명이든 한 분 한 분 직접 다가가 책을 추천한다”고 말했습니다.

망해가던 책방 일으킨 ‘추천의 힘’
2021년 처음 책방 문을 연 것은 배 대표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장사가 안 돼 6개월 만에 폐업하려던 것을 배 대표가 해보겠다며 나섰습니다. 당시 그는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대학원 합격 통지까지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번아웃이 찾아왔고 책방을 핑계 삼아 그대로 눌러앉았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꾸준히 쌓아온 독서 내공을 발휘한 ‘책 추천’이 쓰러져가던 책방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개업 초기에 우연히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계산을 하려고 들고 온 책을 보니 그분이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이런 책을 훨씬 좋아하실 것 같다며 책을 추천해 드렸는데 며칠 뒤 너무 잘 읽었다며 고맙다고 찾아왔어요. 추천의 힘을 처음 경험한 거죠. 책방을 하며 느낀 건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책을 만나는 겁니다.”
로우북스의 주요 타깃 고객은 평소 책을 잘 읽지 않거나 책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입니다. 자신과 맞는 책만 만난다면 누구나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게 배 대표의 생각입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프러포즈하듯 책방지기가 먼저 손을 내밉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기 제일 어려워
중요한 것은 손님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다가가는 것입니다. 첫 방문객에겐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과 이유 등을 묻습니다. 가방에 달린 키링이나 착용한 액세서리, 구두를 신었는지 운동화를 신었는지 같은 사소한 디테일도 취향을 찾는 단서가 됩니다.
날씨와 연계해 책을 권하는 것은 책방지기의 ‘치트키’입니다. 그날의 분위기, 책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이 독서로 완성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책방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 대표는 요즘처럼 스산한 겨울철에 읽기 좋은 책으로 천선란 작가의 신작 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를 꼽았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읽기 딱이라고 합니다.
의외로 추천하기 가장 힘든 유형은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입니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데다 읽고 싶은 책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겐 문체와 정서 등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먹히는’ 추천이 가능합니다.
박상영 작가 소설을 좋아한다는 기자에겐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권했습니다.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뒤 인물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방식이 비슷해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는 게 이유라고 합니다. 배 대표는 이어 같은 작가의 ‘패배의 신호’를 읽어보라고 추천했는데 “‘브람스…’가 가볍고 산뜻한 샴페인이라면 ‘패배의 신호’는 묵직한 보디감의 레드와인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망원동과 합정동을 잇는 포은로 사거리에 위치한 로우북스 인근은 늘 인파로 북적입니다. 덕분에 책방엔 망원동에 놀러 왔다가, 책방 앞 마트에 장 보러 왔다가, 인근 요가학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책방에 들렀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배 대표가 지향하는 것도 누구나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동네책방입니다. 책방 이름의 로우(low)는 ‘문턱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힙’한 가게가 즐비한 망원동에서 간판 하나 달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신 날씨가 아주 춥지 않은 날을 제외하곤 책방 문을 항상 활짝 열어두는 것이 이곳만의 환영 방식입니다.

간판 없는 ‘문턱 낮은’ 책방
특히 손님들이 소품숍 구경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책방을 들르길 바라는 마음에 책도 ‘소품처럼’ 배치해놓았습니다. 이곳에 소장된 소설, 에세이, 시, 철학 분야 책 800여 권은 내용이 탄탄한 것은 기본이고 특별히 표지 디자인이 예쁜 것을 선정하는 데도 공을 들였습니다.
책방 곳곳엔 색색의 꽃들도 함께 장식하는데 이땐 옆에 두는 책의 디자인, 내용과의 조화까지 고려합니다. 가령 헤르만 헤세의 선집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옆엔 개양귀비를 가져다 놓는 식입니다. 고재 테이블 위엔 재생지로 만든 책을, 흰색 테이블 위엔 양장본 도서를 올려놓는 등의 센스는 과거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했던 배 대표의 노하우에서 비롯했습니다.
이처럼 책방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 덕에 손님의 절반 이상은 매주, 매달 한 번씩은 찾아오는 단골입니다. “책방지기의 질문에 좋은 답변을 하고 싶어서 책을 더욱 열심히 읽는다”고 말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거꾸로 손님이 책을 추천해주는 일도 많습니다. 그중 배 대표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은 판매 도서로 들여오기도 합니다. 책 표지엔 손님이 직접 쓴 추천사를 함께 붙여 놓습니다.
핫플레이스와 주택이 밀집한 동네 특성상 인근 가게 사장님, 예술계 종사자, 작가 등도 책방을 즐겨 찾습니다. 배 대표는 생업이 바쁜 이들을 위해 직접 책 배달 서비스를 해주고 단골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포스터로 책방 벽면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그는 “책방이 이 동네만의 감성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며 “열 평 남짓한 작은 책방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손님들이 알려준 ‘힘 빼기’의 기술
물론 책방지기로 사는 게 늘 행복하기만 할 리 없습니다. 출퇴근의 구분이 없는 삶,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 오늘은 장사가 잘돼도 내일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느 자영업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배 대표는 책방지기로 살며 마주한 환희와 멈춤의 순간들을 담아 지난해 11월 ‘동네책방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특히 쉽게 통제되지 않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그는 ‘힘 빼고 일하기’를 노동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누리소통망(SNS)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대부분의 동네책방 입장에서 SNS는 가장 강력한 홍보수단이지만 제대로 운영하자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만큼 품이 많이 듭니다.
이에 배 대표는 SNS 이미지로 책방을 소비하게 만들고,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잠재고객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책방에서의 행복을 만끽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비축하니 늘 여유롭게 방문객을 맞을 수 있었고 걱정했던 매출도 오히려 올랐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이 삶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배 대표는 “‘손님’이 삶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고 정정했습니다.
“책을 추천하겠다는 제 말에 호응해주시는 분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손님들이 저를 환대해주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매개로 이러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게 인생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 손님들은 미래의 성취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마지막으로 배 대표에게 여전히 책방의 문턱을 넘지 못해 머뭇대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표지가 예쁜 책을 가지고 나오세요. 안 읽더라도 장식품으로 쓸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럴 땐 책매쟁이를 불러주세요!”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56 1층
운영시간: 수~토요일 13:00~19:30, 일요일 13:00~18:00
전화: 070-8080-4319
책방지기가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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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헤르만 헤세(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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