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열 달째 식물인간 원 일병, 협박 간부 '무죄'에 울부짖은 아버지
[박수림 기자]
▲ 지난 10월 6일 강원 원주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원 일병의 모습. 원 일병은 두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지난 12월 14일 혼수상태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
ⓒ 원 일병 가족 제공 |
15일 오후 경기 용인시 제2지역군사법원 법정. 재판 시작과 동시에 한 남자가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고인들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다 퇴장당했다. 법정 문 너머로 그가 "어린애한테 꼭 그래야만 했냐"라고 외치는 말이 들려왔다. 결국 그는 30분간 법원 밖에 나가 있어야 했다.
그의 아들은 입대 반년 만에 식물인간이 돼 돌아온 원 일병(사건 당시 20세, 현 21세)이다. 자대배치를 받은 뒤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입원한 병원에서 두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두 번째 자살 시도가 있었던 지난해 12월 14일부터는 혼수상태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날은 원 일병 사건과 관련된 첫 재판의 선고 날이었다. 군 간부 2명은 원 일병에게 "옥살이 할 수 있다", "계속 이러면 병역기피로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는 등의 협박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10개월 만에 원 일병의 가족이 마주한 결과는 이들의 무죄 선고였다.
▲ '17사단 원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 전 남긴 메모 일부. "사회에서 잘 지냈는데 군에서만 이런다고. 잘못하면 옥살이를 할 수 있다고 중대장님, 행보관님이 말씀하셨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
ⓒ 원 일병 가족 제공 |
군은 뒤늦게 해당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봤고, 사건 당시 제17사단 방공중대장이었던 서아무개 소령(38)과 같은 소속대 행정보급부사관으로 있던 박아무개 원사(50)에게 협박 혐의를 적용해 지난 4월 4일 군검찰에 넘겼다. 군검찰은 지난 6월 18일 이들을 기소했다.
군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서 소령은 지난해 11월 1일 오전 10시~오후 2시 소속대 방공중대장실에서 원 일병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는 원 일병이 "힘들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반복하자 "사회에서 잘 지냈는데 군에서만 이런다고 (들었다). 잘못하면 옥살이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원사 역시 같은 날 원 일병과의 면담에서 서 소령과 같은 발언을 이어갔다. 더해 지난해 11월 20일 오후 5시경엔 행정보급관실 앞 복도에서 원 일병에게 "너 계속 이러면 병역기피로 조사 의뢰할 수 있다. 만약 복무 기피로 (결과가) 나오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다만 두 사람은 공소장의 "옥살이" 발언 부분은 부인함).
지난 9월 10일 진행된 첫 공판 겸 결심공판에서 군검사는 두 피고인(서 소령, 박 원사)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제2지역군사법원 제1재판부(재판장 장준홍 대령)는 이날 오후 1시 50분 진행된 서 소령과 박 원사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각 행위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 상규에 반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피해자가 작성한 노트가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이지만 작성일자가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군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협박이 아니라) 군복무 중인 피해자를 설득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되지도 않는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 '17사단 원 일병'의 가족들이 15일 오후 경기 용인 제2지역군사법원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대화하고 있다. 원 일병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는 군 간부들은 이날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원 일병은 두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지난 12월 14일 혼수상태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
ⓒ 박수림 |
이들을 응원하러 온 또 다른 군 피해자 고 김상현 이병의 아버지 김기철씨도, 현역 장병 부모들로 구성된 '아프지말고 다치지말고 무사귀환 부모연대' 소속 어머니들도 원 일병의 가족을 위로했다. 이들은 법원 앞에 서서 약 40분 동안 함께 눈물을 흘렸다.
원 일병 측은 두 간부가 법원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지인들은 원 일병 가족을 대신해 "너희 눈엔 병사들이 X만도 못하냐?", "속 시원하게 사과라도 받고 싶다"는 등 말로 목소리를 높였다. 원 일병의 아버지는 잰걸음으로 이동하는 간부들을 따라다니며 계속 "책임을 지라"고 말했다.
박 원사는 쫓기듯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서 소령은 원 일병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곧이어 그 역시 "이만 가보겠다"며 떠났다. <오마이뉴스>는 법원을 빠져나가는 서 소령을 따라가 '왜 피해자 가족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서 소령은 "(원 일병의) 아버님께서 너무 흥분해 계셔서 제가 무슨 얘기를 드려도 통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감정만 더 부추길 것 같았다"고 답했다. 이어 "부모님께서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긴한데 명확한 건 제가 중대장으로서 원 일병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할 생각'을 묻는 말에는 "사과라는 개념보다는 추후 원 일병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떠났다.
▲ '17사단 원 일병'의 삼촌이 15일 오후 경기 용인 제2지역군사법원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에 조카에게 보낸 카톡을 보여주고 있다. 원 일병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는 군 간부들은 이날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원 일병은 두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지난 12월 14일 혼수상태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
ⓒ 박수림 |
원 일병의 삼촌은 두 간부가 '옥살이 할 수 있다', '병역기피로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발언한 점을 재차 강조하며 "아무리 간부들이 처벌이나 조사 의뢰 권한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병사들, 특히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병사들은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소령과 원사가 하는 말들에 위압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재판에 참석한 원 일병 측 이명재 변호사(법무법인 서인)도 "피해자는 복무가 어려워 힘듦을 하소연했고, 극단 선택 위험도가 높은 상황이었다"면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선고 결정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던 원 일병의 아버지는 마음을 추스른 뒤 "비록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지만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이제 첫걸음을 뗀 것뿐"이라며 "검찰에 항소를 요청하고 현재 수사 중인 다른 고발 건으로도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현재 원 일병 측은 네 차례에 걸쳐 경찰에 관계자들을 추가로 고발한 상태다.
▲ '17사단 원 일병'의 삼촌이 15일 오후 경기 용인 제2지역군사법원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에 과거 조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가장 우측이 원 일병). 원 일병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는 군 간부들은 이날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원 일병은 두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지난 12월 14일 혼수상태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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