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유권자가 사고 싶은 물건 팔고 있다"

김형호 2024. 10. 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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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수 재선거] 광주 정치학자 3명이 본 '진보당 돌풍' 배경

[김형호 기자]

 10·16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 선거유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장세일 후보,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와 이석하 후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장현 후보(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 조국혁신당·진보당·연합뉴스
10·16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서 진보당 기세가 돌풍을 넘어 태풍으로 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3강 구도 흐름에서 9일엔 진보당 이석하(53)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며 진보당의 초반 선전을 외면했던 두 정당도 바짝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찻잔을 넘어 선거 막판 '찻잔 밖 돌풍'으로 커지는 진보당의 선전 배경은 무엇일까. 광주에 기반을 둔 정치학자 3명에게 물었다.

[분석 1. 생활정치의 힘] "유권자와 거리 좁히기 성공이 밑바탕"

지병근 조선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생활 정치의 힘"을 우선 이야기했다. 지 교수는 "이석하 후보가 '칼 가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예를 들면 농민회와 함께 3년, 5년 이상 꾸준히 마을 돌아다니며 부엌칼 갈아주기 등 농촌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위기에도 당원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에 헌신하며 신망을 쌓아왔던 것이 돌풍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이라고 짚었다.

공진성 조선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일단, 진보당의 이번 돌풍은 이변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공 교수는 "영광군은 진보당 지역 기반이 탄탄한 곳이다. 영광군에 배정된 2석의 도의원 중 1석을 진보당이 차지하고 있다"며 "이런 여건 아래 진보당이 농민회 등 각종 사회단체와 연계해 '생활정치' '바닥 민심 잡기'를 꾸준히 한 것이 긍정적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또한 공 교수는 "영광은 1980년대부터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인 곳이고, 근래 들어 태양광·풍력발전소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곳"이라며 "진보당이 각종 개발사업에서 소외된 주민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농사를 못 짓게 된 분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조직화하는 데 성과를 거둔 것도 선전 요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왼쪽부터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정치학 박사), 지병근 조선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 공진성 조선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
ⓒ 오승용·지병근·공진성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정치학 박사) 역시 이석하 후보의 지역 봉사활동 이력을 두고 "유권자와의 거리 좁히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동의했다. 다만 오 대표는 "봉사활동 자체가 진보당 돌풍 이유는 될 수 없다. 그건 진보당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분석 2. 현장정치의 힘] "유권자가 사고 싶은 물건 팔고 있다"

오 대표는 "민주당은 여전히 자기들이 팔고 싶은 것만 유권자들에게 팔고 있다"고 짚은 뒤 "반대로 진보당은, 민주당과는 정반대로 활동해온 것이 이번에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를 두고 "가히 진보당의 재 발견이라고 부를만 하다"고도 했다.

오 대표는 "최근 여론 흐름이 3대3대3 아니냐. 단순히 칼을 갈아줬다고 진보당 후보가 이 정도 높은 지지율을 거둘 수는 없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상대는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그리고 직전 선거에서 호남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조국혁신당"이라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진보당의 진짜 돌풍 이유는, 민주당과 달리 진보당은 유권자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팔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슈 파이팅에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영광에서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해상풍력·태양광 발전소 건립 부작용과 농어민수당 제도 도입에 있어 진보당이 수년 전부터 민의를 대변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이번 선거에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진보당이 현장에서 끌어올린 대표적인 이슈가 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 부작용 문제와 농어민수당 이슈"라며 "두 이슈 모두에서 영광 주민들이 효능감을 맛본 것 같다. 진보당이 뭔가 자신들 삶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들을 주민들이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태양광·풍력발전소 사업의 경우 농민회와 연계한 진보당이 민심을 토대로 과감하게 중단을 요구하거나 대안을 제시했고, 전남에서 가장 먼저 도입된 농민수당 제도의 경우 진보당과 농민회가 줄기차게 도입 운동을 벌인 성과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수확기 논 벼멸구 피해 문제를 집중 부각, 정부로부터 '농업재해 인정'받은 것 역시 진보당 역할이 컸다.
  2일 오후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전남 농민단체가 벼멸구 피해의 자연재해 인정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요구하는 농민대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전남 장흥 벼멸구 피해 현장 살피는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오른쪽은 박형대 전라남도의원(진보당, 장흥1). 2024. 9. 24
ⓒ 진보당
반대로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문재인정부 역점 사업이기 때문인지 농어촌 사회 부작용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고, 선거전에 뛰어든 조국혁신당 역시 유권자 표심을 흔들만한 차별화된 공약을 내놓지 못한 것 같다고 오 대표는 말했다.

[분석 3. 선거 구도와 후보 자질] "유권자들, 군수 뽑는 선거로 인식"

이번 선거는 전임 강종만(무소속) 군수가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치러지게 됐다. 투표권이 있는 선거인은 4만 5248명이다. 9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의하면, 진보당 이석하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처음으로 선두에 올랐고, 그 뒤를 이어 민주당 장세일(60)·혁신당 장현(67) 후보가 맹추격하는'3강 구도 흐름이다.

지병근 교수는 선거 구도 관련 "조국당 등장으로 3파전 구도가 됐다"며 "조국당 참여 없이 민주·진보 2파전이었다면 진보당이 지금처럼 당선권에 들기 쉽지 않았을 수 있다"고 봤다. 공진성 교수 역시 "선거(후보) 구도도 진보당 돌풍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동의했다.

오승용 대표는 민주당과 혁신당 공천 문제도 지적했다.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우지 못하면서 진보당에게 공간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무소속 군수가 3차례 나온 영광은 민주당에게 항상 요주의 선거구였다"며 "이번에도 공천이 엉망이다. 사기·폭력 전과가 있는 인물을 공천했다. 이런 후보는 애초 컷오프돼야 할 인물인데, 공천 배경이 의아하다"고 했다.

오 대표는 혁신당을 향해서도 "공천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두 정당이 경쟁력 없는 인물을 내세우면서 진보당 이석하 후보의 활동 공간이 커졌다"고 했다. 혁신당 장현 후보는 강남 아파트 소유 문제와 철새 이미지로 상대 후보로부터 줄기차게 공격받고 있다.

진보당이 이번 10·16 재보궐 기초단체장 선거구 4곳 가운데 단 한 곳(영광)에만 후보를 내고 당력을 결집한 것 역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광군수 재선거 후보 선택 기준. 리얼미터가 <남도일보> 의뢰로 진행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2024. 10. 9
ⓒ 남도일보
 영광군수 재선거 후보 지지도. 리얼미터가 <남도일보> 의뢰로 진행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2024. 10. 9
ⓒ 남도일보
공진성 교수는 민주·혁신 두 정당의 선거 캠페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공 교수는 "진보당 돌풍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선거는 대선이 아니다"며 "그렇다면 유권자 삶과 직결되는 이슈를 던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론 흐름을 보면 유권자 상당수가 진보당의 생활진보 의제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 교수는 "이번 영광 선거는 윤석열이냐, 반 윤석열이냐, 큰아들(민주당)이냐, 작은 아들(혁신당)이냐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누가 더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누가 더 일을 잘할 사람인가, 인물을 보고 뽑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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