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11개월 차, 다소 무모했던 대구마라톤 풀코스 완주기

김태리 2026. 2. 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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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여 명이 함께 뛴 레이스… 기록보다 컸던 시민들의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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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기자]

"연습도 부족했는데 무슨 풀코스냐 너무 무모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각오로 이 글을 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애 첫 풀코스 42.195km는 예상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물론 기록은 땀과 숨, 그리고 수많은 응원들이 만든 그야말로 기적의 결과였다.

처음 마라톤 대회를 나갔던 건 2024년 10월 가을, 러닝 모임에 가입하기 전 코스가 좋다는 지인의 말에 준비도 없이 따라 나섰던 10km였다(10km 당시 기록 00:54:36). 이후 겨울 동안은 추위를 핑계로 쉬었다.

나의 달리기는 2025년 3월, '마라:탐'이라는 온라인 러닝 모임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각자 달리고, 인증하고, 서로의 기록에 '응원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휴대폰에서 울리는 화면 짧은 메시지 한 마디가 힘들어도 현관을 나서게 했다.

그렇게 주 3~4회, 하루 30분 남짓을 달렸다. 다시 신발끈을 조여맸던 2025년 봄. 4월에는 부산 광안대교를 달리는 10km, 5월에는 제주에서 열린 하프코스에 도전했다. 하프를 준비하며 동네 트랙에서 혼자 급수와 간식까지 챙겨 '가상 하프'를 뛰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대회날, 결승선에서 기다려준 남편을 보자 가족들과 친구들, 응원해주는 지인들의 얼굴이 함께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달리기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가을, 또 한번 하프 대회를 노렸지만, 러닝 열풍 속에 접수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대구에서 마라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프보다 풀이 신청이 수월할 것"이라는 지인의 말에 덜컥 풀코스를 신청했다. 2025년 10월 말, 러닝 8개월 차의 다소 무모한 선택이었다. '2026년 2월의 내가 잘해주겠지'라며 미래의 나에게 숙제를 넘겼다.

그렇게 시작 된 무모한 도전의 시작. 이번엔 연습을 많이 하고 도전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겨울철 풀코스 훈련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제주의 바람은 거셌고, 폭설과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졌다. D-day 숫자는 매일 확인했지만, 계획한 훈련을 다 채우지는 못했다. 러닝 서적을 읽고, 훈련 스케줄을 짜고, 컨디션을 점검했지만 실행은 늘 부족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반은 환경탓이고, 반은 핑계이기도 하다).

드디어 대회 전날, 제주 서귀포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김해를 거쳐 대구로 이동했다. 함께 출전하는 가족과 응원을 온 친구, 친동생과 그리고 조카 덕분에 분위기는 여행에 가까웠다. 떡볶이 뮤지엄을 찾았고, 친구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늦게까지 야식을 즐기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호수를 한 시간 걷고 잠자리에 들었다. 풀코스를 앞둔 사람의 전야제치고는 다소 느슨했다. 이것 역시 지금 생각해보니 걱정이 올라올까봐 애써 누르려는 청개구리 심보였나보다.
▲ 대구마라톤 2026 대구 스타디움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전 자원봉사자들의 준비가 한창이던 현장
ⓒ 김태리
대회 당일 아침, 다행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걱정과 긴장을 크게 하지 않는 성격이라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오늘 풀코스를 뛴다고? 오늘 여기서?' 라는 질문만 반복했다.
대구 스타디움에 들어섰을 때, 환하게 웃는 우사인 볼트의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목표는 Sub4 (4시간 이내 완주)라고 선포해 두긴 했지만,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다. 오버페이스하지 않기, 다치지 않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그리고 반드시 완주하기! 그러나 무리하지 말기!
 나도 '레디샷'이란 걸 찍어본다. 괜히 진짜 러너가 된 것 같아 으쓱했다.
ⓒ 김태리
에너지젤은 8km마다 하나씩, 총 6개를 준비했다. 출발 30분 전 하나를 먼저 먹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다. 대신 고글을 착용했고, 러닝벨트 없이 주머니 달린 바지에 휴대전화와 젤을 넣었다. 이어폰도 사용하지 않았다. 4시간 이상을 버틸 배터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소리를 그대로 듣고, 내 발걸음과 자세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러 지인들과 영상 자료들의 조언에 따라 초반 20km는 최대한 절제하기로 했다. 20km를 1시간 37분대에 통과하자는 계산이 섰다. '이러면 4시간 안에 들어오겠는데?' 그때부터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괜찮아? 아픈 데는 없어? 이 속도 유지할 수 있겠어?"

20km 이후, 도로 가장 자리 대구 시민들의 응원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작은 손을 내밀어주던 아이들과의 따뜻한 하이파이브는 묘한 에너지와 강력한 힘을 줬다. 25km 지점에서는 어젯밤부터 응원 온 친구가 갑자기 나타났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서로 소리만 지르고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지나가느라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지만, 그 짧은 순간이 또한 번 강력한 동력이 됐다.

드디어 30km,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한 장 찍는 순간 배터리가 방전됐다. 이어 스마트워치도 꺼졌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남은 건 나의 감각뿐이었다. 남은 에너지젤 3개, 그리고 남은 거리 12.195km. 시계 대신 1km마다 세워진 안내판만 믿었다(다행히 30km 이후 부터는 1km 마다 친절히 안내해주어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

35km 이후 말로만 듣던 업힐(오르막)이 시작됐다. 곳곳에서 멈춰 서거나 걷는 참가자들이 보였다. 쥐가 나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걷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오르막에서는 바닥을 보며 '여긴 평지다'라고 되뇌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2-3명씩 서있던 줄에 기다릴 시간이 아까워 그냥 지나쳤던 나였다. 끝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마지막 결승선인 스타디움을 향해 꺾이는 40km 지점, 이제 남은 거리는 2.195km.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시민들과 여러 러닝 크루들의 응원을 모두 나를 향한 것이라 믿으며 달려냈다. 마지막 스타디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근처를 달리던 레이스 패트롤 러너분의 격려를 들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처음 출전한 마라톤 풀코스에 피니쉬 들어오며 눈물 대신 웃음이 났다.
ⓒ 용작가 (아월심볼)
기록은 3시간 52분 19초. 마지막 약 12키로를 머릿 속으로 계산했던 예상과 거의 일치했다. 결승선에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지만, 오히려 웃음이 났다. 그리고 다리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기다리던 가족들은 내가 예상보다 빨리 들어와 결승선 통과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기도 했다. 다음 날에도 극심한 통증은 없었고, 가벼운 회복주가 가능할 정도였다.

대회 후 여러 리뷰를 찾아보니, 이 대회는 바람과 업힐로 악명이 높았다. 참가자는 약 4만 1천 명 규모. 쉽지 않은 코스였다는 평가가 많았고, 대회 운영이 매우 좋았다는 호평이 많았다.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을 잘 선택했구나'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돌아보니 나에게는 생각보다 달릴 만한 레이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많은 지인들과 대구 시민들의 응원덕분이었다. 이 힘이 정말로 강렬했다.

급수대의 자원봉사자, 거리의 시민들, 이름 모를 아이들의 손, 친구의 외침. 그리고 전화로 문자로 응원해주던 사람들의 기도와 응원! 그 모든 것들이 내 페이스를 지켜줬다.
 다 뛰고도 실감이 잘 나지 않던 순간, 자랑스러웠던 그 날의 나.
ⓒ 김태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모여 나라는 한 사람을 밀어주고, 끌어준다는 사실을, 42.195km 위에서 나는 온몸으로 확인했다. '다신 안 나갈 각오로 달리자'고 했던 나의 첫 풀코스는 끝나자마자 다음 대회를 찾게 만들었다. 메달을 한 번 더 만져보고, 완주 러닝 로브를 다시 꺼내 입으며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응원하는 힘. 그 힘이 사람을 달리게도 하고, 결국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메달과 배번표. 첫풀마의 기록.
ⓒ 김태리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완주는 결국 함께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응원의 힘은, 레이스 밖의 삶에서도 계속된다. 첫 풀코스 완주 이후, 나는 다짐했다. 받았던 응원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42.195km는 끝났지만, 나의 응원의 레이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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