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킹메이커'들의 권력 다툼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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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은한국사2 안동김씨와 흥선대원군 |
| ⓒ TVNSTORY |
9월 30일 방송된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에서는 '왕을 지배한 권력자 안동 김씨 VS 흥선대원군' 편이 그려졌다.
안동 김씨는 고려시대부터 유서깊은 명문가였다. 시조인 김선평은 태조 왕건을 보필한 고려의 개국 공신이었고, 조선 건국 이후로도 대대로 훌륭한 관리, 재상,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며 실력과 명망을 두루 갖춘 가문으로 인정받았다. 이랬던 안동 김씨가 본격적인 권신 가문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계기는, 조선 22대 국왕 정조의 신하였던 김조순(1765-1832)의 시대부터였다. 그는 정조가 아끼던 최측근이었고 당시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이었다.
정조는 아들 순조가 11세 때 김조순의 딸과 혼인시켜 사돈관계를 맺는다. 김조순의 딸이 바로 순조의 정비이자 안동김씨 가문의 첫 번째 왕비인 순원왕후였다.
사실 정조는 본래 외척과 권신을 경계했지만, 말년이 되어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자 어린 순조를 보호해줄 장치로 신뢰하던 김조순과 안동 김씨 가문을 외척으로 맞아들이는 선택을 내린 것. <순조실록>에 따르면 '지금 내가 김조순에게 너를 부탁하노니, 이 신하는 반드시 비도(나쁜 길)로 너를 보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할만큼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다고 한다.
후대에 안동 김씨를 향한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정작 그 출발점이 된 김조순은 적어도 당대에는 유능하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왕의 신임 뿐만이 아니라 사대부 사회에서도 인망이 두터웠던 인물이었다. 김조순은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 대에도 변함없이 중용됐지만, 정작 본인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만 받아들이며 겸손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래서 김조순이 건재하던 시기에는 안동 김씨의 전횡이 표면적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안동 김씨는 김조순의 그늘 아래서 그의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이 '왕실의 외척'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고 권력의 단맛에 서서히 빠져가고 있었다. 김조순을 향한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조순이라도 가문의 전횡을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과, 가문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방치하거나 묵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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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은한국사2 안동김씨와 흥선대원군 |
| ⓒ TVNSTORY |
안동 김씨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왕실과 지속적인 혼인을 맺고 외척의 지위를 유지했다. 안동 김씨의 첫 번째 왕비인 순원왕후는 남편 순조가 사망하자 어린 헌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단행했는데, 자신의 친정인 안동 김씨 가문에 의존하여 국정을 운영했다. 사실상 안동 김씨가 내린 결정이 순원왕후와 헌종의 결정이 되면서 왕권의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였다.
또한 순조의 손자인 헌종의 아내인 효현왕후, 그 뒤를 이은 철종의 아내 철인왕후 모두 안동 김씨 가문 출신이었다. 한 가문에서 연달아 3명의 왕비를 배출한 것은 조선 왕조 역사상 최초였다. 당시 '조선이 전주 이씨가 아니라 안동 김씨의 나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가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심지어 안동 김씨는 국왕까지 자신들의 입맛대로 선택했다. 헌종이 후사없이 사망하며 직계 후손이 단절되자, 조선 왕실은 방계 혈통에서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헌종의 조카뻘인 이하전 등 가까운 종친들을 배제하고,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가 찾아낸 인물은 정작 왕위 계승순위에서는 가장 멀었던 데다 '죄인의 후손'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려있던 이원범(철종)이었다. 안동 김씨 가문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 왕을 세우기 위하여 이원범의 신분을 세탁하고, 왕실의 기록마저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용히 몸을 숙이고 기회를 기다린 흥선군
하지만 이러한 안동 김씨의 세력에 도전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왕실 종친이었던 흥선군 이하응(훗날의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는 인조(조선 16대 국왕)의 3남인 인평대군의 7대손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면 직계 왕실과는 촌수가 매우 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흥선군의 아버지 남연군이 사도세자의 직계 자손으로 입양되면서 종친의 지위를 간신히 유지할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종친들은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직에 오르거나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다. 더구나 당시 조선은 안동 김씨가 완벽하게 장악하게 장악한 상태여서 비주류 왕족에 불과한 흥선군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흥선군은 안동 김씨의 전횡에 분노하면서 조용히 몸을 숙이고 기회를 기다렸다. 야사에 따르면 흥선군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가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며 주책맞고 방탕한 행동을 일삼아 '상갓집의 개'라는 오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만 실록에는 흥선군의 젊은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안동 김씨 가문의 견제와 의심을 피하고 종친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몸을 낮추고 '사회생활'을 한 것이 과장되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1864년 허수아비 국왕이던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흥선군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에는 안동 김씨의 정치적 기반이던 순원왕후마저 사망한 뒤라, 왕위 계승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왕실의 가장 웃어른은 신정왕후 조대비였다. 그녀는 효명세자(순조의 아들)의 아내이자 헌종의 어머니로서 또다른 세도가문인 풍양 조씨 출신이었다.
신정왕후는 효명세자와 헌종의 연이은 요절로 직계후손이 끊기고, 안동 김씨 가문에 의하여 왕통이 철종의 후손에게 넘어가게 되면서 안동 김씨에게 큰 반감을 품고 있었다. 흥선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정왕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려달라고 제안한다. 신정왕후와 흥선군은 공통의 적인 안동 김씨 견제라는 목표를 가지고 손을 잡게 된다. 흥선군의 차남 이명복이 조선 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고종이다.
흥미롭게도 흥선군과 신정왕후는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안동 김씨의 정치술을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안동 김씨는 순조, 헌종, 철종 시대를 거치며 나이가 어리거나 정통성이 약한 임금을 허수아비로 앉혀놓고, 안동 김씨 가문 출신의 왕대비들이 수렴청정을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흥선군의 아들 고종이 후계자로 낙점되고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방식도 이와 똑같았다. 안동 김씨로서는 자신들이 했던 전례가 있었기에 고종 즉위에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국왕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조정의 실권은 안동 김씨가 틀어쥐고 있었다. 흥선군은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국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에 오르면서 그동안 숨겨놓은 야심과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흥선대원군은 '현 국왕의 살아있는 친부'라는 특수한 위치를 활용하여 신정왕후와 고종을 등에 업고 사실상 국정을 총괄하는 실세로 떠올랐다.
흥선대원군은 직접 조정에 출사하거나 공식 관직을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자택인 운현궁에 대신들을 불러들여 사실상 국정을 논의했고, 자신만을 위한 전용 출입문을 만들어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들었다. 흥선대원군같은 전례가 한 번도 없었기에 조정에서 그의 정치 개입을 막을 근거도, 권한의 한계도 분명하지 않다는 제도적 허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이용하고 포섭하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을 지지하던 김병학을 좌의정에 임명하는 등 우호적인 안동 김씨 세력과는 손을 잡았다. 반면 안동 김씨의 수장으로 전횡을 일삼던 김좌근 일파를 배척하며, 안동 김씨 가문끼리도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내부 분열을 유도했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세력 기반이었던 비변사를 혁파하고 서원 철폐를 단행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대원군의 탁월한 정치술과 과감한 개혁 정책으로 인하여 마침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그 기나긴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흥선대원군 역시 이후 10년간의 장기집권을 거치며 권력의 단맛에 빠져 집착하다가, 결국 아들인 고종에게 쫓겨나며 안동 김씨와 같은 전철을 걷게 된다. 어쩌면 안동 김씨와 흥선대원군의 진정한 '평행이론'은, 권력은 어떻게 잡느냐보다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특히 탐욕으로 물든 권력은 그 누구라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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