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나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쓴 책

류승연 2024. 10.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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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위한 학령기'의 고민을 담은 책

[류승연 기자]

▲ 아들이 사는 세계 표지 디자인
ⓒ 푸른숲출판사
'아들(자폐성 장애)의 엄마'로 살면서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쉴 틈도 없어요. 빼곡하게 들어찬 하루 스케줄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자면서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계획적으로 살아서 우리(아들과 나)가 향하는 곳이 어디지? 하루를 보면 엄청나게 계획적인 삶인데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전혀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어도 어디를, 무엇을 향해 가는지 목적지는 알고 달려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출간된 <아들이 사는 세계>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전작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들은, 길에서 울면 얼마든지 업어서 달랠 수 있는 어린이였어요.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키가 186cm에 이릅니다.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요. 정직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들은 어느덧 성인의 신체를 가진 청소년이 된 것이죠.

청소년인 아들이 사는 세계는 어린이였던 아들이 살았던 세계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이 세계는 결코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와요.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무수한 절망을 더 많은 희망으로 바꾸고 싶어서, 나는 잘 죽고 아들은 잘 살리고 싶어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이 사는 세계>를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1부. 성인기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는데요. 1부인 '고립이 아닌 공존의 세계로'는 우리가 향해야 할 목적지인 성인기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발달장애인인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비장애인 딸(아들과 쌍둥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 해본다지만 딸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있어서, 저는 방향성을 잡지 못하겠다거나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조차 못 잡고 헤매는 일은 없었어요. 비장애인 딸이 살아갈 세계는 제가 살아온 세계이기도 하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세계이기도 하기에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발달장애인인 아들이 살게 될 세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엔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어디에서 뭘 하며 누구와 만나 어떤 형태로 살게 되는지, 감도 못 잡겠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이 됐던 건 제 사후입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엔 사실 무엇이든 괜찮잖아요. '슈퍼맨'인 엄마가 나타나 아들 앞에 벌어진 문제들을 씩씩하게 풀어갈 테니까요. 그런데 제 사후에는요? 혼자 살 수 없는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들 생존의 필수조건이 엄마인 나의 생존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패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엄마로 사는 이 삶에 특별함이 있다면 그건 바로 늘 나의 사(死)를 염두에 두고 생(生)을 살아야 한다는 점일 거예요.

1부에선 제가 이 세상에 없어도 아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간 과정을 담았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방향성'을 설정한 전, 그렇다면 그 삶을 이미 살고 있는 성인기 당사자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성인기 삶에선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감사하게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덕에 전국을 다니며 많은 사례를 접하고 취재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제 나름대로 깨닫고 정리한, 성인기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살폈습니다.
▲ 아들이 사는 세계 책 소개 디자인
ⓒ 푸른숲출판사
2부. 학령기

2부의 소제목은 '똑같은 마음, 똑같은 사람'인데요. 2부는 학령기,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어느 해에 관한 아주 긴 이야기입니다.

1부에서 나온 과정들을 통해 저는 방향성을 설정했잖아요. 그런데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학령기인 지금부터 준비하고 익혀야 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돌이켜보니 특별했던 어느 해 특별했던 특수교사를 만나 아들이 눈부시게 성장했던 그해에, 아들의 성인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1년 동안 교실 안에서 채워지고 있었더라고요.

그뿐이 아닙니다. 특별했던 그해를 지나며 저는 아들의 마음, 심리적 영역에까지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게 돼요.

그전까지도 저는 세상을 향해 "아들을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 보아주세요"라고 외치곤 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저조차 아들을 사람이기에 앞서 장애인으로 보고 있었더라고요. 아들도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완전히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해를 지나며 저는 아들의 사회성 영역, 심리적 문제에 대한 고찰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실제로 성인기 삶을 사는 당사자들을 만나면요. 그 삶에서 중요한 건 인지가 얼마나 높은가, 얼마나 고기능인가, 한글로 이름을 쓸 줄 아는가 못 하는가의 여부가 아니에요. 성인기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사실상 사회성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부는 즐겁습니다. 즐거운 2부를 읽으며 각자가 어떤 인사이트 하나씩을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부. 성인기를 위한 학령기

3부인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행복한 어른 생활'은 성인기도 학령기도 아닌, 성인기를 위한 학령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3부에서 아들은 중학생이 돼요. 그러면서 아들이 사는 세계가 달라집니다.

그런 말이 있어요. 발달장애인은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발달한다고요. 다만 그 방향은 성장하거나 퇴행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요. 중학생이 된 아들은 여러 면에서 전반적으로 퇴행하기 시작합니다(물론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선 여전히 작은 성장을 보이지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어떻게 사람이 늘 성장만 합니까. 이런 해도 있고 저런 해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이죠. 그런데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어요. 한 번 입력된 잘못된 패턴(루틴)을 다시 재설정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한 번 입력된 잘못된 패턴(루틴)은 아들 삶 곳곳에 영향을 미쳐 아들의 고립을 촉발하는 촉매제가 돼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체념,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하아...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제 안에선 살고자 하는 어떤 에너지가 숨어있었나 봐요. 아들이 퇴행한 원인을 쫓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어디에 다다랐을까요. 바로 특수교육 시스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이나 복지에 얼마나 큰 기대가 있겠습니까. 그리 큰 기대가 없었음에도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어떤 현실' 앞에서 저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만약 우리나라 특수교육이 시설 생활에 적합한 발달장애인을 육성하는 교육을 하는 중이라면, 그런데 그 사실을 부모도 교사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아니 일부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방향성을 고집하고 있는 중이라면, 여러분은 그 방향성에 동의하시겠습니까.

3부에는 어쩌면 모두가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애써 외면해 왔던 특수교육의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삶이란 절망만 있는 건 아니죠.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활동 중심 참여 중심의 교육을 통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들을 함께 다뤘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들이 향후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 류승연 프로필 사진
ⓒ 푸른숲출판사
무대 위에 올린 담론

<아들이 사는 세계>는 그동안 제가 글과 말을 통해 조금씩 맛보기로만 내어놓았던 내용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제 관점에서 이뤄집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쓴 책이니 그렇겠죠.
제가 <아들이 사는 세계>에서 거론한 내용만이 삶의 정답은 아닐 겁니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확언하지 않기'였어요. 이건 제 경험과 느낌과 깨달음일 뿐 이것이 삶의 진리이거나 그런 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거론된 어떤 요소들을 무시하긴 어려울 겁니다. 읽어서, 한 번이라도 알고 나면, 그다음부턴 자꾸 떠오르면서 존재감을 드러낼 거예요.

저는 이 책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복지와 학령기 교육과 가정에서의 양육에 있어 그동안은 덜 조명 받았던 어떤 담론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해요.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렇다면 남은 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몫일 겁니다. 제가 건넨 담론을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성숙시켜 더 확장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건방지게 나이도 어린(?) 데다 교육자도 아닌 무지렁이 아줌마가 하는 말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 버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수많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첫 소절이 될 <아들이 사는 세계>를 기꺼이 즐겁게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거든요.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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