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말라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이 항구 도시에는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정열과 눈부신 예술이 가득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말라가 주의 수도. 말라가는 유럽 최남단의 대도시로 지중해 북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 연중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며, 태양의 해변이라는 뜻의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씨가 지속되고 겨울에도 한 달을 제외하면 낮에는 긴팔 옷 하나만 입고 다녀도 될 만큼 따뜻한 편. 어느 계절에 여행을 가도 가벼운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과연 태양의 해변도시답다. 일조량으로 따지면 런던이나 파리의 두 배에 달한다.
말라가의 역사는 2800년을 훌쩍 넘긴다. 당연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고 있는 도시로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기원전 13세기경 페니키아 인에 의해 말라카Μάλακα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으며 팍스 로마나 시기에 스페인 남부 주요 항구로 번영하였다. 마그레브 지역과 가까웠던 말라가는 많은 무슬림들이 정착하면서 빠르게 이슬람화되었다.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말라가는 이때부터 포도 산지로 유명했는데, 당시에는 술을 금하는 이슬람의 영향으로 와인이 아닌 건포도가 주요 생산품이었다.
피카소의 고향, 예술의 성지
말라가는 전 세계적으로 ‘피카소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도시다.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큐비즘의 대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이곳에서 1881년 태어났다. 따스한 날씨만큼이나 온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말라가가 피카소의 화풍에도 영향을 끼쳤을까. 그의 몇몇 작품에는 말라가에서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그 흔적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인 만큼 그와 예술에 대한 명소가 가득하다. 피카소가 태어난 마을은 공항 이름도, 술집과 카페,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도 피카소다. 먼저 피카소가 1881년부터 1884년까지 거주했던 생가를 개조한 피카소 생가 박물관을 방문해 보자. 이곳에서는 피카소의 예술적 유산을 기념하는 다양한 전시가 개최된다. 피카소 생가와 불과 20m 떨어진 곳에는 피카소의 유족이 기증한 그림과 조각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보유한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생가 입장권만 구입하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으니 함께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1~2층에 걸쳐 전시 공간이 펼쳐지며 카페와 기념품 숍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피카소가 말년에 그린 미완성품, 16세기 부에나비스타 백작의 저택으로 지정된 건물의 옛 모습 등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주요 작품들은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볼 수 있고, 말라가에는 없는 것이 사실. 대신 습작이나 미완성품 등이 있어 피카소와 한발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매력의 휴양지
말라가의 매력은 수만 가지다.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피카소 성지인 것은 물론, 역시 세계적인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 유태인 시인이자 철학자인 솔로몬 이븐 가비올이 태어난 곳이다. 한편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다. 연중 따스한 기온은 물론, 때 묻지 않은 맑은 해변과 열대식물들이 이국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뿜어낸다. 게다가 볼거리도 가득하다. 2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오랜 유적지가 곳곳에 펼쳐지고, 높은 곳을 오르면 평화로운 항구 마을의 조망이 어김없이 터져 나온다. 휴양만 생각하고 1박 일정을 잡았다가는 말라가의 매력에 빠져 빠듯하게 움직여야 할지도.
가장 중요한 관광지를 꼽자면 16세기 지어진 말라가 대성당이 있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성당은 특징이 있는데, 바로 회교도 사원 위에 세워졌다는 것. 말라가 대성당 역시 모스크 위에 지어졌는데, 다른 대성당과 달리 재정 문제로 한 개의 탑만 건설됐다. 하나의 팔을 가진 여인이라는 뜻의 ‘라 만키타La Manquita’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내부는 그 어느 대성당보다 화려하다. 반전 매력이 이런 걸까. 안으로 들어서면 긴 세월을 품은 석재 의자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파이프오르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페인 시민전쟁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해와 17개의 예배당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스페인 어느 도시를 가든 꼭 찾아가야 할 명소는 알카사바다. ‘성채’라는 뜻의 알카사바는 과거 이슬람교도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궁전이나 요새로 이슬람의 색채가 잘 보존돼 있다. 말라가의 알카사바는 분수와 정원이 정갈하게 가꿔져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히프랄파로 성과 붙어있는데, 길은 이어져 있지 않아 밖으로 나와 다른 오르막길로 올라야 한다. 히브랄파로 성은 오르는데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질 만큼 황홀한 전망이 펼쳐진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360도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말라가 전경을 누려보자.
말라가는 수많은 유적지와 화려한 자연 경관을 품고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단연 해변이다. ‘태양의 해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탁 트인 바다와 모래사장을 품고 있는데, 바다 주변으로 레스토랑과 리조트 등 휴양 시설이 밀집해 있어 관광이 편리하다. 게다가 도심 바로 옆에 자리해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해변으로 뛰어들 수 있다. 말라가 여행의 시작점이라 여겨지는 마리오 광장에서 카노바스 델 카스틸로 거리 끝까지 걸으면 금세 바다가 얼굴을 드러낸다. 마리나 광장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관광 명소가 있다. 늘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Marqués de Larios가 바로 그곳. ‘맛집’이라 불리는 레스토랑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카페, 24시간 피자 가게, 기념품 상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어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특히 밤이 되면 하늘을 장식한 조명에 불이 들어와 화려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말라가 항구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탁 트인 해안가에 야자수가 우거져 있어 말라가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곳으로 꼽힌다. 말라가 항구는 기원전 9세기부터 형성됐으며 여전히 유람선과 어선이 오가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스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낮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주홍빛 노을로 서서히 물드는 저녁 풍경은 더욱 황홀하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저녁 무렵부터 완전히 해가 저문 후 화려한 조명을 입은 금빛 야경까지 몇 시간이고 넋을 놓게 한다. 운동을 좋아한다면 항구 산책로를 따라 현지인들과 함께 러닝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라가 근교 여행
스페인 남부에는 보물 같은 마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가장 유명한 말라가 근교 여행지는 론다Londa. 차로 약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어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하다. 먼저,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는 론다 광장에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누에보 다리 전망대로 가자. 누에보 다리는 1759년 착공하여 1793년에 완공된 다리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는 120m 깊이의 엘 타호El Tajo 협곡을 잇고 있다. 아찔한 협곡과 그 위를 장식하듯 수놓은 아기자기한 집들이 빚어낸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다리를 건너 마리아 광장으로 내려가면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누에보 다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론다는 ‘투우’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아는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가 바로 론다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인 토로스 데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유적지인 론다 아랍 목욕탕Arab Baths Archaeological Site도 빼놓을 수 없다. 론다에는 1495년까지 이슬람이 지배했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아랍 목욕탕도 그중 하나다. 내부의 천장과 기둥, 별 모양을 낸 작은 채광창, 실내를 수증기로 채우기 위해 불을 피웠던 공간 등 과거 아랍인들의 건축 기술과 목욕 문화가 잘 보존돼 있어 수백 년 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카미니토 델 레이Caminito del Rey 협곡 트레킹을 추천한다. 역시 말라가에서 차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으며 투어 프로그램이 많아 당일치기로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왕의 오솔길이라는 뜻의 카미니토 델 레이는 본래 20세기 초에 건설된 수력 발전소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인데, 수력 발전소 완공 후 스페인의 국왕인 알폰소 13세가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이 길을 걸었다고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협곡의 험준한 바위를 따라 7.7km의 길이 이어져 있는데, 계곡과 호수를 발아래 두고 깎아지른 절벽의 좁은 바윗길을 걷게 돼 아찔한 매력이 있다. 단, 하루에 입장 가능한 인원이 제한돼 있으니 미리 예약해두자.
트레킹에 자신감이 붙었다면 안테케라 토르칼 국립공원 투어에도 도전해 보자. 안테케라의 고인돌과 카르스트 지층 등 기이한 자연 암석이 펼쳐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자연 경관을 누릴 수 있다. 코스는 1.5km의 그린 루트, 3km의 옐로 루트 두 가지. 두 코스 모두 독특한 바위 군단이 펼쳐지며 약간의 오르막은 있지만 난도가 높진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트레킹이 가능하다. 이곳의 고인들은 석기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1억 5천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자연과 유적지를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기다 보면 힘들 새도 없이 안테케라의 흥미로운 여행이 마무리된다.
항공: 직항 편이 없어 1~2회 경유를 거친다. 1회 경유 시 보통 18시간 정도 소요된다.
비자: 90일간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하다.
날씨: 겨울에는 평균 13도로 서울 4월의 기온과 비슷하다.
언어: 스페인어
시차: 한국보다 8시간 늦다.
물가: 한국과 비슷하고, 여타 유럽 국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화폐: 유로EUR
카드 사용: 박물관이나 상점, 레스토랑, 슈퍼마켓 등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은 일부 소규모 식당이나 길거리 상점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시에스타: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및 일부 열대 지방 국가의 휴식 문화. 대게 오후 12시~1시는 레스토랑이나 상점이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