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타임머신] 테르미도르 반동

1794년 7월, 프랑스 혁명력으로 테르미도르(Thermidor, 뜨거운 달), 프랑스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전달에만 벌써 1300여 명이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그 광란의 공포정치를 이끄는 주인공의 이름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사진). 출세의 길을 거부하고 청빈한 삶을 살며 약자의 편에 선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급진 자코뱅파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도덕과 청렴의 화신이었다. 대중의 열광을 등에 업은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세상을 ‘순수하게’ 만들고자 했다. 자유를 위해 독재를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도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혁명정부는 폭정에 대항하는 자유의 전제정”이라고 선포하며, 자신의 편에 서지 않는 모든 이를 공안위원회에 회부했다. ‘혁명의 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이 아닌 공포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결국 테르미도르 8일,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었고, 그는 즉각 체포되어, 바로 다음 날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의 동료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 사건을 ‘테르미도르 반동(Thermidorian Reaction)’이라 부른다. ‘왕을 처형한 나라’ 프랑스의 혁명은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독재로 이어지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한번 살인을 이론적으로 시인하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은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의 죄과는 피에 취한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말에 도취한 일이다.” 독일의 역사 저술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조제프 푸셰-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에 남긴 탄식이다. ‘내란 세력 척결’, ‘잔불 진압’, ‘사형시켜야’ 같은 말이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오히려 국민의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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