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원에 춤추고 떼창"…아재 놀이터에 2030女 점령, 왜
# 프로야구 LG트윈스의 오랜 팬인 이모(33)씨는 최근 프로야구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씨는 “대학생 때는 같이 직관하러 가자고 해도 아무도 가질 않았는데, 요새는 LG팬도 아니면서 같이 가자는 친구들이 많아 신기하다”며 “2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3시간을 넘게 즐길 수 있으니 아이돌 콘서트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전국의 경기장이 문을 닫으면서 관중이 역대 최저인 32만8000명까지 주저앉았던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 날개를 달았다. 2021년 122만8000명에서 2022년 607만6074명까지 수직으로 상승했고, 지난해엔 팬데믹 이전(2019년 728만6000명) 수준을 넘어선 810만명을, 올해 정규시즌에는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가을야구의 열기도 뜨겁다. 1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행된 올해 포스트시즌 8경기(13일 기준)는 모두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흥행을 견인한 건 ‘2030 여성’이었다. KBO가 7월 열린 올스타전 티켓 구매자를 조사한 결과에서 20대 여성이 39.6%, 30대 여성이 19.1%를 기록하는 등 여성 관중이 68.8%로 남성(31.2%)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장 직관은 이른바 ‘아재’들의 놀이터라는 말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2030의 관심이 야구장으로 쏠린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이경호 KBO 홍보팀장은 표면적인 변화로 ▶올해 세계 최초로 도입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과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 제한 해제 등을 꼽았다. 이 팀장은 “그간 심판의 볼·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잦았는데 ABS를 시행하면서 이 부분이 해소됐다”라며 “프로야구 콘텐트를 SNS에 올리지 못했던 부분이 올해부터 풀린 점도 젊은 관중의 유입을 늘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야구계에선 위의 두 가지 이유로는 갑작스러운 인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단 반응이다. 송재우 야구해설위원은 “사실 올해는 올림픽과 같은 빅 이벤트가 없어서 이 정도로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KBO가 2600명의 팬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중복응답)에서도 경기 관람 빈도가 증가한 이유 중 '새로운 경기 시스템이 도입돼서'는 10.8%에 그쳤다. 오히려 ‘응원문화가 재밌어서’(49.3%), ‘가족·지인이 더 자주 가자고 해서’(49.3%), ‘나들이·데이트를 하기 위해서’(31.1%)를 꼽은 이들이 더 많았다. ‘다른 놀 거리 대비 야구 관람 비용이 합리적이어서’도 26.2%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의 소비 심리 이면에 고물가·고금리의 경기침체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야구가 2030 세대에서 일종의 ‘가성비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과거 2030에게 인기가 없던 '러닝'이 최근 인기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의 경우 지갑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성비' 운동이나 문화생활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송 해설위원은 “특히 야구는 1만5000원만 내면 3~4시간을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함성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30이 그간 즐겼던 다른 문화생활의 경우 엔데믹 후에도 야구만큼의 반등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가성비 갑 문화생활로 꼽혔던 극장의 경우 영화 티켓 평균 가격이 1만5000원까지 상승하면서 올해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액은 6103억원에 그쳤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여전히 34.4% 적다. 같은 기간 관객 수는 42.4%나 줄었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놀이동산 3곳도 지난해 기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다만 이은희 교수는 “프로야구 측이 이런 젊은 층의 소비 심리를 타겟팅한 점이 주효했다”라며 “아이돌 포토카드 문화를 도입한다거나 야구장 내 먹거리를 활성화한 것 같이 세대교체에 따라 유연하게 변한 야구장 문화도 관중을 사로잡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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