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게 한 어머니의 한자교육 [내 인생의 오브제]

책을 통해 그가 후배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마음의 코어 근육을 키우는 것이었다. 굳이 직장이 아니라 세상 살다 보면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고, 좌절의 순간이 찾아온다. ‘힘들어 더는 못하겠다’며 번아웃 상태가 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지칠 때 이를 견디게 하는 게 코어 근육이듯 마음도 마찬가지. 마음에도 코어 근육이 있는 것이다. 감정 기복을 줄이고, 무너진 자존감을 되찾고,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지친 뇌를 충전시키는 것들은 평소 쌓아온 마음의 코어 근육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나름 그런 훈련을 하고 습관을 기르려고 하지만 그게 신체 근육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고동진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비법을 터득했는데 그게 한자 공부였다. 출발점은 어머니가 준 천자문 책.
“저는 한자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그 안에 담긴 오랜 세월의 지혜를 공감하게 됩니다. 인생사의 심오한 의미를 사자성어처럼 그렇게 짧게 압축한 말은 없을 겁니다. 어머니는 늘 어렸을 때부터 한자 공부를 하라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안에 숨은 삶의 정수를 내 안의 단단한 근육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고동진 의원에게 어머니는 각별한 존재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울서 태어난 박난호 여사는 소학교를 마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소위 ‘억척어멈’이었다. 화신 백화점 포목점에서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는데 수준급이었다. 고 의원이 일어를 배운 것도 어머니로부터였다. 해방 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서 보험모집인으로 17년을 일했는데 첫해만 빼고 둘째 해부터 내리 16년을 우수상을 받은 분이다. 박 여사는 늘 어렸을 때 납북된 여동생 자랑을 하셨다. 자식들한테 늘 이모처럼 되라고 했는데 그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본인은 소학교까지만 다닌 것이다. 그 이모가 북한에서 의사가 됐다는 사실을 이산가족 상봉 때 알게 된다. “2001년 임원이 되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위로부터는 사랑을, 주변으로부터는 신뢰를, 아랫사람으로부터는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라”고. 아직까지도 삶의 귀감이 되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업무상 해외 출장이 많은 자리. 그래도 공항에 내리면 그는 늘 어머니를 먼저 찾았다. 노모와 막걸리 한잔하는 게 그의 낙이었다.
그런 어머님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아들 동진에게 천자문 한 권을 준다. 그걸로 한자 공부하라고.
“어머님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저를 낳았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부모님 나이가 50이 넘었습니다. 그땐 창피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조숙하게도 젊음과 늙음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했나 봅니다. 어머니가 준 천자문으로요. 그러면서 저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던 상대적 박탈감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그러다가 세 달에 한 번으로 그 주기가 길어지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후배들에게도 늘 그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코어를 키우는 데는 제 경험상 한자 공부만 한 게 없다고.”
[손현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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