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방정부 ‘숨겨놓은 빚’ 찾기 위해 안간힘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지방정부, 실적 위해 돈빌려 인프라·부동산개발에 뛰어든 게 화근
전국인대, 지방정부에 숨겨진 빚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강력 지시
정부, 숨겨진 부채 많은 8곳 시범케이스로 엄중 경고·관련자 문책
중국 재정부는 지난 19일 톈진(天津)시 톈진항(天津港)보세구와 랴오닝(遼寧)성 잉커우(營口)시 바위취안(鮁魚圈)구, 장시(江西)성 푸저우(撫州)시 동샹(東鄕)구,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메이허커우(梅河口)시,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바오터우(包頭)시, 하이난(海南)성 린가오(臨高)현, 닝샤후이쭈(寧夏回族)자치구 인촨(銀川)시 융닝(永寧)현 등 8개 지역에 대해 ‘시범 케이스’로 엄중 경고와 함께 관련자들을 문책했다.
이들 지방정부 8곳은 대규모 부채를 몰래 숨긴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이른바 ‘숨겨놓은 빚’ 문제가 들통난 것이다. 이들 8개 지역에서 새로 밝혀진 숨겨놓은 빚은 모두 116억 위안(약 2조 2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톈진시 텐진항보세구는 2018년 6월 현지 국유기업으로부터 147억 3200만 위안을 빌린 뒤 지난해 5월까지 이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에 27억 5700만 위안만 갚고 부채는 45억 7800만 위안만 남은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했다. 숨겨진 부채가 73억 9700만 위안에 달했다.
중국이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찾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가 각 지방정부를 정조준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 를 샅샅이 찾아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강력히 경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대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중국 경제의 뇌관’인 숨겨진 부채를 파악해 해결함으로써 지방정부 빚의 증가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지침을 내놨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19일 보도했다.
지침에 따르면 전국인대 대표들은 20개 지방정부의 부채 관리 노력을 집중 검토한 결과 "부채 수준이 증가해 건설 프로젝트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금융시스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지침은 "모든 새로운, 숨겨져 있는, 실현되지 않은 부채를 책임질 수 있도록 평생 책임 시스템을 엄격히 구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쉬훙차이(許宏才)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예산업무위원회 주임은 "여러 지방정부가 예산 및 부채 관리정책을 시행하는 데 충분히 엄격하지 않았다"며 일부는 책임 시스템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중국 경제를 주도한 것은 지방정부의 건설사업이었다. 지방정부들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방채권을 발행해 인프라(사회기반시설) 사업과 주택 건설사업에 ‘몰빵’하기 시작했다.
이 떄문에 지방정부의 부채가 급속히 늘어나자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빚을 억제하기 위해 1994년부터 지방정부가 직접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반드시 중앙정부를 거쳐 채권을 발행하도록 했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중국인들의 ‘생활철학이 여기에도 녹아 있다. 지방정부들은 자금조달용 특수법인인 지방정부 융자법인(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을 만들어 돈을 빌리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LGFV는 중국에서는 소위 ‘투자개발그룹’ 또는 ‘도시투자공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LGFV는 일단 회사채 발행 및 은행대출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은 다음 낙후된 지역에 고속도로나 철도, 다리 등을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는 개발사업을 벌이거나 토지사용권을 판매한다. 이들은 개발사업이 끝나면 사업에서 나온 사용료 등으로 빌린 돈을 되갚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건설 경제를 떠받쳤다.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이런 꼼수 등을 통해 끊임없이 빚을 늘리자 급기야 2014년 지방정부에 직접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빚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지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지방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지방정부는 오히려 지방채 발행과 LGFV를 동시에 이용해 빚을 눈덩이처럼 부풀렸다.
LGFV를 이용한 자금조달 방식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3년 이상 장기 침체에 빠져드는 바람에 주요 LGFV들은 분양미달 등으로 자금회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에 따르면 2023년 중국 지방정부의 전체 차입액은 9조 3394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조 위안가량 불어났다. 전체 차입액 가운데 신규 발행 채권은 4조 6591억 위안이었으며 나머지 절반 이상의 채권은 만기도래 채권을 상환하기 위한, 즉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차환(借換)이 목적이었다.
이같은 돌려막기 행태는 LGFV 역시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발표한 자료에서 중국 LGFV의 연간 지출 가운데 80~90%가 신규 차입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 부채 문제는 부동산 위기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급속히 악화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의 지방 도시에서는 돈을 빌리기 위한 엉뚱한 사업이 반복되고 있을 정도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는 구이저우(貴州)성 류판수이(六盤水) 정부가 스키장 건설 등 23개의 관광사업을 벌이기 위해 6개의 LGFV를 설립했지만 정작 현지에서 1년 중 눈이 오는 기간은 2개월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숨겨진 부채를 정리하겠다는 중앙정부 노력은 ‘거대한’ 걸림돌을 마주하고 있다고 SCMP는 지적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채가 많은 데다 일부 지방정부의 경우 취약한 재정구조로 인해 부채 규모가 재정수입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도 많은 탓이다. 부채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인 윈난(雲南)성의 2022년 부채는 1조 2000억 위안에 달했다. 같은 해 재정수입보다 5000억 위안이나 더 많은 것이다.
LGFV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방채권과는 달리 정확한 부채 규모 및 상환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지방정부들이 산하 LGFV의 재정상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까닭이다. WSJ는 LGFV 부채 가운데 8000억 달러(약 1063조원) 규모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미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도 지난해 2900개 중국 LGFV를 검토한 결과 이자 지급 및 단기부채 상환이 가능한 법인은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IMF는 중국 전역의 LGFV 부채가 2022년에서 2028년까지 60%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숨겨진 부채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중국 내에서는 30조~50조 위안으로 파악하고 있다. 란포안(藍佛安) 재정부장이 올 3월 전국인대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30조 8699억 위안, 지방정부 채무는 40조 7400억 위안으로 각각 집계됐다. SCMP도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추산에 따르면 30조~50조 위안 수준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반면 서방이 추정한 부채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다. IMF는 지난해 5월 LGFV 빚을 합친 지방정부 총부채를 중국 GDP의 절반이 넘는 66조 위안(1경 2500조원)으로 추산했다. 2018년 부채 규모(35조 위안)와 비교하면 거의 2배로 불어난 셈이다.
WSJ은 LGFV 부채를 포함해 중국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를 7조∼11조 달러(9298조~1경 4600조원)로 추산한 바 있다. 중앙정부 부채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정확한 금액을 계산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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