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만두셨지만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진기사셨습니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사진기를 잡으셨으니 덕분에 저희 가족은 돈 주고 증명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남대문에 사진기를 사러가자고 하십니다
곧 여동.생의 아이가 태어나거든요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시기도 하고 첫 손주다 보니 직접 예쁘게 찍어주고 싶으신가봐요
매장에 가기 전에 안 쓰는 것들을 처분해서 새 카메라에 보태자고 이것저것 꺼내셨습니다 옷장에서 카메라 가방이 마구 쏟아집니다… 두 대 정도 보관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 필름카메라 부터 dslr까지 대충 봐도 10대 정도는 쌓여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바닥에 늘어놓으시면서 옛날 생각에 잠기신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참 우리 아부지 가족들 먹여살린다고 열심히 일하셨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를 분해해서 닦고, 셔터를 몇번 눌러보는 아버지는 저에게도 오랜만인 모습이라 뭔가 그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땐 아빠의 카메라 렌즈가 그렇게 커보였는데 지금 만져보니 생각보다 작고 가벼웠습니다
저도 사진찍는 걸 좋아하고 요즘은 필름카메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큰 필름카메라가 어디 있을 거라고 하셔서 온 집안을 뒤져서 찾아냈습니다… 긴 박스에 담겨있었는데 마미야라는 브랜드네요 언젠가 유튜브 쇼츠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는 필름카메라.. 근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집구석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예식장에서 단체사진 찍을 때 쓰셨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는 오직 dslr뿐이었는데 아마 제가 어릴 때 dslr이 출시되고 나서는 보관만 해두신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보이니까 분해해서 닦아주셨습니다
분해 방법이 기억이 안 나서 더듬더듬하는 아버지의 손을 애써 모른척 했습니다ㅋㅋ 때가 많이 탔고 오랫동안 사용을 안해서 그런지 연결부위들이 많이 뻑뻑한게 눈에 보였습니다
제가 ‘고장난 거 아닌가?’ 라고 하자 ‘그냥 대충 닦기만 해도 멀쩡하게 굴러가는게 수동의 매력이야’라면서 작동법을 알려주십니다
융으로 대충 슥슥 닦고 UV필터를 갈아주니 만지작거릴 때마다 너무 매력적인 소리가 납니다 나중에 한 번 갖고 나가보라고 넘겨주셨는데 자차도, 삼각대도 없어서 당장은 힘들겠네요
그와중에 어머니가 중고가격을 궁금해하셨는데 몇 만원 받지도 못 한다고 얼버무리십니다ㅋㅋㅋ 오래된 dslr보다 이런 필름카메라가 비싼 축에 속할텐데… 아들 챙겨주신다고 대충 넘어가시는 거 같습니다
제가 지금 예술관련직에 있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역시 컸던 걸 다시금 느낀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껜 말씀 드린 적이 없지만요 ㅎㅎ 거친 손과 세월이 흐른 장비들을 지켜보며 먹먹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지금 새 가족을 기다리며 방금 사온 따땃한 DSLR을 신나게 세팅 중이십니다 ㅋㅋㅋ
다음에 중형카메라를 들고 나가게 된다면 다시 들러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재밌는 취미생활 하시길바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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