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된 백제의 지름길, 지금 어디에 있냐면요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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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임실 관촌 왼쪽 공수봉, 오른쪽 앞 성미산, 뒤 방미산 |
| ⓒ 이완우 |
배나들이. 섬진강 상류 관촌면 주천마을의 옛 지명이다. 이 마을의 지명 '주천(舟川)'은 배로 건너는 강이라는 의미의 '배내'였다. 이곳은 백제 시대에 국경 지대를 오가는 나루터였다. 성미산성은 백제 국경의 군사 거점이며 행정 치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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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임실 관촌 배나들이, 주천마을 |
| ⓒ 이완우 |
옛길 탐사대는 호남정맥의 마루금 사자산을 넘는 말재를 겨냥하였다. 임실의 옛길을 찾아가며 신흥사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신전리 옛 신전초등학교를 지났다. 이곳이 학교였을 때, 전주에서 열차로 통근하는 교사들이 전라선 남관역에서 내렸다. 호남정맥 장재를 넘어 학교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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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사자산 신흥사 |
| ⓒ 이완우 |
신흥사 계곡의 옛길은 아막고원의 아막성, 거령산성, 월평리산성, 성미산성을 연결하는 백제의 길이었다. 이 백제의 길은 조선시대에는 통영별로의 지름길 구간으로 역할 했다. 1500년이 넘는 옛길의 원형을 찾으며 걸으니, 의미가 깊었다.
임실의 향토역사탐구가인 김진영씨가 이 지역에 전해오는 신흥사 풍수 설화를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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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정맥 지워진 고갯길 |
| ⓒ 이완우 |
옛길 탐방단은 차량으로 17번 국도의 고개인 슬치로 이동하였다. 슬치는 섬진강과 만경강 수계의 분수령이 된다. 전주의 반석역(半石驛)에서 출발하여 슬치를 넘으면 오원역(烏院驛)에 이르렀다. 슬치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역참로의 중요한 고개였다.
한양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는 남해안의 통영에 이르는 통영별로는 조선 시대에 중요한 역참로였다. 한양에서 전라도 삼례에 이르러서, 전주 반석역, 임실 오원역, 남원 오수역, 동도역, 응령역, 인월역을 거쳐 함양 제한역, 사근역을 지나 진주와 통영으로 향했다.
전주에서 남원에 이르는 이 통영별로 구간은 현재 17번 국도와 거의 일치하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였다. 400년간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부임하는 통제사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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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상관면 월암마을, 정여립 생가터 |
| ⓒ 이완우 |
상관면 월암마을의 정여립 생가터를 찾았다. 이곳에 전라선 옛 철길이 농로로 바뀌어 있었다. 이 농로가 조선시대 통영별로였다. 정여립 생가터에서 작은마치를 넘어 원마치 마을로 가서, 목적지에 따라 호남정맥의 작은마치나 큰마치를 선택하여 넘을 수 있었다. 정여립 생가터에서 역참로로 향하면 남관진 만마관을 거쳐 오원역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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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상관면 원마치마을, 멀리 안부 큰말재, 오른쪽 작은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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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만덕산 정수사 |
| ⓒ 이완우 |
임실 옛길 탐사반은 1500년 전 백제의 길이었던, 통영별로 지름길을 찾아보았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참로를 답사하며 살펴보았다. 조선 시대에 임실 지역의 통영별로 지름길은 백성의 길인 민로(民路)였고, 역참을 따라가는 통영별로는 관로(官路)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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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상관면 대흥리 골짜기 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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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별로 관로(역참로)와 민로(지름길) 개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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