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뜬 마늘맛 보자" MZ 핫플 된 전통시장, 800만 몰렸다 [시장의 변신]

백경서, 박진호, 최종권, 김준희, 이수기 2024. 10.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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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 있는 구경시장 앞에서 상인들이 먹을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1일 오후 충북 단양군 단양읍 구경시장. 시장 곳곳은 고객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음식을 파는 점포에는 젊은 고객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원시인 마늘떡갈비’ 주인 김종근(55)씨는 “젊은 사람이 많이 오니, 덩달아 시장이 젊어졌다”라며 "늘 북적여서 장사하는 기분이 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가게 2층 한쪽을 동굴처럼 꾸몄다. 그는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단양 수양개유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지역 특산물 마늘을 넣어 손도끼 모양 떡갈비를 만들었다”며 “젊은 손님이 음식 사진을 찍고, 사회 관계망서비스(SNS)에도 올려줘서 덕을 크게 봤다”고 말했다.

연중 붐비는 단양 구경시장

지난달 21일 충북 단양 구경시장 마늘골목에서 한 손님이 마늘을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구경시장엔 김씨 가게처럼 마늘을 이용한 먹거리가 많다. 마늘만두·마늘닭강정·마늘아이스크림·마늘부각·마늘순대 등 마늘을 특화한 음식이다. 점포 120곳 중 60%가 음식점이다. 시장 골목 내에는 마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입구에서 흑마늘빵 집을 운영하는 박소영(53)씨는 “2014년 분식집을 열고, 가게 앞에서 흑마늘을 반죽을 넣은 빵을 만들어 팔았는데 대박이 났다”며 “집집이 특색을 살린 메뉴를 개발하다 보니 해가 갈수록 맛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단양군은 인구 2만7500여 명에 불과한 인구소멸지역이다. 하지만 도담삼봉·사인암 등 단양팔경으로 불리는 천혜의 관광자원 덕분에 연간 1000만명이 지역을 찾는다. 군은 이 중 800만명이 구경시장을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명환 구경시장 상인회장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관광지를 둘러보고 구경시장을 찾는다”며 “주말이면 오전 8시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시장이 붐빈다”고 말했다.

상인들 노력으로 핫플로 변모
1980년대만 해도 군 인구가 6만명이 넘어 어느 정도 밥벌이는 됐지만, 인구가 점점 줄면서 구경시장도 쇠락을 거듭했다고 한다. 2010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되고 수년간 공들인 결과 2017년 흑마늘 닭강정이 히트했다. 닭강정을 사 가려고 2~3시간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곳 이름은 원래 단양전통시장이었는데 문화관광형 육성사업 공모에 도전하면서 구경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단양팔경에 이은 아홉번째 관광지가 되자는 의미다. 구경시장이 인기를 끌면서 점주도 젊어졌다. 60~70대가 주를 이루던 상인회 회원은 지금 50대 이하가 70%를 차지한다. 젊은 상인이 모여 청년회를 조직하고, 신메뉴와 서비스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 속초시 중앙동 속초관광수산시장이 관광객들로 가득한 모습. 박진호 기자

인구 소멸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던 전통시장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MZ세대(1981~2010년 출생)를 중심으로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장을 현대화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맛집을 공유하는 MZ세대 특성을 반영해 식음료 공간을 늘린 게 주효했다고 한다. 또 수산 시장과 일반 먹을 거리 점포를 구분하는 등 고객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시장 구조를 바꾼 곳도 있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술빵 먹으러 1시간 이상 대기
폐업 직전이었던 강원도 속초 속초관광수산시장은 공간 분리를 통해 고객이 이동을 편리하게 한 게 특징이다. 지난달 25일 찾은 속초관광수산시장은 휴일을 맞아 젊은 손님으로 붐볐다. 시장 1층은 전부 먹거리로, 닭전골목·순대골목·젓갈어시장골목·청과골목·고추골목 등 테마가 나누어져 있어 이용하기 편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 속초시 중앙동 속초관광수산시장에 있는 만석닭강정 내부 모습. 이 곳은 '만석반도체'로도 불린다. 박진호 기자

상점마다 청결함도 유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만석닭강정’으로 조리 시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든 데다 직원 모두 위생복과 위생모·장갑에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이 때문에 관광객은 만석닭강정을 ‘만석반도체’라고 부른다. 닭강정을 구매한 관광객 정모(35ㆍ여)씨는 “큰 유리창을 통해 조리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믿음이 갔다”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고 맛까지 있으니 시장에 올 때마다 닭강정은 꼭 사 들고 간다”고 말했다. 또 시장내 술빵집에도 고객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이곳은 찾은 박현정(54)씨는 "술빵을 사러 기다리는 고객이 하도 많아 1시간 기다리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은 1990년대 불어닥친 불황에 직격탄을 맞았다. 외환위기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지방까지 진출한 대형마트에 밀리면서 시장은 급속도로 쇠락했다. 빈 점포가 늘어나면서 단전·단수위기에까지 내몰렸지만, 2006년 속초시가 시장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젊은 손님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 속초시 중앙동 속초관광수산시장에 있는 한 술빵집 앞이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이 빵을 사려면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박진호 기자

바닷물 직접 끌어들여 해산물 신선도 유지
2010년에는 회센터 수조에 해수를 끌어오는 시설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속초 앞바다 1.6㎞, 수심 25m 지점에서 바닷물을 끌어오면서 시장 지하 1층 회센터에 공급한다. 덕분에 고객은 항상 싱싱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한때 이 시장은 507개 점포 가운데 60%가 휴폐업으로 비어있고, 어시장도 40%만 운영될 정도로 침체했다. 하지만 현재 850여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한두삼 속초관광수산시장 상인회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1층에 먹거리를 집중시키고 주차장 시설을 개선하면서 먹거리까지 개발했더니 관광객이 몰리고 시장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전주 남부시장은 문화 명소로 꼽혀
특성화로 MZ세대 ‘핫플’로 등극한 전통시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북 전주 남부시장은 1999년 불이 난 이후 창고로 쓰던 곳에 2012년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청년몰이 생겼다. 현재 공방·소품점·책방 등 20여 곳이 영업 중이다. 특히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미술·패션·만화·게임 등 비주류 문화인 서브컬처 기반 복합문화공간(문화공판장 작당)이 들어서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주시는 문체부 '폐산업시설 등 유휴 공간 문화재생사업'으로 작당 조성을 추진했다. 2021~2023년 국비·시비 25억원을 들여 과일·채소 등을 팔던 2층짜리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뒤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남부시장 상인회가 운영 중인 야시장(금·토 오후 5시~11시)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북 전주 남부시장 옛 원예공판장이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한 복합문화공간 '문화공판장 작당'으로 탈바꿈해 지난 4월 개관했다. [연합뉴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쌀가게로 유명한 신중앙시장
서울 황학동 신중앙시장도 인기다. 이곳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점원으로 일하면서 성공의 발판을 다졌던 쌀가게(복흥상회)가 있었다. 시장 하루 방문객이 1만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최근 2~3년사이 시장 인근 신당동 일대가 MZ세대 사이에서 ‘힙당동(힙 신당동)’으로 인기를 얻어 유동인구가 늘자, 덩달아 변신을 꾀했다.

상인들은 특유의 레트로(Retro·복고) 감성을 살리면서 식·음료를 파는 매장을 늘렸다. 시장 내 107개 상점 중 음식과 주류를 파는 상점은 37개로 농수산물(20개)과 수산물(11개) 판매 상점보다 더 많아졌다. 이 때문에 저녁 시간이 되면 시장은 거대한 먹자골목으로 변신한다. 중구에 따르면 최근 신중앙시장 방문객은 하루 평균 2만1506명을 헤아린다. 남대문 자유상가(일 평균 2만1403명)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최근에는 수년간 없던 권리금도 다시 생겼다. 7~8평짜리 작은 점포의 권리금은 1억원을 호가한다.

공공앱도 전통시장 도우미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앱도 전통시장 도우미로 나섰다. 대구시 공공앱인 ‘대구로’에서는 최근 전통시장 한 번에 장보기 서비스를 도입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대구로 앱을 켠 뒤 시장 분식집에서 김밥을 담고, 떡집에서 가래떡도 담고, 반찬가게에서 나물을 담아서 배송을 누르면 한 번에 모아 음식 배달처럼 집에 도착한다.

신중앙시장 먹자골목. [사진 서울 중구]

소상공인진흥공단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전통시장 보고서 따르면 전국의 전통시장 수는 1388개다. 2018년 1437개, 2019년 1413개, 2020년 1401개, 2021년 1408개로 매년 소폭 감소하고 있다. 전국 전통시장 고객수는 전체적으로 다소 감소하고 있지만, MZ세대를 겨냥해 리모델링하는 등 특화한 시장은 인기몰이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 신중앙시장. 사진 중구

단양·속초·전주·서울=최종권·박진호·김준희·이수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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