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오르면 세금 뚝 떼어간다"…월급쟁이 울린 '그림자 증세' 정체
올해 연봉으로 1억1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김모(42)씨. 4인 가족 홀벌이 김씨의 경우 근로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등을 제한 월 실수령액이 700만원 정도다. 올해부터 과세표준(근로소득-각종 소득공제+소득공제 한도 초과액) 8800만원을 넘는 연봉에 대해 소득세 35%를 내야 한다. 김씨는 “세금이 늘어 연봉 9000만원일 때와 비교해 월 100만원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며 “15년 전 입사할 때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는데, 세금으로 뚝 떼어가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급여 소득자가 매달 내는 소득세는 과표 기준을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불어난다. 매년 물가와 함께 임금도 일정 수준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리 지갑’ 월급쟁이 세금을 손쉽게 털어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농특세·인지세 같은 낡은 세금이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다면, 소득세는 기존 과표 기준을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 불어나는 ‘그림자 조세’”라고 지적했다.
소득세는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이 내는 누진세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표준은 8단계다.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소득 1400만원 이하에 가장 낮은 6%, 소득 50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에 24%, 소득 8800만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에 35%, 소득 10억원 초과에 45% 세율을 각각 적용하는 식이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세금 부담이 확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경계선이 시대 흐름에 뒤처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득세율 35%는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분부터 적용한다. 2008년부터 유지해왔다. 16년간 물가상승률(연평균 2.3%)을 고려하면 35% 세율은 현재 약 1억2000만원 초과분에 적용해야 한다. 직장인 박모(41)씨는 “월급 오른 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게 맞다고 하더라도 (세금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정견인(財政牽引·fiscal drag)’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물가 상승이 납세자를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견인’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플레이션율보다 낮게 조세구간을 올리는 것은 조용히(by stealth) 실제 세금을 올리는 정치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2023 ‘Taxing Wages’ 보고서)이라고 했다. OECD는 다양한 세액공제를 적용받는 저소득 가구가 재정견인에 특히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국세가 연평균 4.9% 증가하는 동안 근로소득세는 연평균 9.6% 늘었다”며 “가계 소득 증가 속도에 견줘도 소득세가 가파르게 오른 만큼, 세 부담 증가 속도 조절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 과세 표준이나 각종 공제제도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곳 중 22곳이 이미 도입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고소득층부터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줄어 부담스럽다. 세수를 더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한다.
근로소득자 중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33.6%(2022년 기준)에 달한다는 점도 물가연동제 추진의 걸림돌이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과세 표준이 올라 면세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안창남 교수는 “물가 연동제를 추진하되 면세자 비율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소득세를 감면받더라도 최소한 세금을 내는 ‘최저한세’ 도입을 병행하는 등 소득세법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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