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와인을 제대로 추천 받는 법
본격적으로 와인을 추천하기 전에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세요?”라고 질문을 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 고객의 취향을 알아야 거기에 맞는 스타일을 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객이 이렇게 답한다. “드라이한 거요!” 와인을 추천하는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대답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여성복 매장에서 “어떤 스타일의 옷을 찾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여성복이요”라는 대답을 듣는 느낌이랄까. 디저트용이 아니고서야 거의 모든 와인은 드라이 하다. 여성복 매장에서 여성복을 추천해달라는 것처럼 드라이한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이야기했을 때 고객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의 총괄 소믈리에인 제라르 마종은 ‘드라이’란 와인 용어에 대해 “정확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쓰임이 매우 불분명한 말” 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전적으로 드라이는 스위트에 반대되는 말이다. 식후나 식전에 한 잔씩 마시는 달콤한 디저트용 와인을 스위트 와인으로 구분하는데 그런 와인을 제외하고는 분류상으론 모두 드라이한 와인에 속한다. 보통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음식과 함께 먹을 와인을 추천할 때 스위트 와인을 추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별히 식전주가 필요한 코스 요리가 나오거나 고객이 모스카토 다스티처럼 달콤하면서 도수가 낮고 부담이 없는 와인을 처음부터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드라이한 와인을 추천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마종의 지적처럼 문제는 와인에 있어 드라이함의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와인은 효모가 포도 안에 있는 당분을 알코올로 바꿔놓는 발효를 거쳐 만들어진다. 포트 와인처럼 인위적으로 발효를 중지하거나 일부 샴페인 제조 방식처럼 설탕을 넣어 추가 발효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면 대다수의 드라이 와인 안에 들어 있는 당은 국가별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리터 당 4g 미만 내외다. 드라이한 와인으로 분류되지만 단맛이 미묘하게 느껴지는 와인들이 있다. 두 와인 중 한 와인이 상대적으로 더 달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분이 특별히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요소들의 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달지 않은 와인이지만 달다고 느끼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향이다. 주로 과일 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와인을 두고 달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파인애플이나 망고, 복숭아처럼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과일들의 향만 맡아도 달콤함을 느낀다. 실제 당 함량과 상관없이 과일 향이 나면 일단 단 와인이라고 판단하는 고객들이 의외로 많다. 레드 와인에서는 주로 초콜릿을 연상케 하는 카카오, 시나몬, 바닐라 향이 나도 달다고 느끼는 케이스다.
두 번째 요소는 촉각이다. 와인과 촉각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등 다섯 가지 맛과는 별개로 입 안에서 느껴지는 촉각도 와인을 즐기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드라이한 와인을 찾는 고객 중 일부는 탄닌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와인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탄닌감은 레드 와인에서만 나타나는 촉각으로 밤껍질이나 떫은 감, 너무 오래 우린 차를 맛볼 때처럼 입안을 건조하게 조이는 듯한 감각을 유발한다. 그런 느낌이 왜 필요하냐 싶지만 탄닌이 와인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탄닌은 와인에 탄탄한 구조감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장기 숙성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굵은 모래알처럼 거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실크나 벨벳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매끄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위스키의 숙성년수가 오래 될 수록 거친 느낌이 줄어들고 매끄러워지는 것처럼 와인도 시간이 지나면 탄닌감이 줄어든다. 드라이한 와인의 정의를 탄닌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레드 와인의 탄닌이 매끄러운 경우 종종 드라이하지 않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세 번째 요소는 산미다. 신맛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만 산미는 와인에 표정을 만들어주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중요한 요소다. 신맛과 단맛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피클을 만들 때 식초만 넣는다면 너무 시어져 버리고 설탕만 넣는다면 당절임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새콤달콤이라는 절묘한 밸런스는 신맛과 단맛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와인의 경우 산미가 너무 강한 경우 와인메이커는 일부러 당을 추가하거나 알코올 발효과정에서 당분을 조금 더 남기는 방식으로 밸런스를 조절한다. 산미가 강한 와인일 수록 단맛도 함께 따라와야 맛의 균형이 생긴다. 역시 잔당과는 상관없이 산미가 적은 와인일 수록 달게 느껴질 수가 있다. 레드 와인의 경우 그런 와인은 대개 복잡미묘한 재미를 주는 와인이라기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는 단조로운 와인일 경우가 많다. 화이트 와인은 오히려 약간의 단맛이 맛을 한층 더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알코올 도수와 발효의 부산물로 나오는 점성의 글리세롤 성분도 와인을 달게 느끼게 하는 요소로 꼽히지만 전문 소믈리에의 세계가 아닌 실제 영업 현장에선 큰 의미가 없는 편이다.
앞서 살펴본 요소 때문에 ‘드라이함’을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라이’하다는 특성만으로 와인을 세분화해서 추천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마다 각 요소를 인식하는 정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와인을 다루고 있는 소믈리에나 주인도 와인이 가진 특성을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늘 있다.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날의 컨디션이나 와인병 보관 상태 또는 기간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명 테이스팅했을 땐 비교적 단맛이 적게 느껴질 만한 와인이라고 구분해 놓았지만 그 와인을 오픈했을 때 어떤 사람은 단맛을 지나치게 느끼기도 하고,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맛이 늘 일관된 박제된 공산품이 아닌 언제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와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헤프닝이기도 하다.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드라이한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는 건 “나는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와인을 모두가 잘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와인이라는 다채롭고 신비한 세계에 들어서려고 한다면 가급적 피해야 할 주문이다. 와인에 대해 취향이나 기준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해 그저 그런 와인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이 와인에 대해 편견이 없고 퀄리티에 대해 신뢰할 만한 업장에 왔다면 칵테일바에 온 것처럼 그날의 기분을 이야기하며 와인 추천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센스 있는 와인 담당자라면 그날 분위기와 음식에 맞는 흥미로운 와인을 자신 있게 추천해 줄 것이고 대체로 그런 와인은 실패할 가능성이 작다. 가끔 지난번에 다른 곳에서 마신 와인이 너무 좋았다고 사진을 보여주는 고객도 있는데 그다지 권하고 싶지는 않다. 개성 있는 와인바라면 각자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와인이 있을 것이고, 같은 와인을 두 번 마시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기에.
회심의 추천 와인 03
- 와인명 : 퓌메 샤르틀랑 아르부아 샤르도네 Fumey Chatelain Arbois Chardonnay 2020
- 종류 : 화이트
- 지역 : 프랑스 – 쥐라- 아르부아
- 품종 : 샤르도네
- 알코올 : 12.5%
- 수입사 : 포도당
화이트 와인에서 이야기하는 미네랄 뉘앙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자신 있게 추천하는 와인이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믿고 마신다는 쥐라 지방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격 풍미. 농익은 사과와 레몬, 크리미한 질감이 미네랄 뉘앙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다.
회심의 추천 와인 04
- 와인명 : 지메 60 20 20 Zýmē 60 20 20 2018
- 종류 : 레드
- 지역 : 이탈리아 – 베네토 – 발폴리첼라
- 품종 : 카베르네 쇼비뇽 (60%), 카베르네 프랑 (20%), 메를로 (20%)
- 알코올 : 14.5%
- 수입사 : 아이푸드넷
여성적이란 단어와 파워풀이란 단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밸런스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레드 와인. 관능적이면서 폭발적인 향에 압도되다가 입안에서 느껴지는 강건하면서도 섬세한 뉘앙스에 녹다운 되어버리는 팜므파탈적 매력을 지녔다. 맛을 본 고객 중 한 명은 “길바닥에서 누워서 혼자 마셔도 외롭지 않은 와인”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