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목놓아 울기 좋다는 핫플... 공기가 달랐다

오창경 2024. 10. 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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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일가와 백제 유민들의 넋을 달래는 유왕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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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 20년전 부여군 양화면 일원과 유왕산에서 개최되었던 유왕산 놀이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가던 비극적인 역사를 재현하며 유왕산 놀이로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군에게 희생된 백제 유민의 넋을 위로하고 한을 풀어주는 산유화가와 천도굿을 금강에서 지내고 있다.
ⓒ 오창경
부여군 양화면사무소 앞에서 출발한 행렬은 입포 골목을 가득 채웠고 놀이동산의 퍼레이드 만큼 화려했다. 의자왕과 왕비를 비롯한 태자, 왕자 3명, 대신 88명과 백성1만2807 명이 당나라로 끌려가는 비극적인 장면을 재현하는 행렬이었다. 빈 상여를 멘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곡(哭)을 했다. 양화면민들이 모두 동원된 듯한 행렬은 끝이 없었고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입포에서 유왕산을 향해 걸었다.

가을 햇살은 따갑고 시멘트 포장길은 먼지가 풀풀 날렸어도 거추장스러운 백제의상을 입고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도 구경하는 사람들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했고 행사에는 비장미가 흘렀다. 유왕산에 얽힌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도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절로 숙연해졌다.

20년 전 10월 2일 양화면에서 개최됐던 '유왕산 놀이'를 취재해서 오마이뉴스에 내가 썼던 기사의 일부이다. 현재의 행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컸고 볼거리도 많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유왕산에 오르는 길에 핀 꽃무릇 의자왕과 백제유민들의 피눈물이 맺힌 것처럼 핀 꽃무릇
ⓒ 오창경
당시에도 행렬의 한쪽에선 금강이 유유하게 흘렀고 다른 쪽은 풍년가가 저절로 나올 만큼 누렇게 익어가는 논들이 비장한 현실과 비대칭으로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날이었다. 의자왕의 실정으로 당나라에 패한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을 장엄하게 재현하기에는 너무 맑고 푸른 날이었다.

곡소리는 실제로 상갓집에서 녹음한 것을 틀었다. 그 곡소리가 얼마나 실감 나고 애통했는지 '따라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라고 썼던 표현은 지금도 기억난다.

초보 시골 사람이었던 당시의 나는 양화면 금강변에서 열렸던 유왕산 놀이의 스케일에 놀라고 신기해서 당시 막 장만했던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고 기사를 썼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0월 4일 양화면 유왕산 추모제가 열리는 유왕산을 다시 찾았다.

20년만에 다시 본 유왕산 추모제
▲ 유왕산 추모제 백제 의자왕과 왕비, 태자 효를 기리는 추모의식
ⓒ 오창경
유왕산 오르는 길에는 잎과 꽃이 서로 보지 못하고 꽃만 핀다는 붉은 꽃무릇이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이 흘린 피눈물 자국처럼 피어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던 곡소리도 없었고 비장했던 상여 행렬도 생략된 채 의자왕과 왕비 태자 효를 기리는 제례 의식만으로 대폭 축소된 추모제였다.
양화면 금강변 유왕산 일원에는 주민들이 매년 음력 8월 17일에 유왕산에 모여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지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유왕산 추모제가 음력 8월 17일에 열리는 것은 그날이 백제 유민이 끌려간 날이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고증·재현되었다.
▲ 유왕산 추모제 유왕산 추모제를 위해 모인 양화 사람들
ⓒ 오창경
백제유민들은 백제의 노래인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부르며 놀았고 당나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을 마지막 뱃길이 된 금강에서 불러온다. 돌아온 혼백이 상여에 실려 유왕산에 오르면 그들 넋을 극락에 보내기 위하여 기원하는 의식으로 '천도굿'을 열었다.

매년 음력 8월 16∼17일 이틀에 걸쳐 300여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여군 양화면 유왕산 일대에서 열린다. 유왕산추모제 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충청남도 부여군이 후원한다. 2015년부터 백제문화제에 통합되어 추진하고 있다.(참조:다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20년 전에는 1박 2일 간 열렸던 유왕산 놀이가 이런 규모로 축소된 것이 너무 서운해 자료를 찾아서 그간의 과정을 밝혀 보았다.

그때는 금강에 배를 띄우고 왜 상여까지 동원했는지도 몰랐지만 행사의 규모를 보면서 비감에 젖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백제가 역사에서 사라진 날부터 백제 유민들은 백제를 잊지 않으려 백제의 노래인 산유화가를 농사일의 전반에 걸쳐 부르고 매년 8월마다 만나서 한바탕 한 풀이하는 의식으로 백제의 정신을 계승해왔다.

겨우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모든 의식은 사라지고 비장한 음악과 잘 차려진 제상만 그날의 분위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유왕산 어디에도 슬픈 역사가 느껴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 많았던 양화 사람들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금강물만 변하지 않고 슬픈 눈물방울을 반짝이면서도 비극의 역사를 집어삼키고 유유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야, 여기는 목 놓아 울면서 소리 지르기 딱 좋은 곳이네."

온몸을 휘감는 무력감과 유난히 반들거리는 금강물에 압도되어 가슴이 답답해질 즈음 누군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유왕정에서 금강물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탄식 섞인 감탄사였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진솔한 표현이었다. 유왕정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이상하게도 슬픈 감상을 자아내면서도 아름다웠다.

목놓아 울기 딱 좋은 곳
▲ 유왕산 유왕정 금강이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유왕정에서 서면 비통한 울음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 오창경
세도면 구경정에서 본 금강이나 반조원나루의 반호정사, 봉두정(석성면)에서 바라본 금강물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유독 양화면의 유왕정 앞의 금강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가짐이 비통해졌다. 나 혼자만 느꼈던 감상이 아니라 유왕정에 처음 오른 사람들도 같은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발아래 흐르는 강물은 아름답고 사방이 탁 트여, 이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을 수는 없다는 우월감 충만한 기분 대신 묘하게 비장해지는 곳이 유왕산이었다.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곳, 소매 깃이 흥건해지도록 눈물을 훔쳐내고 싶은 곳이 유왕산이었다.

그것은 카타르시스였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감정인 카타르시스가 유왕산에 있었다. 발밑에 흐르는 강물을 향해 한바탕 소리 지르며 울고 나면 머리와 가슴이 하얗게 비워지고 묵은 감정이 리셋되는 1500년의 카타르시스가 바로 유왕산에 있었다. 오랜 세월 백제 유민들이 모여 얼싸안고 통곡하고 한풀이했던 기운이 전해진 것일까?

20년 전 유왕산 놀이에서는 곡소리를 동원했다. 비통하고 애통한 감정은 충분히 해소해야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백제 사람들은 영리했다. 매년 의자왕이 떠난 유왕산에 모여 망국의 슬픔을 나누며 금강물을 바라보며 목놓아 울었다. 그 울음과 함께 영혼은 정화되고 슬픔은 승화되어 놀이가 되었고 천 오백 년의 집단 무의식으로 작용했다.
▲ 유왕산 추모제 20여년 전에는 유왕산 놀이라고 했던 행사가 현재는 대폭 축소되어 추모제만 남았다.
ⓒ 오창경
비통했던 역사도 세월이 흐르면서 함께 즐기는 놀이 문화로 재편되었고 슬픔은 의전과 의례로 계승되었다. 유왕산에는 백제인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곳이라 발아래 금강물을 바라보면 저절로 비장한 감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유왕정 아래 통돼지를 잡고 상어와 생고기를 올리고 차린 제상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의자왕 일가와 백제 유민들의 넋이 애잔한 음악에 맞춰 1500년의 한을 풀고 머물다 가는 제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제관들은 바짝 엎드려 무릎 꿇고 잔을 올렸다. 이전의 화려하고 장엄한 의식은 없어도 제례는 엄숙했고 숙연한 분위기였다. 한때는 상여를 메고 비통한 울음을 삼키며 유왕산으로 향하던 양화 사람들은 이제 제례 의식을 지켜보며 금강물만 바라보고 있다.

차린 음식은 많았지만 아쉽고 부족하고 뭔가 빠트린 것처럼 자꾸 되돌아보며 유왕산을 내려왔다.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벚꽃이 계절의 시계를 잊은 듯 갈팡질팡 피어서 애잔한 마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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