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이준만 기자]
▲ 학교의 외관은 학원과는 다르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도 학원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
ⓒ 이준만 |
30년 넘게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나도, 한때 '일타 강사'처럼 수업하기를 꿈꾼 적이 있었다. 2006년 경의 일이다. 일단 그 당시 제일 잘 나가는 강사의 인터넷 강의 서너 편을 완강했다. 또 그에 버금가는 강사의 강의도 그렇게 했다. 과연 그들의 강의는 여느 학교 교사의 강의와는 사뭇 달랐다.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여 수강생들이 강의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일타 강사들의 강의를 보며 최대한 그들의 강의 기법을 몸에 익혔다. 그렇게 약 일 년 정도 일타 강사들의 강의 기법을 익히니,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수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부터 일타 강사들의 강의 기법을 녹여내어 수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한마디로 초대박이 났다. 학생들이 내 수업을 너무 좋아했다. 재미있는 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 설명으로 얻어갈 게 많은 수업이라는 평을 들었다. 어떤 학생은 담임 교사에게, 나와 수업하면 그 지루한 국어 문법 수업조차 재미있어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들 표정에서 못 보던 것을 보다
그런 평에 한껏 고무되어 더욱 가열차게 일타 강사 식 수업을 했고, 지역 내에서 나는 수업 좀 할 줄 아는 교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열정적으로 7~8년 정도 수업을 했다. 2016년이 되었다. 고 3을 맡아, 예의 그 일타 강사 식으로 수업을 했다. 학생들의 호응은 여전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수업했을 때, 문득 학생들의 표정에서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공허함이랄까, 멍함이랄까,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는 그 어떤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마 그전 학생들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 터이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들은 제대로 공부를 한 게 아니었다. 나의 화려한 수업을 그저 구경만 했을 따름이었다.
학생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수업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 수업 방법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학생 참여 수업이니 배움 중심 수업이니 하는 이름으로 다양한 수업 방법이 있었다. 그중 내가 할 수 있을 법한 방법을 택해 2년 동안 공부한 다음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내 수업에 그 방법을 적용했다.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수업 방법으로 2023년 8월 말 퇴직할 때까지 학생들과 즐겁게 수업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내 새로운 수업 방식을 좋아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배울 마음이 아예 없는 학생들도 있고, 일타 강사 식 수업을 통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내게 해 주는 말을 통해, 학생들이 내가 시도한 새로운 수업에 꽤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내 자랑 같아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한 말 중 두 가지만 적어 보겠다.
이전에 공교육을 9년 동안 받았지만, 선생님처럼 수업을 하시는 분은 처음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브루타'(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 토론, 논쟁하는 방법)식 국어 교육을 지향하시고 실제로 이를 수업 시간에 매우 효율적으로 녹여 강의하셨습니다. 수용적 공부만 하던 제게 이런 수업 방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조별로 질문을 만들고, 토의하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얻은 질문을 하는 힘은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이 단순히 어떤 현상이나 지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질문을 통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셨고 이는 제가 사회과학도로서 사회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하브루타 수업이 강의식 수업에 적응되었던 저에겐 약간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익숙해졌고 점점 질문과 대답을 만드는 게 즐거워졌어요.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제일 신기했던 게 하브루타 수업 후 시집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제가 친구가 읽고 있던 시집에 관심이 생긴 것이었어요. 저에게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원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업을 해야
▲ 2023년 11월 16일에 실시된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 |
ⓒ 대전교육청 |
그래서 학생들이 앞에서 언급한 기사에서처럼, 일타 강사 식으로 수업하는 학교 교사를 최고의 교사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그런 교사에게 왜 학원으로 가지 않고 학교에 있느냐고 말한다는 점이다.
학생들로서는 수능 대비 수업을 그토록 잘하는 교사가 학교에 남아있는 게 의아할 따름인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수능을 대비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다. 교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내가 근무하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학교에서는 수능을 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진학 상담을 하면서 피부로 절절하게 느낀 사실이다.
퇴직할 당시까지,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에는 뚜렷한 학교 교육의 방향성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일반계 고등학교니까 학생들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누구도, 그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천명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의 전국연합 학력평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큰일 났다며 대책 회의를 하는 데서 미루어 알 수 있다.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들에 국한한 거라면 오죽 좋으랴.
퇴직한 지금, 이러한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모습이 바뀌거나, 모습을 바꾸려고 꿈틀댄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면 고등학교에서 수능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수능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일타 강사처럼 수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서는 수능 공부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은 점점 그 쓸모를 잃게 될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그 가치를 지키려면 환골탈태해야 한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을 교육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수능 대비 수업을 누가 더 잘하는지를 놓고 학원과 경쟁하지 말아야 한다. 학원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업을, 교육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살아남을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의 '마지막 피난처'가 끓고 있다... 베테랑 다이버의 호소
- '서지현법' 발의 박은정 "의장님, 딥페이크 '여야특위' 구성 건의합니다"
- 여수·순천 군인들 두 번 죽인 교과서... 두고두고 문제된다
- 추석에 훅 나간 돈, 카드값 걱정인 분들 보세요
- 매일 앵무새 영상 보던 소년, 세계가 주목한 새 박사 되다
-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 '대치동 역귀성'까지... "추석에도 새벽 2시까지 공부해요"
- 한가위라서 더 슬프고 고단했던 참사 유가족들
- 주한미군 '위안부'의 흔적,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
- 현대비앤지스틸 중대재해 2년, 검찰은 아무 처분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