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피어난 도시, 사진으로 남긴 '삿포로'
[이재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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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타루 역 수많은 발라드 뮤직비디오의 배경이었던 삿포로, 그중 운하의 도시 오타루에 도착했을 때에도 눈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던 삿포로의 눈 풍경은 오타루에서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
| ⓒ 이재필 |
늘 눈이 많이 오는 도시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하나의 계절을 통째로 건너보는 일에 가까웠다. 러시아처럼 극단적인 추위의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은 인간의 생활과 맞닿아 있는 눈의 도시.
삿포로는 언제나 나에게 신비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그 신비는 설명되지 않아 더 오래 남았다. 충동은 늘 가장 솔직한 결심이 된다. 술자리에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이런저런 마음을 흘려보낸다. 그날도 그랬다. 누군가가 "겨울엔 역시 삿포로지"라고 말했고, 그 말은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역마살을 두드렸다.
그리고 우연처럼 일행 중 한 명이 매년 삿포로에 한 달씩 머물다 오는 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이 여행은 이미 절반쯤 결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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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공항 출국 삿포로 여행을 예고하듯 눈이 흩날리던 공항은 눈의 나라 삿포로로 향하는 가장 완벽한 인트로였다. |
| ⓒ 이재필 |
안동에서 시작된 여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에서 시작된 여정은 밤 9시가 되어서야 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지만, 설렘 덕분인지 시간은 무겁지 않았다. 공항에서 철도로 갈아타고,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삿포로 시내로 들어갔다. 도시는 이미 밤에 잠겨 있었고, 언뜻언뜻 보이는 도시의 풍경 속 그 어둠 위로 눈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첫인상은 늘 오래 남는다. 삿포로의 첫인상은 단순했다. 세상 전체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지인의 말로는 며칠째 맑았고 눈도 거의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날의 삿포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든 것을 하얗게 집어삼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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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삿포로 시내를 달리는 택시 삿포로의 택시들은 눈에 익숙한 듯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긴 여행 동안 단 한 번도 사고 장면을 마주하지 않았다. |
| ⓒ 이재필 |
우리는 택시에 몸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두껍게 얼어붙은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분명 거북이처럼 움직였을 도로. 그러나 삿포로의 택시는 마치 이니셜 D 속 장면처럼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속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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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오기공원 발목까지 쌓인 눈 속에서 사람의 기척이 사라진 공원은 빙하기의 지구를 잘라낸 한 장면처럼 보였다. |
| ⓒ 이재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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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의점 앞 정차한 택시 삿포로의 택시들은 눈에 익숙한 듯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긴 여행 동안 단 한 번도 사고 장면을 마주하지 않았다. |
| ⓒ 이재필 |
밤의 도시, 살아 있는 설경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잠들기엔 너무 깨어 있었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번화가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눈은 실시간으로 도시를 덮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삿포로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눈은 배경이 아니었다. 삿포로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해주는 주인공이었다. 빛을 키우고, 사람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도시는 차갑기보다, 오히려 활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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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힙한 MZ 이자까야 삿포로의 MZ들에게 일본식 중화요리를 선보이는 트렌디한 식당에서 주인들은 마치 연구원처럼 자신을 코디하고 있었다. |
| ⓒ 이재필 |
도시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눈축제(유키마츠리) 준비로 분주했다. 거리 곳곳에는 조각되기를 기다리는 거대한 각얼음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쌓여 있었고, 축제를 앞둔 들뜬 공기가 차가운 바람 사이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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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타다오의 '두대불' 긴 회랑을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부처의 형상은 인간이 느끼는 경외심이 무엇인지 충분히 전해주는 장면이었다. |
| ⓒ 이재필 |
수많은 관광지 중 내 영혼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곳은 단연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 있는 '부처의 언덕(두대불)'이었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공원묘지의 조경을 위해 세계적인 거장에게 의뢰했다는 이곳. 초입에서 마주한 모아이 석상과 중앙에 위치한 스톤헨지는 다소 엉뚱한 혼란을 주었지만,
그것은 클라이맥스를 위한 복선에 불과했다. 새하얀 설원 한가운데,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운 질감과 눈의 부드러움이 만나는 그 지점에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과 눈, 그리고 압도적인 고요. 그 거대한 불상을 마주한 순간, 종교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깊은 경외심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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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분주함 거리 위에 쌓인 눈들은 빛을 반사하며 도시의 휘황찬란함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
| ⓒ 이재필 |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눈과 도시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곳은 처음이었다. 눈발로 인해 모든 불빛은 더 반짝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더 활기찼다. 눈 덕분에 도시는 늘 깨끗했고, 어디로 넘어져도 푹신할 것 같은 풍경은 묘하게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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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기 창 밖으로 본 하늘 필름카메라에 담긴 구름은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착각을 남긴다. 꿈결 같은 시간의 흔적처럼. |
| ⓒ 이재필 |
이 여행을 돌아보면 어디를 갔는지보다 어떤 감정으로 걸었는지가 더 선명하다. 삿포로는'다녀왔다'기보다' 한 계절을 잠시 살다 온 곳'처럼 기억되었다.
눈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느려졌고, 조금 더 조용해졌으며,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졌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삿포로를 떠올리면 어떤 장소보다도 먼저, 그날의 공기와 침묵이 함께 떠오른다. 눈은 언제가 녹아 있겠지만, 삿포로에서 보낸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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