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조선 쌀 빼앗은 일본, 아픈 역사로 남은 곳

김병모 2025. 2. 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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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전북 군산의 근대 문화유산 거리를 걷다

[김병모 기자]

여행은 설렘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밖을 보니 전나무 가지 위로 눈이 제법 쌓여있다. 하룻밤 사이에 온 누리가 하얗다. 눈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눈이 내리다니. 도로는 그나마 눈이 녹아간다. 눈발이 점점 약해진다. 필자는 망설댈 것도 없이 바람이 되어 여행을 출발한다.

지난 12일, 군산(群山) 근대 문화유산의 거리로 향했다. 근대 문화유산 야외 장미(藏米)공연장에 이르자 군산 출신 채만식(1902∼1950) 소설 <탁류>의 주인공들이 동상에서 깨어나고, 정주사는 모자를 벗고 필자를 안내한 것 같다. 다음은 그들과 함께 한 시간 여행 기록을 쓴 것이다.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는 1930년대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諧謔)으로 엮은 소설로서 항구 도시 군산 미두장(米豆場)을 중심으로 근대 문화유산 거리가 주된 배경이다. 맑은 금강 물이 군산 포구 생선 비린내와 사회 타락 상으로 점점 탁류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는 소설이다. 당시 미두장(군산미곡취인소) 일대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는 정주사와 같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아쉽게도 구(舊) 조선은행 앞 미두장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먼저 군산 근대 문화유산의 집적지 근대역사박물관(관광정보 바로보기)으로 향한다. 그곳에 들어서니 언덕 비탈 오막살이 집들이 생선 비늘 같이 박힌 곳에서 생활했던 개복동 조선인들의 삶과 달리, 군산 어청도 등대가 웅장하게 재현 되어 있다. 일제가 대륙 진출을 목적으로 건설했다고 한다.

근대 역사박물관을 나와 구(舊) 일본 18은행 건물을 바라보며 멈칫한다. 일본으로 곡물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설립한 건물이다. 현재는 근대 미술관으로 변신하여 창문 너머 자연과 시선 너머 삶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어찌 수탈의 아픔이 지워지겠는가.

근대역사박물관 옆 건너편에는 군산항으로 들어온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붉은벽돌로 지은 옛 군산세관(현재 호남관세박물관)이 있다. 이 건물은 서울 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보존된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알려진다.

김영삼 정부 때 서울 광화문 바로 앞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는데, 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라는 한 관리의 논리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특히 호남 평야에서 수탈 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접안 시설, 군산항 뜬다리 부도(부잔교)가 지금도 항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말할 것도 없이 부잔교는 조선 백성들의 목숨과도 같은 쌀 가마니를 일본으로 퍼 나르는 운반 장치였으리라.

근대 문화유산 거리로 한 걸음 더 들어서니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녔던 은행으로 조선 자본 침탈을 일삼았던 구(舊) 조선은행(현재 근대건축관) 건물이 낯설게 서 있다. 돌아서는 먼 발치에 일본 식 적산가옥이 빛바랜 기억 속에 세월의 먼지를 마시고 있다. 그 대표적 가옥이 바로 한때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린 쌍천 이영춘 박사의 옛집이다. 그 집은 일본인 농장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한국, 일본, 서구 식 건축 양식을 혼재 하여 지은 별장으로 드라마 <모래시계>와 <야인시대> 촬영지이기도 하단다.
 군산 초원사진관 풍경
ⓒ 김병모
눈이 내리는 날, 시간 여행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초원 사진관'으로 향한다. 허름한 차고를 사진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물끄러미 사진관을 쳐다보니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밀려온다. 그들은 긴 시간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하고 싶었단다. 특유의 감성 영화 분위기 덕분인지 젊은 여행자의 발길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던가. 마침 맛집 소고기 뭇국 식당이 보인다. 맛집 답게 국물 맛이 일품이다. 허기진 배를 채워서 인지 마음도 여유롭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던가. 바로 그때 은파호수 공원 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군산의 아픈 흔적을 지우려나. 군산은 이제 고단한 역사에서 벗어나 새만금방조제(33.9km)와 선유도를 축으로 제2 도약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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