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구석들

우리가 주로 생활을 하는 공간은 거실, 침실, 주방 등 비교적 기능이 명확한 곳이다.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공간들이지만, 이 드러나 있는 공간들이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잘 작동하는 숨겨진 공간들도 필요하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장서윤(디자인랩소소 소장) | 협조 하우저(건축&인테리어 매칭 플랫폼)
사계절의 나라, 미니멀은 어렵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여름의 물건들을 집어넣고, 겨울의 물건들을 꺼내는 계절이다. 이를 위한 수납공간은 우리 생활의 질을 꽤 강도 높게 좌우한다. 우리나라는 여름엔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단적 사계절을 가진 나라다. 폼 나는 미니멀 라이프라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생활공간이 쾌적하려면 옷과 이불은 물론이고 커튼이나 가전제품에게도 공간을 마련해 주어 계절마다 꺼내거나 넣어둘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짐은 옷이다. 기후 특성상 1년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이 별로 없다 보니 옷도 신발도 많이 필요하다. 옷은 가구에 수납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 드레스룸을 두려 한다. 별도로 계획된 드레스룸이 없는 집에선 방 하나를 아예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신축 설계를 할 땐 여건에 따라 온 가족을 위한 큰 드레스룸을 하나 둘 것인지, 방마다 장이나 작은 드레스룸을 둘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시스템 행거 등을 설치해 옷 공간을 만드는 경우, 행거는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비교적 많은 옷을 수납할 수 있지만, 옷이 상하기 쉽고 정돈돼 보이지 않아 방 한쪽에 설치하기에는 좋지 않다. 필요와 상황에 맞게 장단점을 고려해 적당한 수납방식을 선택하고, 계절마다 옷을 바꿔 가며 따로 보관한다면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는 몇 자 농이 들어가는지가 방 크기를 가늠하는 척도였지만, 요즘은 장롱보다 붙박이장을 선호한다. 예전에 비해 이사의 빈도가 잦아지고 인테리어의 유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전만큼 큰 가구에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아 견고한 고급 가구들을 잘 들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붙박이장의 중요한 소용은 가구나 짐을 가려주는 것이다. 사실 집이 깔끔해 보이도록 해주기는 한다.
많을수록 좋은 수납공간
수납공간이 많을수록 생활공간은 깔끔해지고 쾌적해진다. 하지만 수납공간 역시 바닥면적에 포함되고, 공사비가 드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만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수납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된다.
계단 하부 수납공간은 흔한 아이디어다. 다만, 계단은 통행을 위한 최소 폭이 있으므로 계단의 옆면에서 계단 하부를 수납공간으로 사용하려면 너무 깊어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의 공간 활용을 위해 계단 하부 양쪽에서 공간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해 활용하기도 한다.
구입하고 보관하는 식재료의 양이 많아지기도 했고, 우리 식문화의 특성상 오래 보관해야 하는 곡물이나 건어물들도 있기 때문에 식재료 수납장소도 중요하다. 특히, 식재료는 제대로 보관하지 않을 경우 상할 수 있고, 수납이 안 되면 더욱 지저분해 보이거나 냄새가 날 수도 있어 보관 위치가 중요하다. 재료에 따라 바람이 잘 드는 장소, 빛이 들지 않는 장소 등 적정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공간이 있으면 좋다. 예전에는 주로 다용도실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주방, 현관과 가까운 곳에 별도의 팬트리를 만들어 두기도 한다. 면적은 차지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단독주택 상상재의 계단 밑 공간. 반은 뒤쪽 다용도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납과 더불어 복도를 경쾌한 분위기로 만들기도 한다.(출처: 디자인랩소소)
수납공간이 많으면 집은 깔끔하고 쾌적해진다. 다용도실은 면적을 차지하긴 하지만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주택의 보너스 공간, 다락과 지하
국어사전에서는 다락을 ‘주로 부엌 위에 이층처럼 만들어서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라 정의한다. 우리 전통 주택의 경우 부엌에서 취사를 위해 사용하는 아궁이가 온돌과 연결돼 있다 보니 부엌 바닥은 다른 공간에 비해 낮았다. 그러다 보니 상부에 공간이 남았고, 부엌에 필요한 수납공간을 다락으로 해결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뻐꾸기 창이 있는 빨강머리 앤의 다락과는 다르다. 하지만 서양의 주택에서도 다락은 지붕을 덮고 남는 상부 공간을 막아 창고로 사용한 공간이었지 거주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먼지 쌓인 창고가 아이들에게는 보물창고였을 것이고, 동화나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이 탐구하는 미지의 세계나 어른들 몰래 숨어 있을 수 있는 아지트로 묘사되다 보니 우리에게도 낭만적 이미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의 <건축법>도 다락을 거주 공간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다락은 주거공간에 포함돼 있지만 용적률을 산정하기 위한 바닥면적에서는 제외한다. 살기 위한 공간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다락에는 바닥 난방이나 욕실 등 설비를 설치할 수 없고, 높이도 제한을 받는다. 다락의 높이는 평지붕일 경우 층고(바닥 슬래브 상단에서 지붕 슬래브 상단까지의 길이) 1.5미터, 경사지붕일 경우 평균 층고 1.8미터로 제한하고 있다. (많은 건축물에 여러 종류의 불법 시공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여러 법적 혜택을 받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다락이 주택의 보너스 공간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땅한 주거공간은 아니지만 큰 창고가 되기도 하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가족들의 비밀 공간이 될 수도, 취미를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경사지붕을 가진 다락이 효용성이 높다 보니 다락의 천장은 기울어진 경우가 많고, 이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감으로 더욱 즐거운 느낌을 준다. 법적 평균 층고를 충족하려다 보면 생기는, 실제 사용은 어려운 낮은 공간들은 수납의 기능도 꽤 많이 해결해 준다. 하지만 공사 면적에 포함되므로 비용이 든다는 것과 각종 설비를 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다락은 마땅한 주거공간은 아니지만 큰 창고가 되기도 하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가족들의 비밀 공간이 될 수도, 취미를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지하도 다락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법적으로는 건축물의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층으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벽의 2분의 1 이상이 지표면 아래 묻혀 있는 경우 이를 지하로 본다. 흔히 이야기하는 반지하는 법적으로 지하층이며, 용적률 산정 시 면적에서 제외된다. 그러다 보니 지하도 보너스 같은 공간으로 여겨 다양한 활용을 기대한다. 하지만 지하는 늘 방수의 문제가 있고, 환기를 자주 해줘야 하며, 공사비가 지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면 물건이나 음식을 보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지하공간의 설계나 활용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잘 상의해 보는 것이 좋다.
지하는 용적률과 무관한 보너스 같은 공간처럼 보여 다양한 활용이 기대되지만 방수의 문제가 있고, 환기를 자주 해줘야 하며, 공사비가 지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설계나 활용 방안을 강구하면 게스트룸 등 유용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숨겨져 있어 유용한 공간
수납을 위한 공간 외에도 숨겨져 있어 유용한 공간들이 있다. 세탁실, 다용도실, 보일러실, 창고, 차고 등이다.
예전 아파트에선 주방에 딸린 발코니에 보일러와 세탁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건조기를 사용하는 집이 많지만 빨래를 널어야 하는 경우 대체로 북쪽에 위치한 주방의 발코니에서 거실 발코니로 빨랫감을 가져와 너는 일은 불편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주방 발코니의 경우 세탁 외에도 다른 쓸모가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세탁실을 따로 구분해 두기도 한다. 드레스룸 공간과 가까이 배치해 세탁물을 수거하고 정리하기 편리하도록 하기도 하고, 주택의 경우 아예 햇빛이 잘 드는 공간에 선룸을 만들고 세탁기를 설치해 햇볕에 빨래를 말릴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공간이 부족할 경우 계단 하부에 세탁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세탁물을 보관하고 빨래하고 건조 후 정리하기 쉽도록 가족의 생활 습관과 공간 구성을 고려해 세탁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주방에 딸린 다용도실은 아주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 곳에 보조주방을 두면 생선을 굽거나 곰국을 끓이는 등 냄새 나는 요리를 할 때 아주 유용하다. 식재료들을 보관하기도 하고, 냉장고나 냉동고가 많을 경우 다용도실을 활용해 주방을 보다 깔끔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사용하기 좋은 위치에 적절한 창고를 만들어 두면 가족들의 취미를 위한 캠핑장비, 마당과 차의 관리를 위한 장비들, 유모차와 자전거 등 밖에 두면 지저분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단독주택 ‘두디귿집’의 2층에 위치한 남향 선룸. 세탁실로 사용하려 만든 공간이다.(출처: 디자인랩소소)
주방에 딸린 다용도실은 아주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 곳에 보조주방을 두면 냄새 나는 요리를 할 때 아주 유용하고, 식재료들을 보관하기도 해 주방을 보다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
숨어 있는 작고 큰 공간
숨어 있는 공간들이 잘 작동해야 좋은 집이다. 각각의 공간들은 그리 크지 않고 우리가 늘 생활하는 공간도 아니지만, 이 작은 공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사용되며 생활에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런 공간들이 더욱 잘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꼼꼼하게 많은 것을 고려해 보고 찾아 봐야 한다. 집을 짓거나 고칠 때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녹여 구석구석 알차게 공간을 활용한다면, 맥시멀리스트도 미니멀리스트인 척할 수 있지 않을까.